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신입생 모집 현수막이 학교 안팎에 걸렸다. 정문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통학로는 푸른 물이끼가 융단처럼 뒤덮었다. 산책로 벤치에는 잡초 넝쿨이 무성하게 앉았고 운동장의 축구 골대는 칠이 벗겨지고 그물이 찢어져 있었다. 9월11일 찾은 전북 남원시 춘향로 439 서남대학교에는 새 학기를 맞은 대학 캠퍼스의 활기가 없었다.

ⓒ시사IN 조남진폐교 위기에 놓인 전북 남원시 서남대학교의 처참한 전경.
관리되지 않은 나무들이 말라죽어 있다.

서남대는 지난 8월24일 교육부로부터 학교 폐쇄 계고를 받았다. 교육부는 “대학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라며 추가 이행명령, 행정예고, 청문 등의 절차를 거쳐 오는 12월 중 최종 학교폐쇄 명령을 할 계획이다. 이변이 없는 한 서남대는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학생 2383명과 교직원 418명(지난해 4월1일 기준, 아산캠퍼스 포함)이 모교와 일터를 잃고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처했다. 1991년 개교한 26년 전통의 학교, 의과대학과 학군사관(ROTC)까지 유치한 사학, 전북 지역의 대표적인 4년제 종합대학인 서남대학교는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

열쇳말은 ‘이홍하’다.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씨(79)는 1980년대부터 전국에 고등학교 3개, 대학교 6개, 부속병원 2개를 소유·운영해온 ‘재벌 사학인’이다. 그가 세운 대학 여섯 곳 중 한 곳은 이미 폐교했고(광주예술대), 한 곳은 다른 재단에 넘어갔으며(서울제일대학원대학), 나머지 네 곳은 폐교가 코앞이거나(서남대) 거론되고 있다(광양보건대·신경대·한려대). 현재 학생 학자금 대출 등 정부 재정 지원이 일절 제한된 전국 12개 부실 대학 리스트의 3분의 1을 이씨의 대학들이 차지한다. 고등학교 3곳 중 2곳도 임시이사가 파견된 상태다. 설립자 이씨는 지금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학교 돈 100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5월 대법원에서 최종 징역 9년과 벌금 90억원을 선고받았다. ‘시대를 풍미한’ 이씨의 ‘건학’ 역사를 거슬러 짚으면 서남대, 아니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어제와 오늘이 보인다.

 

ⓒ연합뉴스보석으로 풀려났다 2013년 4월11일 재구속되는 이홍하씨.
그는 대법원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1977~1997년
재벌과 흡사한 ‘문어발 개교’

이씨는 원래 광주의 고등학교 생물 교사 겸 목욕탕 주인이었다. 고등학교 가정 교사였던 부인 서복영씨(76·전 한려대 총장)와 함께 1977년 학교법인 홍복학원 설립 인가를 받고 1981년 옥천여상(현 서진여고)을 세운 게 시작이었다. 1985년 광남고(하남학원), 1986년 대광여고(홍복학원)를 추가로 개교했다. 1990년대에는 대학 설립에 뛰어들었다. 1991년 서남대(서남학원), 1994년 광양보건대(양남학원), 1995년 한려대(서호학원), 1997년 광주예술대(하남학원) 등 끊임없이 학교 법인을 인가받고 산하에 학교를 세웠다.

학교를 세우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교지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현재 4년제 대학 기준 300억원 이상) 등 안정적인 교육 활동에 필요한 기본 자산을 출연해야 정부로부터 학교 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다. 평범한 교사 겸 목욕탕 주인이었던 이씨는 어떻게 이 많은 학교를 세울 수 있었을까? 일단 하나를 세우면 쉬웠다. A학교 학생들에게 받은 학비를 A에 쓰는 대신 땅을 사고 거기에 또 다른 학교 B를 지었다. B에서 들어온 등록금으로는 C를 세우고, C는 또 D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교육부에 설립 인가를 신청할 때 제출하는 재산출연증서의 잔액증명서는 ‘칼로 긁고 타자기로 쳐서(1997년 10월14일 광주지방법원 1심 판결문)’ 위조했다. 그의 학교에 재직한 교직원들의 일치된 목격담에 따르면 이씨는 “늘 등록금이 들어오는 날이면 큰 가방과 함께 어디론가 떠났다”.

