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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겁쟁이들

2017년 09월 21일(목) 제522호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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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고한 지식 주장을 통해 얻는 보상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적 대가가 따른다. 오히려 질문이라는 바통을 주고받는 대화가 철학적·과학적 사유를 구축한다.

우리는 대체로 지식을 교양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품위 있게 만들지만 삶에 필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볼 수 있다. 지식은 생존의 필수품이라고.

동굴 속 인류의 조상은 밖에서 꽝꽝대는 천둥소리와 번쩍거리는 번갯불에 “저 어마어마한 빛과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냐? 너무나 무섭구나. 우리는 저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고는 소리와 빛의 출처를 밝히는 데 골몰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불확실성이란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동굴 속에서 벌벌 떨며 심신이 쇠약해지는 상태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 알고자 했다. 결국 지식은 가장 연약한 동물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개발한 방어기제였다.

지식은 실제로 인류의 생존율을 높이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현격히 줄었고 평균수명은 크게 증가했다. 의학이나 위생 기술처럼 환경의 위협 요인을 통제하는 지식이 가장 큰 기여 요인이었다.

지식은 도구이면서 무기이다. 한 집단의 생존율을 높이는 것은 다른 집단의 생존율을 낮추는 것과 불가분 연계돼 있다. 일종의 ‘불균등 발전’이 지식을 가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에서 발견되며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더 큰 문제는 지식의 불균등한 분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놓는 우월감과 열등감이다. 미개함이라는 낙인을 상대방에게 찍고 아무 죄책감 없이 파괴와 학살을 자행한 역사적 사례는 무수하다.

일상적 대화에서 가장 절망적인 대화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들은 타인의 주장에 대해 “뭘 모르시네”라며 자신의 확고한 지식을 들이댄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타인에 의해 보충되고 수정될 가능성을 거부한다.

물론 확고한 지식 주장을 통해 얻는 보상이 있다. 자존심의 강화, 지위 불안의 극복 등.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하면 계속 공격을 받는 느낌이 들어서 상대방 또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킬 수밖에 없다. 대화는 찌르고 막기의 무한 반복이 돼버린다. 스트레스가 상승하는데 이제 스트레스를 없애는 유일한 선택지는 싸움에서의 승리다.

그런데 여기에는 역설적 대가가 따른다. 수동공격성(passive aggressiveness)의 무기로 전락한 지식은 결과적으로 빈약해진다. 지식은 공격의 효율성을 위해 몇 개의 명제와 믿음으로 쪼그라진다. 이때 팩트가 개입하면 사태가 나아질까? 오히려 반대다. 팩트가 유리한 증거가 되는 편에서는 결정적 한 방(“거봐, 내 말이 맞지!”)의 구실이 되고, 불리한 편에서는 분노 폭발의 방아쇠(“어디서 거짓을 끌어들여!”)가 된다.

그렇지 않은 대화 상황도 분명 있다. 이때 대화는 질문이라는 바통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이어진다. 그렇게 다다른 결론은 늘 잠정적이다. 다음에 만나면, “근데, 저번에 그거 말이야”라는 말로 또 다른 대화가 시작한다. 대화는 느리지만 큰 즐거움을 제공하고 오래 궁리할 만한 주제를 남긴다. 때로는 이런 대화들이 모여 더 큰 철학적·과학적 사유를 구축한다.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 앎으로 나아가는 길잡이

모름을 인정하는 것은 앎으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길잡이다. 또한 우리는 모름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필요에 의해 때로는 용기를 발휘하여 일종의 도약을 감행해야 할 때도 있다.

다만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의 어둠을 보았고 그것을 뛰어넘었음을. 그 어둠이 우리의 지식을 언제나 미완성으로 만든다는 것을. 우리가 타인에게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라고 주장할 때, 그러한 미완의 주장이 의도치 않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음을. 그래서 우리의 말과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름을.

너무 복잡한가? 그렇다면 묻고 싶다. 쉽고 확실한 길을 선택한 결과로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복잡함은? 우리는 그 해법의 복잡함조차 감당하기 싫어서 지난 것은 다 잊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식의 단순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우리는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할 뿐 아닌가? 우리는 사실 똑똑한 겁쟁이에 불과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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