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동성과 성관계를 한 남성 군인이 범죄자가 되었다. 유죄 선고가 있었던 다음 날 저녁, 한 대학교수가 ‘A대위 유죄 선고 규탄 긴급행동’ 집회에 참석했다. 예정에 없이 무대에 선 그는 15년 만에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에 등급을 매기고 범죄화하는 저들이라고, 그러니 제발 살아남아 달라고.

 

ⓒ시사IN 조남진김승섭 교수는 데이터로 소수자 인권에 대해 발언한다.
차별, 사회적 고립, 고용 불안 등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그의 첫 책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그 과정을 담았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부교수다. 김 교수의 전공은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이다. 2000년에야 첫 교과서가 나온 신생 학문으로 박사 학위 수여자가 나오기 시작한 지 이제 10년 남짓 되었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역학의 세부 전공과목으로, 차별과 사회적 고립과 고용불안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탐구한다. 

김 교수가 소수자 인권에 대해 발언하는 방법은 데이터였다. 전문가가 어느 분야보다 부족한 자리에 그가 한 연구가 쌓이기 시작했다. 2015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와 ‘소방공무원 인권 상황 실태조사’를, 2016년 ‘한국 성인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 연구’와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소송, 동성결혼 소송, 트랜스젠더 병역면제 소송 등에 법정 증언을 하거나 소견서를 제출했다. 현재는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의 책임연구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 연구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진행됐는데, 공공적 성격의 연구가 시민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방식 덕분에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소개되기도 했다.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의 변화 없이 개인은 건강할 수 없다. 9월13일 출간된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은 연구 과정 중에 던졌던 질문을 성실하게 기록한 책이다. 사회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가 20대 시절 보건의료학생모임의 소식지에 썼던 글의 다짐으로부터 출발한 것들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결국에는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보도록 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9월7일 고려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직전에 도착한 자신의 첫 책을 한동안 품고 있었다고 했다. 

이 책에 실린 글을 “다시는 쓸 수 없는 글”이라고 했다.

공부해서 쓴 글이라기보다 몸으로 헤쳐 나가면서 썼던 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학술서를 쓸 수 있겠지만, 이런 식의 글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한 권뿐인 책이다. 딸이 셋인데 딸들이 학술서는 재미없어서 안 읽을 거 같은데, 이 책은 읽어줄 거 같다. 나는 우리 부모의 젊은 날의 고민이나 생각들이 정말 궁금한데 들을 기회도 알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책을 통해 나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둘째 딸이 책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달라고 했다던데.

저자에 자기 이름을 넣어달라고도 했다. ‘김승섭과 해인’ 이런 식으로(웃음). 포켓몬스터 중에 주리비얀이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그 인형을 사주는 걸로 협상했다.

사회역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학생 시절에 산업재해 관련 활동을 많이 했다. 애초부터 노동자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 유학 가서도 직업 역학으로 전공을 시작했다. 지도교수가 그중에서도 유전역학의 대가였다. 어떤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어떤 물질에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내는 분야다. 이게 결국 제약회사와 연결되는 거 같았다. 2년쯤 지났을 때 ‘이 공부를 하는 게 맞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박사과정 동기들에게 물었다. “너는 네가 하는 공부가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거 같니?” 마땅한 답을 못 들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 학생이 지도교수와 연구를 할지 말지 판단해서 안 한다고 했다. 지도교수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웃음). 그때부터 다시 원점이었다. 가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니까 해보고 싶은 걸 하자 싶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하니 너무나 당연히 비정규직 문제였다. 자연스럽게 사회역학 쪽 교수들과 닿았다. 2주에 한 번씩만 나를 만나달라고 청했고, 여름방학 동안 논문 세 편을 썼는데 결과적으로 그게 졸업논문이 돼서 2년9개월 만에 졸업했다. 나도 내 얘기 같지 않다. 어떻게 그렇게 했지?(웃음)

매체에 기고했던 원고를 묶은 건 줄 알았는데 5차 수정까지 3개월간 개고(改稿)했다고.

인쇄 들어가는 당일 아침에 결론이 바뀐 글도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세컨드 오피니언’을 많이 구하는 스타일이긴 한데, 편집자인 조유나씨에게도 처음부터 부탁했다. 내 문체나 내용을 존중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마구 얘기해달라고. 교수라는 직업이 무서운 게, 사람들이 내게 틀렸다는 지적을 잘 안 한다.

진행한 연구를 보면 삼성 반도체, 세월호, 쌍용차, 동성애자…. 전선이 첨예한 현장들이다.  

하나하나가 예민하고 정치적이고 아프다. ‘나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나’를 항상 고민한다. 좋은 말이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할 수 없는 말이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자로서 공부하고 논문 쓰면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들을 모으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를 다뤘다고 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런 이유로 시작한 연구들은 아니다. 내 마음이 더 쓰이는 것들, 또 내게 기회가 온 것들, 그중에서도 내가 데이터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을 해왔을 뿐이다. 하나의 연구가 다음 연구를 계속 끌고 왔다.

