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민음사 펴냄
내심 마거릿 애트우드를 기대하고 있었다. 실망한 건 아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가즈오 이시구로 역시 충분히 받을 만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노벨 문학상 속보 알람을 확인한 순간 ‘올해 수상자는 민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했다.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 8종은 모두 국내에 번역돼 있다. 7권이 민음사를 통해 나왔다. 국내 독자 중 해외 순문학 독자는 3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많이 팔아야 3000부란 이야기다. 민음사는 안 팔릴 걸 알면서도 판권을 사오고 번역해 세상에 내놓았다. 대형 출판사가 감당할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불황길’만 걷는 출판계를 돌이켜보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축하의 의미로 민음사에서 나온 가즈오 이시구로의 전작을 모두 주문했다. 이미 갖고 있는 책은 지인들에게 선물할 작정이었다. 긴 연휴 끝에 도착한 책에는 ‘2017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고 적힌 노란 띠지가 둘려 있었다. 새 책들은 예상대로 대부분 이번에야 ‘2쇄’를 찍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를 보내지 마〉(2009)를 꺼내 읽었다. 내가 가진 판본은 1쇄다. 배송된 책을 들춰보니 16쇄였다. 작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책다운 판매량이라기에는 어쩐지 아쉽다. 나는 이번에도 주인공 캐시와 함께 ‘그랬다’와 ‘그랬을 수 있다’ 사이를 추처럼 오가며 앓았다. 그래도 예전처럼 단짝친구 루스가 밉지는 않았고, 이상주의자 루시 선생의 안부는 좀 더 궁금해졌다. 나이 먹고 다시 읽어보니 책 속 ‘어른들’이 더 눈에 밟혔다.

책을 덮다가 새삼스레 제목을 유심히 봤다. 도박사들과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후보를 따로 선정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으로부터 십수 년째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한 분이 떠올랐다. 희망고문도 이쯤이면 족하다. 선생을 이제는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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