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3일부터 9월15일까지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중국 하얼빈 공정대학이 공동 주최한 중국 일대일로 세미나 주제 발표차 하얼빈을 다녀왔다. 최근 몇 년간 두만강 유역의 투먼·옌지·훈춘, 북한 원정리가 바라다보이는 취안허와 러시아 연해주의 자루비노·크라스키노·블라디보스토크 등은 다녀봤지만 중국 동북의 하얼빈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얼빈은 북위 44~46° 사이에 위치한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하얼빈에 자를 대고 가로로 직선을 쭉 그으면, 블라디보스토크나 우수리스크는 하얼빈 아래로 위치하고, 러시아 달네레첸스크가 얼추 비슷한 선상에 자리한다. 이번엔 반대로 서쪽 방향으로 선을 길게 그으면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이탈리아 밀라노와 만난다. 하얼빈은 냉대기후에 속하며, 중국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으로 손꼽힌다. 최한월 평균기온이 영하 20℃는 보통이고 때론 영하 40℃까지 떨어지기 일쑤인 혹한 지역이다.

중국에서 가장 춥고 긴 겨울 덕분에 하얼빈은 겨울철 관광지로 유명하다. 겨울철 하얼빈 쑹화강의 하중도인 타이양다오(태양도)에서는 국제적으로 이름난 빙등축제가 열리며, 꽝꽝 얼어붙은 쑹화강에서 얼음을 깨고 즐기는 낚시는 겨울 정취를 더하는 이 도시 최고의 겨울 스포츠 중 하나다. 또 하얼빈 시내 곳곳 노점에서 팔리는 아이스바는 하얼빈 최고의 명물로, 이 아이스바를 맛보지 않고서는 하얼빈에 다녀왔다 말할 수 없다고 하며, ‘얼음이 쩡쩡 얼어붙는 한겨울에 먹여야 제맛’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 식으로는 ‘냉면은 한겨울에 먹어야 최고’라는 소리와 같다.

ⓒXinhua2016년 12월16일 중국 헤이룽장성 성도인 하얼빈의 ‘빙설대세계’ 행사장에서 얼음 건축물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하얼빈은 우리에게 독립운동 유적지로도 기억된다. 특히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가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것은 당시 일제 침략으로 고통받던 한·중 인민의 독립투쟁 의지에 불을 붙인 쾌거로 오늘날까지 양국 사람들에게 기념되고 있다. 이번 출장에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참배했으나 아쉽게도 이토 히로부미 저격 현장인 하얼빈 역에는 가지 못했다.

하얼빈, 동해로 출구 찾는다

여행객에게는 얼음축제로, 역사가에게는 항일 독립운동 사적지로 기억되는 하얼빈. 필자 같은 북방 국제물류 연구자에게 하얼빈은 저 멀리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동시베리아 거점역인 치타로부터 갈려 나와 치치하얼·다칭·하얼빈에 이른 뒤, 다시 무단장(목단강)과 쑤이펀허 및 러시아 우수리스크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다로 나가는 ‘쑤이펀허 회랑(러시아명 ‘프리모리예 1’)’을 연상케 한다. 하얼빈의 혹한조차 필자에게는 교통물류 조건과 연결된다. 하얼빈이 국제적인 교통물류 회랑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유리한 입지인데도 세계적인 도시로의 발전이 지체되어왔던 요인이 바로 이와 같은 자연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하얼빈은 현재 헤이룽장성의 성도이자 인구 약 1000만명으로 동북 4대 도시(선양·다롄·창춘·하얼빈) 중 인구가 가장 많다. 러시아 극동지역 제1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 인구 60만명과 비교하면 이 도시가 얼마나 큰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하얼빈이 최근 변화의 한복판에 섰다. 중국 일대일로, 러시아 동진정책 등이 결합하여 변화의 용트림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도 새 정부가 들어서서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 및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 구상을 발표하여, 북방의 잠재력 있는 시장과의 연결성을 강조하면서 하얼빈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번 학술행사도 하얼빈을 양국 발전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열렸다.

중국은 현재 동북진흥계획에 따라 하얼빈을 기점으로 북쪽의 다칭·치치하얼을 묶어 산업벨트(하다치)로 발전시키고, 교통 요지에 위치한 우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하얼빈을 동북 지역의 국제물류 거점도시로 발전시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헤이룽장성의 ‘13.5 규획(2016~2020)’에는 러시아와의 교역에서 하얼빈시를 항공 물류의 중심지로, 쑤이펀허를 육로 화물운송 중심지로 구축한다는 세부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름하여 ‘룽장 실크로드 경제벨트’의 일환이다.