등록금이 빠져나간 학교에서 피해는 교수와 학생들의 몫이었다. “…5층짜리 건물 한 동이 교사(校舍)의 전부였다. 그래서 옆에 있는 고등학교 건물을 교수 연구실, 강의실, 실습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교탁도 제대로 없고 의자도 고등학교에서 버린 것을 주워다 쓰기도 했다. 비만 오면 여기저기서 물이 새고 운동장은 발이 빠져 들어갈 수가 없었다(광주예술대 이보룡 교수, 〈사회평론 길〉 1998년 8월호).” 박성호 한려대 해직 교수도 〈당대비평〉 2000년 여름호에 이렇게 썼다. “개교한 지 3년이 지나도록 도서관이 없었다. … 백과사전 한 질이 없었다. 세상에,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 백과사전 한 질도 없는 학교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강의 준비를 하다가 백과사전을 보려면 인근에 있는 시립 도서관으로 가야 했다. 복사를 하려면 신분증을 맡겨야 했는데 도저히 교수 신분증을 내보일 수가 없어 대신 주민등록증을 맡겼다.”

▋1997~2000년
꼬리는 잡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참다 못한 학교 구성원들이 들고일어났다. 1997년 광주예술대를 시작으로 한려대, 서남대, 광양보건대 등에서 교수협의회가 조직되고 학생·지역주민들도 함께 이홍하(당시 광주예술대 이사장 겸 서남대 총장) 퇴진 운동을 벌였다. 이런 과정에서 이씨는 교수를 폭행하고 현금 500만원으로 서남대 총학생회장을 매수하려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학교 구성원들의 요청으로 1997년 2월 교육부가 광주예술대 감사에 나섰다. 감사 결과 교육부의 판단은 뜻밖이었다. “설립자가 학생 등록금을 유용한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고, 오히려 법인 전입금 대폭 지원, 적극적인 시설 투자 등으로 학교 발전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1998년 3월 교육부 회신 공문).” 교육부는 오히려 “조사에 따른 행정력을 소모시킨 일 등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 그 내용이 상이한 경우 (민원 제기) 당사자도 관계 법령에 따라 처리됨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라며 조사를 요청한 교수협의회 측에 경고하기도 했다.

교육부가 ‘학교 발전에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고 평가한 이씨는 불과 한 달 뒤(1998년 4월25일)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검찰 조사 결과 1995년 7월부터 1997년 4월까지, 2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이씨가 광주예술대·한려대·서남대 등에서 횡령한 등록금과 국고보조금이 모두 426억원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광여고에 설치된 기획실이 다른 6개 대학·고등학교의 운영과 재정에 관한 장부를 조작하는 ‘컨트롤타워’였고, 5개 법인 이사 28명 중 21명의 자리에는 이씨 친인척과 측근들이 앉아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1997년 10월14일 1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징역 3년2개월을 선고했다.

 

ⓒ시사IN 이명익서남대가 폐교되면 잔여 재산은 설립자 이홍하씨의 딸 이서진씨가 총장 직무대행으로 있는 신경대(위)와 한려대로 귀속된다.

