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열등하다”라는 국장급 고위 인사의 발언에 외교부가 진상 조사에 나섰다. “나 때는 여자들이 공부도 못해서 학교에 있지도 않았다”라는 그의 안일함 앞에서 “가장 무섭고 해결하기 어려운 권력은 몰라도 되는 권력”이라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문장이 떠올랐다. 수는 적을지언정 그 시절에도 분명 존재했을 영특한 여학생의 이야기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좌절당하거나 심지어 태어나지도 못한 이들의 이야기는 알 턱이 없을 그 권력 말이다.

시대착오적 발언 같지만 아주 낯선 모습은 아니다. 회사에서 여직원의 임신·출산·육아로 업무 공백이 생기면 “이래서 여자를 뽑으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임신·출산을 하면 여성이 어떤 신체 변화를 겪는지, ‘워킹맘’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어떤 고충이 있는지 모르는 이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란 수식어가 곧 족쇄가 되는 현실과 ‘몰라도 되는 권력’은 여전히 힘이 세다.

ⓒ정켈 그림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 ‘문소리’ 역시 ‘여’배우이기에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맨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없고, 칭찬이랍시고 외모 품평을 들어도 정색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괜찮은 배역을 연기할 수 없다. 연기력이 부족해서일까? 매력이 부족해서일까? 영화 속 대사에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한국 영화가 조폭 아니면 형사” 일색이라서다. ‘여성의 삶’을 몰라도 되는 창작자와 제작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스크린 속 여성은 살아서 섹시한 눈요깃감이 되거나, 잔혹하게 죽어간다. 흔히 여배우 기근이라 불리는 현상은 (배우 한예리의 표현대로) 사실 시나리오 기근일지 모른다. 현실을 외면한 채 대형 여배우가 혜성처럼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은 ‘경력 같은 신입’을 원하는 고용주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배우는 오늘도〉가 적은 상영관 수에도 꾸준히 입소문을 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여성이 도구 역할에 그치는 영화에 그동안 염증을 느낀 관객들이 작지만 또렷한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는 것이다. 물론 오랜 갈증이 영화 한 편으로 채워질 리 만무하다. 속 시원한 대리만족을 기대했다면 〈여배우는 오늘도〉가 아쉬울 수 있다. 영화 속 문소리는 ‘베니스에서 상 받은 천하의 문소리’보다는 아내, 며느리, 엄마, 딸, 배우의 일인 다역을 허겁지겁 해내는 생활인에 가깝다. 여배우를 향한 세상의 폭력적인 시선에 맞서는 대신 선글라스를 꺼내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가족, 매니저, 후배에게 화를 벌컥 쏟아내버릴 때도 있다.

“다들 비슷한 고민 하지 않으세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해보면 스크린 밖 여성의 삶에서도 사이다를 마신 듯 통쾌한 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 수행할 역할은 많은데 그 기대가 서로 모순되어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잦다. 저급한 농담을 들어도 당장 화를 내야 좋을지 일단 넘기는 게 좋을지 순간적으로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고민이 따르고 후회가 남는다. 평생 숨겨야 한다고 배워온 이 미묘한 마음의 떨림까지 포착해내는 배우가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의의를 찾아도 좋지 않을까.

문소리는 영화를 통해 “다들 비슷한 고민 하지 않으세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 그가 던진 물음에 이제는 관객이 답할 차례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계기로 각자의 경험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때로 좌절하고 미숙하고 주저할지라도, 포스터 속 문소리의 모습처럼 오늘도 내 두 발로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일만은 멈추지 않겠노라는 다짐이 근사한 질문에 걸맞은 근사한 대답이 될 것이다.

기자명 양정민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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