ⓒXinhua지난 5월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 포럼’에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이 개막식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 계획은 좀 더 원대한 계획인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특히 그중에서도 ‘중·몽·러 경제회랑’ 구축의 일환이기도 하다. 하얼빈 외곽만 놓고 보면 ‘언제 그런 계획이 가시화될까’ 할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광활한 평원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물론 단언은 금물이다. 다칭 등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석유화학단지 등 산업 본거지를 가보지 못했으니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현황을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벌써 초석은 다져지고 있다. 2015년 헤이룽장성의 연간 화물 물동량은 철도와 도로 합계 5억4000만t 이상이다(이 가운데 도로 비중이 4억4000만t). 같은 해 6월 헤이룽장성 하얼빈을 출발해 러시아를 관통한 뒤 독일 함부르크까지 가는 하얼빈-유럽 간 ‘블록 트레인(화물 전용 열차)’이 개통된 바 있으며, 또한 8월에 하얼빈 철도 컨테이너역이 완공됨으로써 아시아-유럽 간 내륙 물류망의 기초가 이미 다져졌다.

세미나는 하얼빈 공정대학에서 열렸다. 이 대학은 중국이 21세기 대비 100대 일류대학 육성을 목표로 추진하는 ‘211 공정’에 포함된 명문 대학으로, 원래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설립했다(전신은 ‘중국인민해방군 군사공정학원’). 1970년대에는 선박 기술에 특화된 학교로 육성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이공계와 인문학을 아우르는 종합대학으로서 위상을 갖고 있다.

바다와는 동쪽으로 700㎞ 이상, 서쪽으로 800㎞ 이상 떨어진 동북의 심장에 선박 엔지니어링 전문 교육기관이 있다는 점에 독자들은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 학교의 해양 전통은 유서 깊다. 마오쩌둥 치세, 중국은 안보상의 이유로 한때 모든 산업시설과 R&D 시설을 내륙으로 분산하는 정책을 펼쳤다. 오늘날의 북한이 그런 것처럼 중국에 피포위 심리(siege mentality:항상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믿는 강박관념)가 작용할 때이다. 이 정책은 중·소 분쟁 조짐이 보이던 1950년대 말부터 강화됐다. 내륙 깊숙이 있는 하얼빈 공정대학도 바로 이때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 하얼빈 공정대학에서 중국의 핵발전 전문가들이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위해 노력했으리라. 아닌 게 아니라 하얼빈 공정대학이 한국 참가단에게 나눠준 홍보책자에는 이 학교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전문성으로 ‘선박 개발’과 함께 ‘핵 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곳이 바로 중국 핵추진 잠수함 개발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해양 및 군사 전통에 대한 자부심은 캠퍼스 곳곳에 살아 있었다. 교내의 도로명 중에도 중국 명나라의 위대한 해양원정대장 정허(정화)의 이름을 딴 ‘정허로’가 있으며, 강의실이나 세미나실 이름도 ‘창장(장강)’이니 ‘난하이(남해)’니 바다와 관련된 지명을 붙였다. 한국 손님을 반갑게 맞은 부총장도 환담 중에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건조한 쇄빙 능력을 갖는 LNG 운반선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일부 학생들의 복장은 군복과 얼른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하얼빈 공정대학은 이미 1950년대 말부터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가.

9월14일 세미나에서는 모두 5개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이 있었다. 먼저 하얼빈 공정대학 가오톈밍 교수는 ‘일대일로와 흑룡강성(헤이룽장성) 물류산업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가오 교수는 하얼빈을 중심으로 한 국제 물류노선 8개의 현황을 설명했다. 특히 이 중 이른바 ‘하얼빈-쑤이펀허(빈하이 1호)-북방 항로’는 바로 한반도 동해를 관통해 부산 및 중국 남방과 연결하려는 계획으로서 한국 측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박성준 기자
ⓒ박성준 기자9월14일 하얼빈 공정대학에서 ‘일대일로 정책과 연계한 헤이룽장성 물류산업 발전 전망’ 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위). 아래는 하얼빈 북동부에서 남쪽으로 비스듬히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쑹화강에 놓인 철교.

필자는 두 번째 주제 발표자로 나서 남북한과 동북 3성, 러시아 극동 모두 관심이 중첩되는 두 개의 국제 물류 루트, 즉 ‘쑤이펀허 회랑(프리모리예 1)’과 ‘투먼 회랑(프리모리예 2)’ 관련 각국 물류정책 동향, 현재의 인프라 현황, 리스크와 향후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위한 해결 방안에 대해 비교하고 설명했다. 현재의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충분치 못한 물류 수요 및 화물 불균형에 대해 말했다. 더불어 미래 과제와 관련해서는, 북한 리스크 등 일시적인 장애가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이 회랑의 연결성 개선이 커다란 기회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다자 협력에 지속적으로 노력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헤이룽장성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동북 경제 전문가인 다즈강 박사(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소 소장)가 세 번째 발표자로 나서, ‘한·중 FTA 시각하 중국 동북지역 내 한국 기업의 물류 협력과 발전’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다즈강 소장은 쑤이펀허 회랑의 발전 잠재력은 한국의 기회로서 △역내 교통망 건설 참여 △중·몽·러 통로 구축 다자협력 참여 △동북지역 한·중 물류거점 구축 △물류 표준화 및 정보화 같은 인프라 구축사업 참여 등 4대 사업을 제안했다.

