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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미국은 없다?

2017년 09월 19일(화) 제522호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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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 프로그램 폐지를 공언했다. 다카는 미국에 5년 이상 거주한 불법체류 청년의 추방을 유예하는 프로그램이다. 보완 입법에 대한 견해가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다카 덕분에 일자리도 얻고 차와 아파트까지 샀는데 앞으로 6개월 안에 내 삶을 완전히 재조정하란 말인가?” 방글라데시 태생으로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 대학원생인 사피르 와제드 씨(27)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격렬한 분노를 드러냈다. 9월5일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체류 청년의 추방을 유예하는 다카(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프로그램을 전격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보완 입법 마련을 위해 6개월 유예기간을 두었지만 80만명에 달하는 불법체류 청년들에게 다카 폐지 결정은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불법체류 청년들은 본인 의사로 미국 법률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 16세 이전 청소년 시절 미국으로 불법 입국한 부모를 따라왔다. 이후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직장을 구해 ‘미국화’된 미국인들이다. 법적 신분이 ‘불법 체류자’일 뿐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입법을 시도했다. 예를 들면 16세 이전에 미국에 건너와 최소 5년 이상 거주하는 등 일정 조건을 갖추면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는 이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매번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2년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우회로’를 택해 이들을 구제했다. 이민법 개정이 아니라 행정명령으로 다카 프로그램을 전격 도입했다. 부모를 따라 불법 입국해 최소 5년을 살면서 학교에 다니거나 취업한 청년들에 대해 추방을 유예해주었다.

현재 다카 프로그램 수혜자들은 캘리포니아·플로리다·일리노이·뉴욕·텍사스 등 불법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5개 주에 밀집해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올해 3월 현재 불법체류 청년은 78만7580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압도적 다수인 78%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출신이고 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페루 등 중남미 출신이 그 뒤를 잇는다. 한국 출신 불법체류 청년도 최소 7000명에서 최대 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다카 폐지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싸늘하다. NBC 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가 다카 프로그램 유지에 공감했다. 이런 여론을 반영하듯 다카 폐지 결정을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미국 전역의 다카 프로그램 수혜자들은 물론 150개 이상의 친이민 단체들은 트럼프를 ‘거짓말쟁이’ ‘괴물’ 따위로 부르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애플·페이스북·구글·아마존·휴렛패커드·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IT 기업을 포함한 기업 대표 400여 명은 트럼프에게 항의성 연대 서한을 보냈다(54쪽 상자 기사 참조). 이 연대 서한에는 주식 투자의 귀재이자 기부가로 이름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동참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꿈을 키워가는 이들 청년은 미국 기업과 경제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존재이다”라며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는 “이번 결정은 아마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가장 잔인한 행위일 것이다”라며 맹비난했다. 지난 1월 퇴임 뒤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왔던 오바마 전 대통령도 “우리 사회에 어떤 위협도 가한 바 없으며, 자신들의 잘못으로 이곳에 온 것도 아닌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협해선 안 된다”라며 다카 폐지 결정의 철회를 촉구했다. 급기야 뉴욕 등 미국 내 15개 주의 법무당국은 “이번 조치가 이민자의 적법한 권리 절차를 침해한다”라며 뉴욕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다카 폐지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AFP PHOTO
9월5일 미국 워싱턴 주에 위치한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앞에서 다카 프로그램 폐지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트럼프 모형 피켓을 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나름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선거운동 당시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곧바로 다카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작 취임 이후에는 다카 프로그램 수혜자들이 선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폐지 결정을 차일피일 미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텍사스 등 공화당이 집권한 10개 주 주지사들이 “9월5일까지 다카를 폐지하지 않을 경우 그 위헌 여부를 법원에 묻겠다”라고 압박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9월5일 다카 폐지를 전격 발표했다.

다카 폐지가 기정사실이 된 만큼, 관심은 의회가 마련할 보완 입법에 쏠려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적극적인 보완 입법을 통해 불법체류 청년들을 구제할 방침이다. 문제는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공화당은 전통적 보수 가치를 추구하는 주류파와 트럼프의 포퓰리즘 노선을 지지하는 극우파로 분열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한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이 두 차례 의회에 상정됐지만 통과하지 못한 것도 이런 당내 분열 때문이다.

공화당의 분열을 이용하면 불법체류 청년들을 구제하기 위한 보완 입법이 의회를 통과해 다카 폐지를 무력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원에서 공화당 의원 24명, 상원에서 12명이 이탈해 보완 입법에 합세하면 의회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공화당 지도부 및 소속 상원의원들은 조속한 보완 입법 마련에 긍정적이다. 공화당의 제임스 랭크퍼드 상원의원은 “의도적으로 불법 입국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건 당연하지만 부모의 잘못을 자녀들에게 물을 순 없다”라는 의견이다.

그러나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보완 입법에 냉랭한 편이다. 대표적 반이민파인 스티브 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다카 폐지야말로 법치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240명 가운데 60%가 불법체류자의 합법화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가 보완 입법 처리를 두고 정치적 흥정을 벌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7월 하원은, 16억 달러(약 1조8000억원) 규모의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비가 포함된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9월8일 현재 이 예산안은 상원에서 계류 중이다.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전원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민주당에 “내년도 예산안을 양해해주면 보완 입법 마련에 협조하겠다”라는 ‘빅딜’을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장벽 건설 반대’를 사실상 당론으로 결정해 빅딜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다카 폐지 발표 이후 어정쩡한 트럼프

이처럼 양당의 견해가 팽팽히 대립하는 상황이어서 내년 3월까지 보완 입법 처리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유예기간이 끝나는 2018년 3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당장 청년 60여만명이 추방 대상에 오르게 된다. 멀쩡히 미국인으로 살아온 청년 수십만명이 강제로 추방되는 사태가 현실화하면, 그 책임은 다시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트럼프 역시 이런 혼란을 의식하고 있는지 다카 폐지 발표 이후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 폐지 발표 당일인 9월5일 저녁 트위터를 통해 “의회가 6개월 안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이 문제를 다시 들여다볼 것이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그의 메시지를 ‘의회에서 보완 입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행정명령을 통해 불법체류 청년들을 구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튿날(9월6일)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 폐지를 재고할 생각이 없느냐”라는 기자들 질문에 “재고는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쯤 되면 트럼프의 의지가 어느 쪽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심지어 다카 폐지로 지지층의 마음을 얻은 트럼프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 공조해서 보완 입법을 마련하는 ‘정치적 묘기’를 부리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다카 프로그램 수혜자로 조만간 병원에서 일하게 된다는 모니카 라사로 씨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의회를 압박할 것이다. 특히 다카 프로그램에 동정적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에게 호소할 것이다. 이번 다카 폐지 결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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