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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쩌다 거짓말을 즐기게 됐을까

2017년 10월 26일(목) 제527호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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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주년을 맞고 보니 예전 직장에서 겪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느 날 회장이 부르더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재벌처럼 피붙이를 후계자로 내세울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이 회사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기자들이니까 열심히 일하라고도 했다. 나는 그가 재벌이 부러워 자기를 회장이라고 부르게 하나 보다 생각해왔는데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얘기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을 회사에 들여놓고 그의 곁에서 충실히 창업을 도왔던 임원을 모두 쫓아냈다. 나는 지금도 그가 왜 나를 붙들고 그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댔을까 생각해본다.

그는 연말이 되면 매번 지치지도 않고 적자가 난 회사의 대차대조표를 들이밀며 편집장이던 나에게 나이 든 선배들을 내보내라고 요구하곤 했다. 시달리다 못해 나는 그에게 “제발 세무서에 제출하는 서류를 내게 내밀며 사람 자르란 말 좀 그만하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는 “당신은 지금 대놓고 오너에게 분식회계를 하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거냐”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자기 가문에는 절대로 도둑놈이라곤 없다며 열을 내기도 했다. 나중에 우리가 회사를 직접 차리고 비용을 뽑아보고 나서 그가 내밀었던 대차대조표가 엉터리였단 걸 알았다. 그의 집안에는 분명 도둑이 있었다.

그는 항상 자기는 정직한 사람이며, 한번 입 밖으로 뱉은 말은 어긴 적이 없다고 자랑하곤 했는데 아주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최악의 부류는 아니었다. 그 또래 언론계 인사 가운데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것 같은 이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수십 년을 헤쳐 나온 언론계는 오랫동안 허위에 찬 세상이었다. 1970년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의 기자 대량 해직, 1980년 언론 대학살이라 불린 언론인 대숙청에서 살아남아 회사와 권력의 비위를 맞추며 각 언론사에서 출세한 이들은 내가 보기에는 대개 맛이 간 상태였다.

ⓒ한성원 그림

오랫동안 출입처의 공보관이 적어주는 대로 기사를 받아쓰기하고 달마다 꼬박꼬박 촌지를 챙기며 기자실에서 고스톱이나 포커를 치며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특권의식과 말 잘 듣는 공무원이나 다름없다는 자괴감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기자 초년생 시절 나는 기본 상식이 부족하고 초보적 한글맞춤법조차 모르는 선배들이 그렇게 많다는 걸 알고 경악한 일이 있다. 마치 야유라도 하듯 정론직필이니 춘추필법이니 하는 거창한 글귀가 대문짝만하게 편집국에 걸려 있었다. 당시 신문사의 편집이나 교열기자들은 상당한 액수의 내근수당을 따로 받았는데 외근 기자들처럼 촌지를 받을 수 없어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월급 체계 자체가 부패를 전제로 한 구조였다고나 할까.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도둑이었던 시절, 당연하게도 기자 선후배 동료 간에 신뢰라곤 없었다. 당시 거짓은 인성을 심각하게 파괴한다고 절감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기자)는 세계(혹은 사건, 인물, 현상)를 ○○○한다.” 글쓰기를 처음 배우는 친구들에게 항상 ○○○을 채워보라고 주문한다. 의견이 분분하기 마련인데 내가 원하는 답은 재창조(혹은 재평가, 재구성, 재조명)이다. 글은 모니터를 열고 손가락 가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 매우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라는 걸 알려주려고 이런 퀴즈를 낸다. 글은 단순하게 세계를 압축하고 요약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빚어내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자 거짓말쟁이가 될 소질을 타고난 존재

