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 선배들이 원 〈시사저널〉에서 일하던 2005년 12월 나는 언론사 문턱을 기웃거리던 ‘기자 지망’ 대학생이었다. 당시 〈시사저널〉은 겨울방학 동안 활동할 대학생 인턴 기자를 모집했고 (별 생각 없이) 지원한 나는 덜컥 붙어버렸다.

 

ⓒ시사IN 양한모

인턴 기자 출근 첫날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사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노란 머리에 빨간 조끼를 입어서 짜장면 그릇 수거하러 온 중국집 배달원이겠거니 싶었던 남자는 훗날 손석희에 이어 ‘신뢰하는 언론인’ 2위에 당당히(1위와 격차는 좀 나지만) 오른 주진우 선배였다. 주 선배를 비롯해 〈시사저널〉에서 만난 선배들은 모두 시큰둥한 얼굴로 ‘핫한’ 기사들을 쓰는 묘한 인간들이었다. 윗사람에겐 불손하고 아랫사람 앞에서는 쩔쩔매는 조직 문화에 조금 물들어갈 때쯤 활동 기간이 끝나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남은 학기를 마치는 동안 ‘〈시사저널〉 삼성 기사 삭제 사태’가 발생했다. 잘 울지도 웃지도 않던 시큰둥한 선배들이 울고 싸우고 파업하고 단식하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봤다. 선배들이 〈시사저널〉을 떠나면서 나도 졸업 후 꼭 가고 싶었던 언론사 하나가 없어졌다. 낙담하고 있는데 선배들은 꼭 가고 싶은 언론사 하나를 새로 차려줬다. 〈시사IN〉이다. 2007년 겨울 〈시사IN〉 공채 1기 신입 기자 모집으로 나는 선배들과 연을 다시 맺었다.

그때 주변사람들의 걱정이 컸다. 반대하는 사람은 “1년 안에 망할 텐데 어쩌려고 그러느냐”라며 반대했고, 찬성하는 사람은 “그래, 어차피 오래가지는 못할 테니 시민단체 활동한다 생각하고 좋은 경험해봐”라며 찬성했다. 나도 어쩌면 후자에 가깝게 생각하며 하루하루 취재하고 기사 썼는데, 돌아보니 어느덧 10년이다. 매번 방학이면 들어오는 인턴(현재는 ‘교육생’) 기자들 앞에서 “이분이 바로 기원전에 인턴을 지낸 인턴 시조새다”라며 소개되는 날에 이르렀다. 고작 10년 된 주제에 창간 이전을 조금 경험했다는 이유로 나는 〈시사IN〉 역사의 산증인 같은 기분을 느끼며 산다. 혼자 조용히 책 출간 구상도 하나 하고 있다. 이제 내 나이가 30대 중반이니, 70대 중반쯤 ‘〈시사IN〉 50년사’ 같은 회고록 하나 남길 생각으로 머릿속에 첫 목차를 짜본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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