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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피디가 눈을 질끈 감은 이유

2017년 10월 02일(월) 제524호
김민식 (MBC PD)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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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에는 자신은 부역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말하는 사람이 있고, 피해자가 아니라 사실은 부역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들 뒤에 진짜 ‘공범자들’이 있다.

ⓒ시사IN 이명익
9월19일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허항 MBC 예능국 PD(왼쪽 두 번째)와 MBC 파업 참가자들이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하나. MBC 예능국의 허항 PD는 <생방송 음악중심>을 연출한다. 매년 추석, MBC는 명절 특집 <아이돌 육상 대회(아육대)>를 방송하는데, 평소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아이돌 그룹 멤버들과 친분을 쌓은 PD들이 연출을 맡는다. 아이돌들의 숨겨진 매력을, 노래하고 춤추는 무대가 아닌 육상 경기장에서 뽐낼 수 있도록 <아육대>를 만드는 것이 올가을 허 PD의 일이다. 허항 PD는 최고 인기 아이돌 그룹 중에서 섭외를 끝냈고, 작가들과 몇 달간 회의를 거쳐 대회 구성안 마련을 마쳤다. 남은 건 녹화뿐이었다. <아육대>처럼 매년 정해진 포맷에 따라 방송하는 특집 프로그램의 경우, 촬영과 편집은 크게 어렵지 않다. 핵심은 기획과 섭외, 그리고 구성이다. 추석을 한 달 앞둔 9월4일 녹화하기로 결정하고 그날에 맞춰 아이돌의 스케줄을 빼고 연습을 시켰다. 녹화 2주를 앞두고 언론노조 MBC본부는 총파업 돌입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 돌입했고 그 결과 역대 최고의 투표율(95.7%)과 찬성률(93.2%)로 9월4일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허 PD로서는 참 난감했다. 하필 <아육대> 녹화 날, 파업 개시라니. ‘눈 딱 감고 그냥 하루만 일을 할까? 녹화만 하고 빠지면 된다. 편집은 비조합원 제작진에게 부탁하면 될 일이다. 바쁜 일정 중 시간을 틈틈이 내어 육상 종목을 연습한 아이돌 멤버와 몇 달간 프로그램을 준비해온 작가들을 생각하면 그러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게 궁리하던 와중에 허항 PD는 영화 <공범자들>을 봤다. 영화를 보니, 방송 장악을 위해 부역한 ‘공범자들’의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들어가는데, 혼자 파업 대오에서 빠져서 녹화를 하고 추석 특집을 방송하면, 그건 MBC를 장악하고 있는 김장겸 사장과 일당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닐까? 그럼 나도 저런 ‘공범자들’이 되는 게 아닌가. 허항 PD는 녹화 중단을 결정했다. 연예인 소속사 매니저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작가들을 만나 미안하다고 했다. 추석 특집 프로그램의 경우, 방송이 나가야 제작비 정산을 통해 작가 고료가 나간다. 녹화를 접으면 지난 몇 달간 고생한 작가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줄 방법이 없다. 녹화 중단 소식을 전하면서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는데, 작가와 출연자들이 오히려 허항 PD를 위로했다. ‘우리는 괜찮으니 힘내시라, 이번 기회에 MBC가 예전처럼 다시 좋은 직장으로 돌아오면 좋겠다’라고 허 PD를 응원했다. 그는 전화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9월19일 영화 <공범자들> 이화여대 상영회에서 허항 PD의 발언 내용 요약).



. “저희가 이 자리에 서는 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저희는 <뉴스데스크> 편집부 소속으로 거의 모든 뉴스에서 자막 교열을 보고, 생방송 진행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자 노조 특보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는 오늘부터 출근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저희는 파견업체에서 파견된 비정규직 2년 계약직으로, 제작 거부를 한다는 것은 곧 퇴사를 의미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저항할 수 있는 건 이 방법뿐이었습니다. 저희는 더 이상 마음을 좀먹는 이런 뉴스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너무 부끄러웠고, 퇴근하고도 자괴감과 회의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선배들께서 제작 거부에 들어가고 나서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우리가 부역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희 다섯 명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우리 같은 소모품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합니다. 저희가 나간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을까 수없이 고민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당장 먹고살 생각에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앞으로 MBC가 정상화됐을 때 저희는 이곳에 돌아올 수 없겠지만, MBC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는 데 저희의 용기가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9월11일 언론노조 MBC본부 파업 8일차 집회, 뉴스 AD 파업 지지 선언. 양세연, 민수지, 신예은, 권혜민, 김푸름).”

ⓒ언론노조 MBC본부 제공
제작 거부를 한 MBC <뉴스데스크> 파견직 노동자(AD)들이 파업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2년 전, 주조정실 MD로 발령이 났다. 가보니 아나운서 대상을 받은 강재형 아나운서, <뉴스타파>를 만든 이근행 PD, 황우석 사건을 취재한 한학수 PD, <남극의 눈물>을 연출한 김재영 PD 등 MBC 스타 언론인들이 그곳에 있었다. 카메라 기자 블랙리스트 문건을 보니 파업 참가자들을 세세하게 분류했던데, 주조정실은 유배지 중에서도 ‘A급 전범’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MD로 근무하며 MBC 뉴스 강제 시청이라는 징벌을 받다가 견디지 못하고, 나는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대기발령을 받았고, 그 후 심의국으로 발령이 났다. 가보니 그곳은 또 다른 수용소였다. 제작 일선에서 쫓겨났지만 그래도 온건한 성향의 선배들이 있었다. 휴먼 다큐의 대가로 존경받는 선배가 심의국에 유배된 걸 보고 안타까워했더니 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2012년 파업 이후, 사측에 대차게 들이받거나 싸우지는 않았어. 그냥 그들의 편에 서는 것만 거부했을 뿐이지. 후배들을 위해 싸우지 못했다는 데 대해 늘 죄책감이 있어. 해고자나 징계받은 이들이 보기에, 나는 아마 부역자일 거야.”

파업을 앞두고 시사교양 PD들은 보직 선배들을 향해, 김장겸 사장 체제를 떠받들지 말고 내려오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부역자로 살지 말라고. 보직 부장 중 하나가 그랬단다. “지난 몇 년, 교양제작국이 공중분해되고, 일하는 사람들 다 쫓겨났을 때, 난 남아서 MBC 다큐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열심히 일을 하고도 부역자라고 욕을 먹고 있으니, 나는 피해자라고.”

부역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말하는 사람과, 피해자가 아니라 부역자라고 말하는 사람. 파업에 참여하는 바람에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끼쳤으니,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고 말하는 사람. 부역자로 일하는 게 괴로워 사표를 썼지만 자신들은 피해자가 아니고 여러분도 가해자가 아니니 우리에게 미안해하지 말라는 사람. 선량한 사람을 부역자로 만드는 사람은 누구이고, 부역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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