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라면 꼭 거치는 취재처가 있다. 일간지 수습기자들은 경찰서를 근거지로 삼아 관할 소방서를 매일 확인한다. 〈시사IN〉 막내 기자들에게도 소방서는 통과의례 취재처다. 2003년 1월, 원 〈시사저널〉 막내 기자였던 차형석 기자도, 2008년 3월 수습을 갓 뗀 변진경 기자도 소방서를 취재했다. 위클리 매거진 기자들이 취재에 나설 때는 이미 ‘사이렌’이 울린 뒤일 때가 적지 않다. 순직 소방관들에 대한 기사가 지면에 난 뒤다.

내가 사회팀장이었던 2014년 8월에도 그랬다. 사회팀 막내 전혜원 기자를 강원도 춘천소방서로 급히 보냈다. 그해 7월17일 세월호 구조 업무에 투입됐던 강원도 소방본부 헬기가 광주 도심에 추락해 소방관 다섯 명이 순직했다. 전 기자는 취재를 마치고 소감을 묻는 소방대원들 앞에서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소방대원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봤기 때문이다. 대원들의 프로필 사진은 모두 순직자의 이름이 적힌 노란 리본이었다.

내가 2년차 기자였던 2001년 3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불이 났다. 2층짜리 낡은 다가구 주택이었다. 새벽 3시 방화로 시작된 불길은 작은방과 거실에 이어 안방까지 덮쳤다. 관창수들은 화점(발화점)을 찾아 공략에 나섰다. 그때 “아들이 안에 있다”라는 울부짖음이 들렸다. 소방대원들은 주저하지 않고 진입했다. 순간 물과 불을 머금은 낡은 주택이 무너졌다. 소방관 6명이 현장에서 순직했다. 울부짖음이 무색하게도 내부에 미구조자는 없었다. 순직자뿐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의 후유증도 컸다. 건물 더미에 깔렸던 한 대원은 살아남았지만 왼쪽 발목이 굳어 다리가 온전치 않았다. 천직으로 알았던 소방관을 그만둔 대원도 있었다(전세중, 〈어느 소방관의 이야기〉). 원 〈시사저널〉 편집국장이었던 소설가 김훈은 소방관들이 쓰는 전문 용어와 기구를 설명하며 자신이 목격한 생사의 현장을 자주 들려주었다. ‘김국(김훈 국장의 애칭)’의 어렸을 때 꿈은 ‘소방수’였다. 달리는 소방차를 볼 때면 김국은 늘 ‘살려서 와라, 살아서 돌아오라’고 바랐다.

9월17일 새벽 3시51분 강원도 강릉시 석란정에서 불이 났다는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 경포 119안전센터(경포센터)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오전 4시29분 건물 바닥에서 연기가 다시 나자 이영욱 소방위(59)와 이호현 소방사(27)가 진입했다. 홍제동 현장처럼 석란정이 무너졌고 두 소방관이 순직했다. 이영욱 소방위는 퇴직을 1년, 이호현 소방사는 결혼을 1년 앞뒀다.

그들이 국립묘지에 묻힌 날, 그들보다 월급도 많이 받는 또 다른 공무원들의 댓글 공작 기사가 포털 사이트 뉴스 화면을 장식했다. 누가 진정 음지의 영웅들인가? 두 소방대원의 명복을 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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