인간이 신화나 전설에서부터 시작해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낸 데는 까닭이 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는 다르다. 단편적인 지식을 입력하는 데는 소질이 없다. 일관된 맥락 속에서만 사람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문자가 생기기 전, 그리고 책이 귀하던 시절 모든 지식의 전달은 기억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기억술은 문법·논리·수사 못지않게 중요한 과목이었다. 기억술을 익히기만 하면 평범한 두뇌도 놀랄 만한 일을 한다. 기억술의 대가들은 머릿속에 가상의 궁전을 만들고 거기에 시각화한 이미지를 보관한다. 시각화는 주로 유명인의 엽기적인 행동을 차용하는 게 효과가 있다. 이를 테면 웃통을 벗고 엉덩이로 이름을 쓰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다이아몬드 킹과 겹치게 한다. 이런 식으로 기억의 궁전에 질서 있게 보관하는 훈련을 거듭하면 카드 한 벌의 순서쯤은 순식간에 기억할 수 있다. 밀턴의 <실낙원>이나 괴테의 <파우스트>도 줄줄 외우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기억을 쉽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 만든 이야기에 푹 빠져 지내게 된 아주 특이한 생물이다. 결국 우리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자 거짓말쟁이가 될 소질을 타고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갈고닦은 거짓말 실력을 어떻게 써먹을까. 지난해 세계커뮤니케이션학회(WCA) 공식 학술지 (<Journal of Intercultural Communication Research>)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주로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경제적 이득(16%), 경제 외 이득(15%), 좋은 이미지(8%), 유머(5%)를 위해, 즉 44%가 스스로를 이롭게 하려고 거짓말을 사용한다. 또한 실수를 덮기 위해(22%), 사람이나 상황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14%), 결국 36%는 자기를 보호하려고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이타적인 거짓말도 5%나 됐다. 반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악의적인 거짓말은 4%에 불과했다. 역설적이게 사람들은 주로 스스로를 위한 거짓말을 하는 탓에 남의 악의적인 거짓말에는 쉽게 속아 넘어간다. 18~44세는 45%가 하루에 다섯 번 이내, 9%가 하루에 다섯 번 이상 거짓말을 한다. 13~17세 청소년기에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데 59%가 하루에 다섯 번 이내, 15%가 하루에 다섯 번 이상 거짓말을 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면서 남의 처지에 서보는 훈련을 한다.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미국 듀크 대학의 댄 애리얼리 연구팀의 실험은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그들은 실험 대상자에게 쉬운 수학 문제 20개를 냈다. 5분 안에 할 수 있는 한 많이 풀게 하고 답을 맞힌 수에 따라 돈을 지급했다. 스스로 답을 맞힌 수를 말하게 하고 답안지는 곧바로 파쇄기에 집어넣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파쇄기는 가짜였다. 많은 이들이 숫자를 속였다. 평균 6문제를 풀었다고 보고했으나 실제로는 4문제를 채 못 푼 것으로 드러났다. 여러 나라에서 같은 실험을 되풀이했는데 문화 간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연구팀이 주목한 점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느 선에서 멈추는가였다. 들통 날 염려가 전혀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욕심을 자제했다. 보상 액수를 상당히 올려도 결과는 비슷했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예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의 회장처럼 우리는 모두 내심 정직하기를 바란다. 행동경제학 분야의 권위자인 댄 애리얼리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로부터 배운 정직성을 내재화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를테면 업무용 볼펜을 얼마나 많이 집에 가져가도 되는지와 같은 암묵적인 컨센서스가 우리의 한계를 결정한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규범이 무너졌을 때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예전에 군사독재는 거짓말쟁이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사람들의 심성을 피폐하게 했다. 사람들은 내재된 정직성과 싸우다 진이 빠졌다. 서로 간에 신뢰를 잃고 괴로워했다. 마음속의 한계가 지켜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불행하다.

인터넷 시대 역시 우리의 컨센서스를 사정없이 흔들어대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거짓말을 유포하는 데 최적화된 매체처럼 보인다. 허리케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미국에서는 황당한 가짜 뉴스들이 횡행한다. 이 뉴스에 따르면 진보주의자들이 일부 기업과 짜고 피해를 키웠다. 진보주의자는 기후변화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기업은 돈을 벌려고 의기투합했다. 미국의 기상학계는 충분히 허리케인을 약화하거나 비켜가게 할 기술이 있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많은 대도시로 끌어들였다. 주로 기후변화 경고를 무시해온 곳으로.

이런 가짜 뉴스는 한번 퍼지면 좀처럼 사라지지를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우리를 솔깃하게 하는 거짓말에 저항력이 없다. MIT,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과 브리스톨 대학 공동 연구팀의 조사는 명백히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려준다. 이 연구팀은 미국 성인 2000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부른다는 걸 믿느냐’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세 기간 내내 주장했던 얘기였다. 1998년 덴마크의 한 의사가 발표한 연구 결과였는데, 13년 뒤 영국 의학계에 의해 조사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 잘못된 정보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연구팀은 이들을 대상으로 방대한 스케일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차분하게 잘못된 점을 설명해줬다. 그 직후에는 대다수가 잘못된 정보라는 점을 인정했으나 일주일 뒤에 조사해보니 처음 조사할 때의 수준으로 돌아가 있었다. 연구팀은 잘못된 정보를 섣불리 바로잡으려고 하면 오히려 익숙함을 더해 믿음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북한 관련 황당한 뉴스가 사람들 간의 신뢰를 좀먹고 있다. 세계 각국이 거짓말 폐해를 뻔히 지켜보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을 보노라면 섬뜩하다. 우리는 결국 좋아서 집착하는 것에 의해 망하리라고 올더스 헉슬리가 예언하지 않았던가.

참고한 활자:<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 <내셔널 지오그래픽>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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