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꽃갈피〉(2014)는 정말 좋았다. 노스탤지어라는 정서를 자극하되 그걸 퇴행적으로 느껴지게 하지 않았다는 점, 그러면서도 우리가 아이유 하면 떠올리는 음악적인 개성을 잘 살려냈다는 점에서 수작이라 평할 만한 리메이크 앨범이었다. 그중에서도 ‘너의 의미’가 줬던 여운을 많은 사람들이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가히 원곡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리메이크였다.
“모든 텍스트는 끊임없는 재해석의 대상”이라는 말이 있다. 과연 요즘 같은 시대에 이 표현은 정언명령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절대적이라 여겨지는 문학사의 걸작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곤 하는 풍경을 보면서, ‘음악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작가 앤드루 오헤이건은 “모든 예술은 완성된 시점부터 동시대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어떤 것은 훌륭하게 나이 먹는 반면 어떤 것은 볼품없게 늙어간다”라고 적었다. 아이유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는 훌륭하게 나이 먹는 노래들의 현재를 본다.
2017년 〈꽃갈피 둘〉이 날아왔다. 과연 예상대로 음반은 ‘가을바람 타고 살랑살랑 나부끼다가 우리 두 손에 살포시 내려앉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노래들을 담고 있다. 어느새 아이유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것이 온전한 신곡이든 리메이크든, ‘아이유의 새 노래’ 하면 우리에게 특정한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수록곡들은 그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라고 할 수 있다. 아이유 목소리만으로 시작되는 ‘가을 아침’을 들어보라. 특유의 예쁜 비성을 부드럽게 부각하는 만듦새의 이 곡만 감상해봐도 듣는 이들은 이 앨범이 ‘익숙한 것들에 대한 호의’를 자극하는 유의 것임을 느낄 수 있다. ‘비밀의 화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상은의 오리지널을 커버하되, 자기 감성으로 섬세하게 포장할 줄 안다는 측면에서 아이유의 강점이 드러난다.
신선하게 다가오는 아이유의 보컬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는 어떤가. 코드 변환을 통해 원곡이 쥐고 있던 정서 자체에 변주를 가한 뒤 특유의 어쿠스틱 접근법으로 곡을 재탄생시켰다.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와 유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어젯밤 이야기’는 어쿠스틱 일색인 이 앨범의 이색적인 페이지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체념한 듯 툭툭 내던지는 아이유의 보컬이다. 약간 냉소적으로 들리는 목소리 톤 역시 신선하게 다가온다. 선곡과 창법, 그리고 편곡에서 아이유와 프로듀서를 포함한 제작진이 많이 고민하고 작업했음을 이 곡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리메이크라는 작업이 ‘원곡에는 숨겨져 있던 또 다른 결’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꽃갈피 둘〉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앨범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유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개여울’과 ‘매일 그대와’가 아쉽다. 전자의 경우 아이유의 표현력이 원작이 지닌 깊이에 닿지 못하는 것처럼 들린다. 앨범 소개에 직접 적어놓은 그대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꼭 다시 불러보길 권하고 싶다. ‘매일 그대와’는 아주 잘 만든 광고 음악 같다. 들국화의 오리지널 대신 이 곡을 선택해야 할 이유를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이유라는 뮤지션의 성장 서사에서 〈꽃갈피〉 시리즈는 앞으로도 중요한 작용을 할 게 틀림없다. 세 번째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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