사회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물음표로 남기지 않고 데이터로 남기는 일을 해왔다.

황지우 시인이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을 추모하며 쓴 글 ‘이 세상을 다 읽고 가신 이’를 가장 좋아한다(이 글은 〈자료집:김현문학전집 16〉에 실려 있다). 세계에는 두 개의 언덕이 있는데, 하나는 짐승이 사는 언덕이고 하나는 신이 사는 언덕이다. 그 둘 사이에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인간은 그 위에 놓여 있다. 삶이 던지는 많은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답을 해버림으로써 짐승이 되거나 신이 되는데, 김현 선생은 계속 질문을 함으로써 인간으로 돌아가셨다는 내용이다. 제가 하는 일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의 말이나 글이 답이나 해결책이라기보다 좀 더 섬세한 질문, 좀 더 깊은 질문이길 바랐다. 질문을 정확하게 던지는 일은 중요하다. 동성애 논쟁을 보자. ‘동성애는 질병인가?’ ‘전환치료는 존재하나?’ 이런 질문들은 이미 오래전 학계에서 ‘아니다’라고 정리된 답이 나와 있는, 소모적이고 아주 오래됐고 쓸모없는 질문이다. 더 이상 묻지 않아야 할 질문과 물어야 할 질문을 구분하고, 물어야 할 질문을 잘 물어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며 삼성 백혈병과 유사한 IBM 사건의 역학조사를 진행했던 리처드 클랩 교수를 따로 찾아가기도 했는데.

2008년 삼성 백혈병 논란의 초기부터 이 사안에 들어가 있었다. 반올림의 창립 멤버인 공유정옥 선생과는 학생 때부터 철거촌 진료도 같이했고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메이데이, 절판)를 여러 사람과 공동 번역하기도 했다. 클랩 교수는 ‘왜 IBM 노동자의 편에 섰느냐’라는 요지의 질문에 “어떤 학자는 그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를 찾아가서 물었다. 정부와 기업은 정치적으로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의 건강에 관심이 없는데, 역학자로서 나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데이터가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그들이 병들고 다치는 걸 지켜봐야 하는 거냐고. 그가 짧고 굵게 답했다. “데이터가 없다면 역학자는 링 위에 올라갈 수 없다”라고. 내게 중요한 지침이 됐다. 말하기 위해서 항상 데이터를 먼저 수집했다.

당신도 누군가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인가?

겸손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게 미안하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이잖나. 솔직히 누가 존경해주고 사랑해주면 기분 좋다. 근데 이게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이를테면 쌍용차 노동자들은 해고되고 복직 못한 이들이 아직도 많은데, 그걸 연구하고 글을 쓴 나는 어떤 의미에서 존경을 받고 사회적 자본이 생긴다. 나의 힘듦이 당사자들에 비할 바가 아닌데 이런 식으로 나에게 자원이 생기는 것들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망가지는 게 금방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현재의 문화·사회·경제적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연구를 하자”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기본적으로 학문은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이지만, 사회역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응용학문이다.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의 수준이 낮다고 연구를 미룰 수가 없다. 고통받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보건학을 하는 나는 왜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할까? 결국 동시대의 어떤 문제들을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는 거다.

후학 양성에 대한 계획을 길게 잡고 실천하는 것도 그 이유인가?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의 계획이 2022년까지 성소수자 건강연구소를 만드는 거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서 연구를 하나씩 진행할 때마다 산을 넘는 기분이다. 어떤 마음이냐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극강의 멋을 추구할 수 있나를 궁리한다(웃음). 〈은하철도 999〉나 〈고스트 바둑왕〉을 보면 나오는 말인데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은 한 세대의 꿈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거라고 하더라. 내 처지에서는 이 말이 교육이라고 들렸다. 내가 지금 책임지고 연구하는 것들은 이런 식이다. 쌍용차 해고자 연구나 성소수자를 연구할 때 적은 비용으로 진행했다. 실은 이 돈을 받고 연구하면 안 되는데, 지금은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데이터조차 없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연구가 됐다. 한계가 많은 데이터지만 그거라도 수집하고, 말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인 거다. 후배들이 연구할 때는 지금 나처럼 꾸역꾸역 하는 게 아니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틀 안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연구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시사IN 신선영7월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올해는 트랜스젠더 연구를 하고 있다.

