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중 여행에 관심 없는 유학생에게 외국의 명절은 밤의 도둑처럼 오곤 했다. 달력을 펼쳐놓고 연휴 여행 계획부터 세우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어딜 가도 사람 구경만 하겠거니 싶어 심드렁했다. 외국인 기숙사를 제외하고 학교가 텅 빈 느낌이 들면 그냥 명절이겠거니 했다.

중국 대학은 9월에 개강한다. 개강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긴 연휴를 맞게 된다. 바로 10월1일 국경절이다. 중국인들은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일을 기념하며 무려 일주일을 쉰다. 여행을 다녀오면 참 좋겠다는 유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중국의 수많은 인구가 다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어느 관광지를 가도 사람이 많다. 항저우 시후(西湖·서호)에 가서 호숫물은커녕 호수를 에워싼 관광객 얼굴만 보다 왔다던 유학생들 푸념이 농담이 아니다. 국경절의 위엄에 음력 8월15일 중추제(中秋节·중국 추석)는 상대적으로 묻히는 듯했다. 한국의 한가위처럼 풍성한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스타벅스에서도 명절 음식 웨빙(月餠·월병)을 파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 한국 스타벅스에서 한가위에 송편을 파는 건 못 봤다.

ⓒ허은선 제공춘제 기간의 중국 길거리 모습.

연휴 기간 여행에 관심 없는 내가 애초 노렸던 명절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음력 1월1일 춘제(春节·중국 설)였다. 국경절처럼 일주일을 쉬는데 이 기간에는 학교에 아무도 안 남는다고 했다. 중국의 최대 명절이기 때문에 슈퍼마켓도, 구내식당도, 심지어 주변 배달 음식점도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듣자마자 쾌재를 불렀다. 이 기간 학교에 남으면 따로 남극 여행을 안 가도 되겠다 싶었다. 기숙사 냉장고에 생존에 필요한 음식을 쌓아두고 일주일 내내 영화만 보며 뒹굴거릴 생각에 반년 전부터 신이 났다. 남극 분위기를 내기 위해 히터도 안 틀 작정이었다.

계획은 틀어졌다. 춘제 직전 항저우 학교에서 기차로 한두 시간 거리인 리수이(麗水)에 2박3일 놀러 갔다가 발목이 잡혔다. 여행 마지막 날, 반년 전부터 꿈꿔온 ‘중국에서의 남극 여행’을 실현하기 위해 항저우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리수이 친구들이 말렸다. 친구들 가족까지 나서서 반대했다. 항저우에서 외국인 동사체로 발견될 작정이냐며 다들 기막혀했다.

결국 나는 리수이에서 무려 2주를 지냈다. 막판에는 입을 옷이 부족해 옷 쇼핑을 했다. ‘춘제에 일주일 쉰다고 한 사람 다 나와!’ 밤마다 스타킹을 빨며 중얼거렸다. 친구 가족은 약 보름간 하루도 안 쉬며 먹고, 마시고, 카드를 돌리고, 마작을 쳤다. 보름 동안 합숙하면서 외국인 눈높이 교육을 받으니 내 카드 실력과 마작 실력도 쭉쭉 늘었다. 몸무게도 함께 늘었다.

중국 젊은이들의 최대 명절은 칠월칠석

중국 전역 묘지가 들썩이는 날은 의외로 따로 있었다. 음력 3월, 24절기 중 다섯 번째인 칭밍제(淸明节·청명절)다. 처음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엄숙한 날인 줄도 모르고 SNS에 ‘칭밍제 콰이러(淸明节 快乐·청명절 즐겁게 보내세요)!’라고 썼다가 중국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외국인에겐 ‘명절=쉬는 날=즐거운 날’인가 보다 하며 친구들이 깔깔 웃으며 유래를 알려줬다. 중국인들은 이날 조상의 묘를 돌보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전통 명절은 아니지만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칠월칠석(음력 7월7일)도 중요한 날이다. 한국으로 치면 밸런타인데이 같은 날이다. 덕분에 지난 8월 말, 한국 시내 주요 면세점은 화장품과 액세서리, 가방 등을 사려는 중국인으로 붐볐다. 장사 대목을 놓치지 않으려는 보따리상들이었다.

올해 한국 추석 연휴도 최대 열흘을 쉬게 되어 중국 국경절이 부럽지 않다.

기자명 허은선 (캐리어를끄는소녀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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