정의가 구현된 걸까? 이씨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1998년 2심에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형량이 줄어든 이씨는 1999년 3·1절 특별사면으로 감옥에서 나왔다. 박상천 당시 법무부 장관이 이씨와 초등학교 동창인 점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비리 사학인 이홍하’ 뉴스가 매스컴에서 점차 사라지는 동안 이씨와 측근들은 하나둘씩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무너진 건 학교와 교수, 학생들이었다. 1998년 8월3일 교육부는 광주예술대와 한려대에 폐쇄 계고를 통보했다. 2000년 3월 광주예술대는 진짜 문을 닫았다. 헌정 사상 최초의 강제 폐교였다. 광주예술대의 학생 196명과 교수 27명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간신히 폐교를 모면한 한려대에서도 이씨와 싸우던 교수 39명이 해직됐다. “당시 인근 공장에서 일하며 200여만 원에 달하던 등록금을 내고 퇴근 뒤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야간대학 제자들의 눈빛을 보고 외면할 수가 없어” 싸움에 앞장섰다 해직된 김병현 당시 한려대 교수협의회 회장은 “그때 끝장을 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고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비리 사학인은 건재하고 학교만 폐교되는 식으로 일이 마무리되면서 이후 이씨나 다른 사학인들이 마음 놓고 더 큰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 같다.”

▋2000~2013년
개과천선 대신 진화를 택하다

감옥에서 석방된 이홍하씨는 더 강해졌다. 광주예술대 폐교 절차가 끝나기도 전인 2000년 초, 이씨는 또 다른 학교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다. 2005년 경기도 화성시에서 개교한 신경대학교의 학교법인 신경학원이다. 2002년에는 서남대학교 아산캠퍼스를 개교했다. 이전에 설립한 학교들에서 횡령한 교비로 사들인 땅에 지은 학교이다. 2011년에는 서울 강북구에 서울제일대학원대학교를 세웠다. “실질적인 설립자가 아닌 명목상 설립자의 명의로 대학 설립 심사 자료를 제출(2014년 2월6일 교육부 보도자료)”하는 방법을 택했다.

수법도 더 교묘해졌다. 열리지도 않은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하고, 교사와 교수들에게 대출을 강요해 그 돈을 착복하고, 측근이 만든 건설회사로 공사비를 빼돌리고, 빼돌린 교비로 부동산을 사들일 때는 타인 명의를 빌렸다. 2007년 2월 서남대 교비 3억8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의과대학과 ROTC 유치에도 성공한 이력이 있는 이씨는 2007년 로스쿨 유치에도 뛰어들었다. 2010년 이후에는 역시 횡령금으로 마련한 경기도 파주 땅으로 신경대학교와 광양보건대 캠퍼스 이전을 추진했다.

 

 

ⓒ연합뉴스7월4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서남대 의과대학 학생들은 집회를 열고 교육부에 서남대 정상화 방안을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끊임없이 새 사립대 설립에 나선 이씨를 막은 건 2012년 12월 다시 시작된 검찰 조사였다. “당시 승진 누락에 불만을 품은 내부 핵심 가담자가 검찰에 장부들을 가져다줬기에 (조사가) 시작됐다”라고 한 대학 관계자가 말했다. 

내부 갈등이 아니었으면 영영 감춰질 뻔한 비리 규모는 사학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2007년부터 2012년 8월 사이 횡령한 금액만 1000억원을 넘는다. 서남대(333억여 원)·한려대(148억여 원)·광양보건대(403억여 원)·신경대(15억여 원)에서 교비 약 900억원, 자신이 설립해 운영해온 건설사에서 공금 약 105억원을 빼돌렸다. 자녀의 아파트 구입과 유학, 개인 차량 유지비 등에도 이 돈이 쓰였다.