MTF(Man to Female·트랜스젠더 여성)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가장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아느냐고. ‘내 소변 소리가 다르면 어쩌지’ 걱정한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되게 별 이야기 아닌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타인에 대해 이렇게 뭘 모르는구나 싶었다. 지금 연구 데이터들을 분석하는 중인데, 한국에서 했던 연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트랜스젠더 285명이 연구를 돕고 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자살 시도가 15%로 나오더라. 하…, 자살 ‘생각’이 아니라 ‘시도’다. 저 삶은 어떤 삶일까, 어떤 하루를 버티고 있을까(김 교수는 이 대답을 하며 눈물을 보였다).

남성이고, 이성애자다. 성소수자 연구를 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들을 텐데?

답하기 늘 어려운 질문인데, 당사자성은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당사자성으로만 움직이는 건 아니다. 보수 기독교 쪽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캡처해서 사진도 막 돈다. 나쁜 ×× 하면서. 그날도 사무적인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긴장하고 있는데 자신이 20대 트랜스젠더이고, 연구 소식을 보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는데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는 일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전화를 하기까지 어떤 마음이었을까…. 밖에서 볼 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제 막 부교수를 단 주니어 학자다. 이런 분들이 비빌 언덕이 아무도 없고 어쩌다 보니 나 정도인 거다.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구와 관련해 학교와 갈등은 없나?

내가 한국에서 그렇게 ‘비판받는’ SCI(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 위주의 계산법에 최적화된 사람이라 잘 버티고 있다(웃음). 나는 지원이 없는 건 괜찮은데 내 연구를 건드리는 건 못 참는다. 이런저런 긴장관계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괜찮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논쟁이 가능한 수준까지 가는 길이 참 험난하다.

2010~2014년 진행된 제6차 세계가치조사를 보면 한국인들은 에이즈 환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비중(88.1%로 OECD 국가 중 1위다)이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비중(77.6%)을 앞선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으니까 한국 사회에서 더 큰 낙인을 갖고 있는 에이즈로 낙인을 찍는 것 아닐까. 동성애 반대 시위마다 에이즈와 엮는 피켓이 나오지 않나. 에이즈는 관리가 가능한 감염병이고, 한국은 에이즈 환자 유병률이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나라다. 그런데도 비과학적인 낙인들을 반(反)동성애 운동 진영이 너무나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응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이 같이 가야 한다. 우선은 공략하기보다 낙후시켜야 한다. 동성애에 대한 비과학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비상식적임을 알려주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또 나 같은 사람은 과학적 근거를 계속 제공하는 수밖에 없다.

 

ⓒ김승섭 제공김승섭 교수가 방글라데시·미얀마·네팔 공무원을 대상으로 ‘여성 노동과 건강’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책 에필로그에 산재 노동자와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그 글은 앞의 글들과 다르게 감성적이어서 실을까 말까 정말 고민했다. 가능하면 학자의 이름으로 글을 쓸 때 감성적인 글은 덜 쓰려고 한다. 대학 시절에 산업재해 연구모임을 했는데, 공장에 가보면 냉소적이었다. ‘너네 선배들도 멋진 얘기 늘어놓더니 다 떠났다’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마다 마음으로 결심했던 거 같다. 내가 그 마음의 씨앗을 어떻게 간직해서 피우는지 보여주고 싶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고. 의과대학 1학년 때였는데,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손가락 열 개가 온전히 있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었다. 앞으로 내 삶을 버텨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많이 간직하고 싶어서 그때부터 글을 많이 썼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어떤 사람은 좀 더 이론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서 스스로를 지탱하고, 나는 그런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간직하는 게 힘이 됐던 거 같다.

‘어떤 삶을 살겠다’라고 다짐했지만 처한 환경에 따라 느슨해지는 것도 순식간이지 않나?

친구를 정말 잘 사귀어야 한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과 아주 의도적으로 가까이 있어야 한다. 또 내가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나를 집어넣어야 한다. 과도한 표현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는 스스로 상처를 내는 수밖에 없다.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지 않으면 안 보이고 보였을 때만 인지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내가 사회운동과 가까이 있긴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논문으로 말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종종 무시하지만 논문이 갖고 있는 힘이 있다. 논문은 내가 말하고 있는 결과의 한계를 명시한다. 내 말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했을 때 쓸 수 있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한정된 데이터로 이런저런 말을 하지만, 나는 내 데이터가 갖고 있는 한계를 인정한다. 이게 논문 글쓰기 방식이다.

소방공무원의 현실 등 감정에 호소하는 사례는 일시적으로 사람을 분노하게 할 수 있지만,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역시 구체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학문은 대체로 보수적이기 쉽다. 과거의 이야기이거나, 안정적인 사람과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다루기 좋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데이터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내가 한 연구의 결론을 보면 너무 당연한 말들이다. 근데 나는 중요한 많은 이야기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듣고 나면 너무 당연한 말 같은데 그동안 언어와 숫자로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답을 끝까지 찾다가 죽을 거 같다. 평생 물음표를 던지다 가고 싶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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