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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범죄가 있다

2017년 09월 28일(목) 제523호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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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벨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소녀 살인범 중 한 명이다. 이 사건은 미성년 범죄자의 신원 보호와 관련해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투옥 12년 만에 석방된 그녀는 현재 60세다.

아이들이란 순진하고 연약한 존재다. 적어도 일반적으로는 그래야 한다고 여겨지는 듯하다. 게다가 그 외모가 인형처럼 어여쁜 여자아이라면 더 쉽사리 그런 기대가 생긴다. 그런 여자아이가 사람을 둘이나 죽였다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게다가 살인을 했다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반성은커녕 평정조차 잃지 않았다면 말이다.

1968년 5월25일, 네 살배기 마틴 브라운이 런던 북동부의 도시 뉴캐슬 근교 폐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날은 메리 플로라 벨의 열한 번째 생일 전날이었다. 시신 옆에 굴러다니는 빈 약병 때문에 아이는 병 속에 들어 있던 약을 잘못 먹어서 죽었다고 여겨졌다. 며칠 후 방치된 채로 비어 있는 고아원 건물에 누군가가 침입해서 마틴의 살인과 관련한 낙서를 남겼다. 경찰은 낙서가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Mail Online 갈무리
1968년 메리 벨은 한 고아원 건물에 침입해 살인과 관련한 낙서(위)를 남겼다.

두 달 후, 세 살 난 브라이언 하우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번에는 목 졸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죽은 어린아이의 몸 여러 군데에 칼로 베인 상처가 남아 있었다. 머리카락은 잘려 있었고 성기도 역시 절단되어 있었다. 경찰은 목에 남은 흐린 손자국의 특징으로 보아 범인이 어린이에 가까운 청소년이라고 판단했다. 경찰은 곧 마틴의 죽음을 이 사건과 연관 지었다. 아마도 마틴의 경우에는 살인범의 힘이 충분히 세지 않아서 손자국이 남지 않았으리라고 보았다.

근처의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탐문에 들어간 경찰은 메리와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열세 살의 노마 조이스 벨의 언행이 수상하다고 보았다. 두 소녀는 우연히 성이 같았지만 친척은 아니었다. 둘의 진술은 서로 모순되었고 자꾸 바뀌었다. 경찰이 두 소녀를 추궁하자 서로 상대방이 브라이언의 목을 졸랐다고 주장했다.

노마는 울고 긴장하고 말을 더듬었다. 전형적인 아이의 반응을 보였다. 겁을 먹은 듯이 보였고 매우 혼란스러워 보였다. 노마는 자신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메리가 계속해서 소년의 목을 졸랐다고 증언했다. 그래서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다시 메리를 보았을 때 메리가 혼자서 브라이언의 개를 데리고 있었다고 했다.

반면 메리는 매우 차분하고 자신감 넘쳐 보였다. 경찰이 신문을 하려 하자 메리는 변호사와 통화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는 “나는 상관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태도는 어른들에게 좋은 영향을 전혀 주지 않았다. 마틴의 엄마는 메리가 아들의 시신이 발견된 지 나흘 뒤 집에 찾아왔다고 했다. 아들이 죽었다고 말하는 마틴의 엄마에게 “알고 있다. 소년이 관 속에 누워 있는 걸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마의 아버지는 메리가 자기 딸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따귀를 때려 쫓아낸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증상 보인 열한 살 소녀

메리의 엄마는 성매매 여성이었고 열여섯 살에 메리를 낳았다. 메리의 어린 시절은 정신적·신체적·성적 학대로 얼룩졌다. 메리의 어린 엄마는 아기를 남에게 줘버리려 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죽이려고도 했다. 할 수 없이 딸을 키우게 된 메리 엄마는 성매매를 할 때 딸을 이용하기도 했다. 메리는 엄마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하고 엄마의 ‘손님’들에게 추행당하면서 사소한 도둑질을 일삼고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등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자랐다. 그래도 소녀는 마치 인형처럼 예쁘고 당돌하고 영리했다. 반면 노마는 좀 늦되고 둔하고 어리석은 아이로 여겨졌다. 비록 더 나이가 어렸지만 둘 사이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쪽은 메리였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심리학자들은 메리가 영리하고 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할 줄 알며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증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판사는 메리가 오로지 살인의 즐거움 때문에 아이들을 죽였다고, 이후로도 다른 아이들에게 중대한 위험이 될 수 있으므로 면밀한 감시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1968년 12월 열한 살의 메리는 미성년자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평생 동안 시설에 구금될 것을 선고받았다. 이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고 상태에 따라 풀려날 수도 있었다. 선고가 내려졌을 때 메리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메리는 재판 당시에도 이후에도 살인을 인정한 적이 없다. 노마는 무죄 방면되었다.

ⓒMail Online 갈무리
출소 뒤 찍힌 메리 벨의 모습(왼쪽). 그녀는 열한 살 때(위)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
메리의 수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소녀는 여전히 예뻤다. 간수나 동료 죄수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는 정황이 계속 나왔다. 1977년 스무 살이 된 메리는 개방형 교도소에서 도망쳤다. 감옥 근처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메리를 태워준 남자는 검은 머리의 젊은 여자가 그 유명한 메리 벨이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메리를 데리고 클럽에 가 술을 사주고 같이 잠을 잤다. 클럽에 간 것도, 술을 마신 것도 메리에게는 처음이었다. 남자는 메리가 위험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이상하지 않았으며 그저 사랑스러운 젊은 여자였고 둘은 짧지만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남자는 메리와의 행적을 타블로이드 신문에 팔았다.

사흘 후 다시 체포된 메리는 3년 후인 1980년 석방되었다. 갇힌 지 12년 만이었고 23세였다. 석방 당시 그녀는 새로운 신원과 신상에 대한 비밀 유지를 보장받았다. 4년 후 그녀가 딸을 낳았을 때, 딸도 역시 같은 보장을 받게 되었다. 애초 이런 조치는 메리의 딸이 18세가 될 때까지만 유지하도록 돼 있었다.

1998년 메리의 비참한 어린 시절이 묘사된 책이 출판되었을 때 그녀가 인터뷰를 해주고 돈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여론은 메리가 살인의 대가로 금전적 이익을 얻자 공분했다. 모녀는 집 앞으로 몰려온 기자들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른 곳으로 피신해야 했다. 이때까지도 메리의 딸은 엄마의 과거를 몰랐다. 메리는 딸의 신원 보호 기간을 죽을 때까지로 연장해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2003년 법원은 마침내 이를 허용했다.

메리 벨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소녀 살인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미성년 범죄자의 신원 보호와 관련해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을 딴 이른바 ‘메리 벨 결정(Mary Bell Order)’은 재판 절차와 관련해 미성년자의 신원을 노출할 위험이 있는 정보의 공개를 금지하는 결정의 통칭으로 쓰이고 있다.

책 출간을 제외하고 메리는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아간 듯하다.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고 딸이 아들을 낳아 할머니가 되었다. 손자 역시 신원이 공개되지 않도록 되어 있다. 그 세월 동안 그녀가 사회에 특별한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 오랜 수감 생활로 인한 교화의 덕인지 신원 보호 덕인지는 모르겠다. 한때 메리 벨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소녀는 현재 60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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