다음으로 중국 베이징에 다년간 주재하며 한·중 경협 촉진 방안에 대해 중국 측과 많은 공동연구 경험을 쌓은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베이징사무소 소장이 ‘한·중 경제협력 2년 평가와 신협력 방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양 소장 발표에서 핵심되는 요지는, 지금까지 25년간 한·중 양국의 경협은 상호 보완성이 큰 무역 중심으로 발전해왔으나 양국의 산업 발전 단계가 상전벽해하고 경협 관계도 상호 보완성보다는 상호 경쟁성이 부각되고 있는 만큼, 과거와 같은 무역 위주 동반성장 모델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양 소장은 그 대안으로 무역 금액 3000억 달러, 투자 2000억 달러, 인적 교류 연간 1000만명을 목표로 한 이른바 ‘한·중 경협 3.0 시대’를 제시했다. 요컨대, 향후 양국 경협은 과거의 무역 중심에서 상호 투자 중심으로 새롭게 전환해야 하며, 바로 이런 측면에서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한·중 경협 3.0 시대’ 열릴까

주제 발표 세션의 마지막은 헤이룽장룽운그룹 CEO 장솽의 ‘헤이룽장성 통상구 및 복합운송 노선계획 현황’ 발표로 장식됐다. 그는 헤이룽장성 물류체계를 쑤이펀허-무단장-하얼빈-치치하얼로 이어지는 ‘쑤무하치’, 하얼빈-자무스-솽야산-룽장으로 이어지는 ‘하자솽룽’, 하얼빈-쑤이허-베이안-헤이허로 이어지는 ‘하쑤이베이헤이’ 등 ‘3대 집중 분산’ 체계로 요약했으며, 향후 과제로서 전자상거래 플랫폼, 물류 정보 항만(내륙 물류기지를 포함) 구축 및 이를 위한 감독 일체화와 데이터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현지 진출 물류기업과 현지의 물류기업이 토론자로 참가한 종합토론 시간에 현장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중국 측에 의해 한·중 FTA(2015년 11월 발표)의 성과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이유로 ‘지정학적 요인’ 등 외부 효과가 작용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중국 물류시장이 최근 빠른 속도로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음에도 동북지역이 상대적으로 더뎠던 원인에 대해 중국 일대일로 구상이 실천으로 옮겨지면서 각 성이 경쟁하는 가운데 동북 3성의 인센티브(예컨대 보조금) 제시가 다른 성에 비해 미약한 탓이라는 분석이 한국 물류기업 참가자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향후 쑤이펀허 회랑 발전 방향의 세부적인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한·중 전문가 간에 다소 견해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예컨대 한국은 당연히 동해를 중시하지만, 중국 토론자 가운데에는 종래 동북 물류 통로의 골격인 ‘T’자 형에서, 하얼빈-창춘-다롄으로 이어지는 기존 루트를 강화하는 쪽에 비중을 둔 발언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쑤이펀허 회랑의 발전 잠재력에 대해 양측은 모두 공감했다. 향후 한·중 협력은 바로 이와 같은 공감을 접점으로 하여 변화한 한·중 경협에 맞춰 상호투자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장 마지막 날 아침. 필자는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짬을 내 하얼빈 시내 북동부에서 남부로 비스듬히 관통하는 쑹화강을 찾았다. 강기슭에서 바라본 쑹화강은 서울의 한강과 비슷했다. 강폭은 넓고 강물은 유장했다. 우리 일행은 과거 하얼빈시에 대홍수가 났을 때 시민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홍수를 막은 것을 기념해 세운 기념탑 부근에 있는 철교를 걸었다. 지금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관광용으로만 사용되는 쑹화강 철교는 1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쑹화강의 물길은 저 철교가 놓인 지난 100년 이래 변함이 없다. 쑹화강이 관통하는 하얼빈의 물류 발전 축은 지난 100년 이래 가장 큰 전환점에 이르고 있다. 과거 하얼빈의 출해구는 보하이만(발해만)의 다롄이었다. 지금 하얼빈은 또 다른 출해구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바라보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바닷길을 따라 세계 3대 환적항의 하나인 부산항으로 이어진다.

이제 하얼빈을 떠나야 할 시간. 오후 1시10분께 하얼빈 국제공항에 다시 도착하니 이번에는 국내선 터미널보다 규모가 더 작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전광판에 표시된 예정 항공편도 달랑 3편(서울 2편, 블라디보스토크)에 불과했다. 하얼빈 국제공항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7년 원 〈시사저널〉 기자 시절 처음 가봤던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을 연상케 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이 얼마나 달라져버렸는가. 하얼빈의 미래가 보인다.


박성준
1990년 10월 원 〈시사저널〉에 입사하여 2006년 5월까지 약 15년간 근무했다. 사회부·문화부·국제부 등에서 교육·출판·학술·한반도 문제 등을 취재했다. 현재 한국해양수산연구원 국제물류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남북 협력, 북방 물류 분야의 연구 사업을 수행 중이다.

기자명 박성준 기자(1990~2006 재직)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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