2013년 6월20일 이씨는 1심 재판에서 징역 9년과 벌금 9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형량은 지난 5월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됐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이 여러 학교를 운영하며 절대적인 지위에서 혼자만의 사학 왕국을 구축하고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학교들은 제때 공과금을 납부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적으로 피폐한 상황에 내몰려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갔다. … 학교 구성원들은 길게는 10년 넘도록 완공되지도 못한 채 흉물스럽게 방치되면서 오로지 노임 명목으로 교비를 빼내는 수단이 되어버린 건물들을 보며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2013~2017년
학교는 유한하되 설립자는 영원하다

설립자의 횡령으로 껍데기만 남은 대학을 지난 몇 년간 지켜온 건 교수와 학생들이었다. 김철승 서남대 교수협의회 회장은 “교수들이 1년에 월급을 두 번 받더라도 최대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켜주려 노력하고 있다. 이홍하씨가 나가고 나서 오히려 1인당 교육 투자비도 높아지고 학생 편의시설도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소하진 서남대 총학생회장(임상병리학과)은 “실습 시설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면서도 학생들은 다른 곳에서 학교를 인수할 수도 있다는 기대에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걸어왔다”라고 말했다.

실제 2015년 명지의료재단이 서남대 재정기여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서남대 정상화 계획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서울시립대와 삼육대학교가 서남대 인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들 학교의 서남대 인수 신청을 모두 반려했다. “종전 이사(옛 재단)의 동의가 필요하다”라거나 “횡령금 333억원을 채울 방안이 미비하다”라는 이유였다. 이후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E등급을 받고 의과대학 인증 평가에서 탈락한 서남대는 8월24일 결국 폐교 계고를 받았다. 지난 9월5일 한남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대전기독학원이 서남대 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교육부는 서남대 폐교 조치에 대해 “현 정부의 국정 과제인 사학 비리 척결을 위해 사학 비리 등 중대한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들이 사학에 참여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서남대가 폐교되면 사학 비리가 모두 척결되는 걸까? 현행법상 그렇지 않다. 사립학교법 제35조 1항에 따르면 해산한 학교 법인의 잔여 재산은 정관으로 지정한 자에게 귀속하도록 되어 있다. 서남학원(서남대) 정관상 지정된 잔여 재산의 귀속자는 ‘학교법인 신경학원 또는 서호학원’이다. 이홍하씨가 설립한 또 다른 대학인 신경대와 한려대의 학교법인이다.

잔여 재산에 관한 서남대 정관 개정이 이뤄진 때는 2013년 12월30일. 이씨가 구속된 뒤 교육부가 임시 이사를 선임했으나 옛 재단 측이 가처분 소송으로 막아 아직 학교가 이씨의 영향력 아래 있었을 시기이다. 그때 시간을 끌며 정관 개정 작업을 다 마쳐놓았다. 이씨 소유의 다른 대학 정관들도 마찬가지다. 신경대가 폐교하면 한려대로, 한려대가 폐교하면 신경대로, 광양보건대가 폐교하면 한려대로 잔여 재산이 가게끔 개정됐다(아래 그림 참조). 2000년 3월 광주예술대가 폐교했을 때도 서남대로 남은 재산이 넘어갔다.

이는 후일을 대비해 불씨를 살려두는 셈이다. 과거 이씨 소유의 학교에서 근무하다 해직된 한 고등학교 교사는 “이씨 일가는 재산을 지키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놓았다. 줄줄이 엮어놓고 옵션을 많이 걸어놓는다. 비리 사학인에게도 학교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현행 사립학교법 아래에서는, 나중에 또 상황이 바뀌어 관선이사가 물러나는 등 유리한 조건이 되면 언제든지 다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서남대가 폐교하면 정관상 잔여 재산을 물려받을 신경대에서는 현재 이홍하씨의 딸인 이서진 교수가 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신경대는 정관상 상속자로 지정되어 있는 한려대와 지난 9월8일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

이에 대해 신경대 관계자는 “설립자만 같을 뿐 우리 학교는 서남대와 아무 관련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려대와 통합을 추진하는 이유는 “교육부 평가에서 통폐합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했다. 신경대는 지난 8월 “만약 서남대가 폐교되더라도 그곳 잔여 재산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교비 횡령금 변제 등 임시이사 선임 사유를 모두 해소했기에 교육부에 이사진 정상화를 요청해놓은 상태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정이사 체제 전환 요청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횡령금 변제 몫으로 내놓은 출연금이 이홍하씨 개인 재산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인정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2017년 이후
사학법 개정이 관건이다

