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흙길 끝에 작은 집이 있었다. 밝은 연두색 양철 지붕에 처마 높이마저 낮았다. 집주인은 이제 나이가 들어 등이 굽었다. 키가 170㎝인데, 고개를 숙여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쪽 다리를 잃은 강아지가 방문객을 맞았다. 집안에 들어서면 손때 묻은 살림살이가 눈에 띄었다. 어떤 이들은 이곳을 폐허라고 폄하했다. 정작 집주인은 느긋했다. “나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절제합니다.” 대통령 때도, 퇴임 뒤에도 절제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호세 무히카 이야기다(〈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지음, 2016). 


무히카는 2010년 3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우루과이 제40대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젊었을 때 ‘민중해방운동-투파마로스’의 게릴라 전사로 활동하다 붙잡혀 14년간 복역했다. 게릴라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자 진보 진영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재임 때 인기가 별로 없었다. 무히카 역시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퇴임 때 그는 56% 지지율을 기록했다.

무히카는 재임하는 내내 월급(1만 달러) 가운데 87%를 기부했다. “내게는 농장이 있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사는 방식이 바뀐 것도 아니다”라며 주로 아이를 돌보며 혼자 사는 여성들을 위한 주거 사업에 월급을 기부했다. 퇴임 뒤 그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최근 그의 부인 루시아 토폴란스키 상원의원이 우루과이의 첫 여성 부통령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삶을 기록한 책을 읽으며 어떤 분이 떠올랐다. 맞다. 주진우 기자가 쫓고 있는 그분이다. 그분도 기부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재산 다 내놓겠다”라며 전 재산을 장학사업 재단에 기부했다. 웬일인지 그 재단은 지난해 총자산 505억원 가운데 2억6680만원(0.5%)만 장학사업에 썼다. 주진우 기자의 ‘MB 프로젝트 1탄’(제519호 ‘이명박 청와대 140억 송금작전’)에 이어 2탄을 선보인다. 주 기자의 프로젝트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이 프로젝트도 주 기자가 끝을 볼 것이다.

9월17일 〈시사IN〉이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중림동 다이내믹’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다양한 이벤트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생각해보니 그분도 2007년 창간 때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지막까지 함께한 ‘시사人’들과 소액주주들의 작은 희망들은 살아 있는 기사, 숨 쉬는 기사가 되어 대한민국 자유언론의 큰 기둥이 될 것입니다. ‘정직한 펜’으로 정론 창달에 앞장설 〈시사IN〉의 웅비를 기대합니다(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감사할 따름이다. 그분도 커버스토리 기사를 꼼꼼히 읽으시라고 이번 호부터 활자 크기를 조금 키웠다. 그분에게 드리는 〈시사IN〉 식구들의 작은 선물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