1000억여 원 횡령으로 수감 중인 이홍하씨는 여전히 학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해 6월 이씨가 임시 이사진이 파견된 광주 서진여고에 보낸 옥중편지가 이를 보여준다. 당시 교사들이 홍복학원 산하인 서진여고와 대광여고의 공립화를 요구하고 임시이사들이 학교 정상화를 위해 정관과 교명을 바꾸는 등의 개편안을 마련하고 있을 때였다. 이씨는 이들에게 “설립자의 동의 없이 체제를 변경하거나 불법 집단에 가입해 학교 명예를 훼손시키거나 교내 건축물의 용도를 변경하거나 교내 수목(정원수 포함)을 임의 이식 및 절단했을 때에는 원상회복할 것을 본교 설립자로서 엄중히 지시”한다며 이를 지키지 않을 때에는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씨가 편지에 적은 대로 현행법상 임시이사들은 학교의 “현상 유지 및 관리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설립자가 아무리 큰 범법자라 하더라도 그의 허가 없이는 학교의 나무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의 공공성보다 설립자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현행 사학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있다. 설립자의 비리로 인한 폐교 시 잔여 재산을 국가나 지자체에 귀속시키고, 역설적이게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사실상 비리 사학의 복귀를 도왔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역할을 축소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사학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교육부도 사학법 개정 의지를 밝힌 상태다. 교육부 대학정책과 이재력 과장은 “서남대 같은 경우 폐교한 후에도 학교 법인이 최종 해산하는 데에는 3년 정도 걸리는데 그 전에 사학법이 개정되면 재산을 환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정린 서남대정상화공동대책위원장(남원시 의원)은 “지난 2년간 서남대 폐교 반대 운동을 하며 교육부 공무원들을 수차례 만날 때마다 계속 말이 바뀌었다. 사학법 개정 이야기도 우리가 잔여 재산 귀속 문제를 지적하니 마지못해 나왔다. 국회의원 태반이 사립학교 이사장 등 이해관계자인데 개정이 그리 쉽게 될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서남대가 폐교되고 사학법 개정으로 이씨의 옛 재산이 국고로 환수되면 완벽하게 정의가 실현될까? 이씨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교육부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병현 전 한려대 교수협의회장은 “학교의 설립 인가 폐쇄까지 누가 관리 감독하나? 바로 교육부다. 학교가 폐교되기 전 그간 이홍하씨를 비호해준 관료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2013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홍하씨에게 감사 정보를 미리 제공하고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난 교육부 공무원이 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원죄는 교육부에 있다. 서남대에서 333억원을 횡령하도록 관리 감독도 안 한 교육부는 폐쇄 결정만 하면 그만이고 그 벌은 교수와 학생·학부모·지역주민들이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9월11일, 낡고 부서지고 어두침침한 서남대 캠퍼스에서는 그래도 교수와 학생들이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소하진 총학생회장은 “솔직히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이라며 말을 이었다. “저 같은 4학년은 곧 졸업하기 때문에 폐교되어도 큰 피해가 없어요. 그런데 후배들… 후배들이 너무 불쌍해요. 폐교된 후 남은 학생들은 주변 다른 대학에 편입학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기에, 솔직히 후배들이 은근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물어보니 거의 다 싫대요. 친구들과 함께 다니던 이곳에서 졸업하고 싶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지쳐가는 학생들을 이끌고 서남대 폐교 반대 상경 집회에 참석하는 등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뛰어다니던 그는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들에 또 한번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그 설립자에 그 학생들이다.’ 이 댓글은 정말 안 잊히네요. 학생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요?”

 

 

 

기자명 남원·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