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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토론회 봤다면 조사 결과 존중할 것”

2017년 10월 30일(월) 제528호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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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은 “판이 몇 번이나 깨질 뻔하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는 악몽을 꾸는” 3개월을 보내고 공론조사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은 10월20일 최종 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오늘 이렇게 발표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꿈만 같다”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 내용 때문이 아니다. 지난 3개월간의 공론화 과정 전체가 큰 탈 없이 마무리된 데 대한 안도의 표현이었다. 대법관 출신으로 삼성전자 백혈병 조정위원회 위원장·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김 위원장에게도 이번 공론화 과정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판이 몇 번이나 깨질 뻔하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는 악몽을 꾸는” 3개월을 지나왔다. 무사히 최종 권고안을 정부에 전달한 10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공론화위원회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홍구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토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양쪽 의견이 박빙으로 나오지 않아 위원회 처지에서는 부담이 적었을 것 같다.

좀 심하게 이야기한다면 뭐랄까, 기적을 본 거 같다. 제일 걱정했던 게 양쪽 견해가 팽팽하게 나오는 결과였다. 국가가 큰 예산을 들여서 공론화 과정을 진행했는데 정책의 방향을 정해주지도 못한 채 다시 정부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비해 위원들끼리는 굉장히 많은 논의를 했다. 양쪽 의견이 팽팽하게 나오면 위원회가 ‘반반으로 나왔으니 정부가 다시 알아서 하쇼’ 이렇게 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공론화 과정이 아까웠다. ‘뭔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단서 같은 것은 찾아줘야 하지 않나’라는 게 위원회의 고민이었고 그 방법이 뭐가 있을까 궁리했다. 그래서 ‘건설 재개’와 ‘건설 중단’을 주장한 양쪽에 “당신들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이런 거라도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보완 항목을 달라고 했고 그것을 반영한 설문을 만들었다.

결과가 묘하다. ‘건설 재개’ 대 ‘건설 중단’이 6대4 비율인데 앞으로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 ‘원전 유지’ 대 ‘원전 축소’는 4대6이다.

설문을 짤 때 어느 쪽 의견이 많이 나오든 받아들여지지 않은 쪽이 100%를 다 잃지 않을 방법이 뭘까 궁리를 많이 했다. 건설 재개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중단을 주장했던 분들이 지켜내고 싶었던 것을, 절묘하게 시민참여단 분들이 읽어내신 것 같다. 정말 놀라운 시민의 힘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혜롭게 절충안을 내주었다. 나는 그 두 개의 판단이 얼핏 보면 다른 방향이지만 자세히 보면 중요한 함의가 포함된 것으로 읽힌다.

ⓒ연합뉴스
10월15일 신고리 5·6호기 재개·중단을 묻는 설문조사를 마치고 공론조사 시민참여단이 박수를 치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의견 분포도 예상 밖이다.

우리도 그 부분을 굉장히 흥미롭게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20·30대는 미래 세대에 더 가깝기 때문에 원전 문제에서 연세 드신 분들에 비해 안전성 등에 더 민감할 거라 생각했고 건설 중단 쪽으로 더 많은 의견이 나오지 않을까 막연히 짐작했다. 실제 결과를 보니 1차 조사 결과 때는 건설 중단 의견이 재개보다 조금 더 높았지만 3차·4차 때 건설 재개 쪽 비율이 확 늘었다. ‘판단 유보’층의 대부분이 재개 쪽으로 간 거다. 더 깊이 분석해볼 필요가 있지만, 20·30대가 사물에 대해 판단하는 관점과 시각이 우리가 짐작하던 것과 다를 수 있겠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1차 조사 때 20·30대에서 판단 유보층이 과반이 넘었다는 것은 원전 문제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후 정보를 접하면서 굉장히 실용적인 방향으로 사안을 바라본 건 아닐까. 섣불리 설명할 순 없지만 현상 자체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결과가 ‘최종 결과가 내 의견과 달라도 존중할 수 있다’가 93%나 나왔다.

건설 재개·중단 양측에서 모든 역량을 다 투입해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정보와 지식을 제공했다. 나도 이쪽을 보면 이게 맞는 거 같고 저쪽을 보면 저게 맞는 거 같더라.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시민분이 “알면 알수록 힘들어진다”고 하던데 굉장히 진정성 있게 들렸다. 설사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선택은 하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선택을 하면 존중하겠다, 이런 생각이 거기서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존중하는 경험이 적은 우리 사회에서 놀라운 일 같다.

이 과정을 거치며 ‘정의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봤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 무엇이 정말 옳은 것이냐를 묻기보다, 어떤 선택이나 판단을 하기 위해 합리적인 논의 절차를 거쳐 결정이 된다면 그게 바로 정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는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해도 일방적으로 강행한 경험이 더 많다. 그것이 틀리다고 생각하는 쪽에서는 100% 저항을 하고 그러다 보면 갈등이 계속 이어진다. 법률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판례가 확 바뀌잖나. 법에 정통한 판사가 내린 판결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내린 결정도 나중에 뒤집히는 일이 생긴다. 앞의 판결이 틀렸고 뒤의 것이 맞기 때문이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고, 그 선택을 어떻게 제대로 할 것이냐가 지금 우리가 더 많이 사례를 쌓고 연구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특히 2박3일 종합토론회 분위기가 뜨거웠다.

제일 많이 들었던 비판 중 하나가 “사안에 대해서 정통하지 못한 시민에게 이런 판단을 구하는 게 적절하냐”였다. 처음에는 우리도 막연하게 “일반 여론조사와는 다르지 않냐”라고 방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2박3일 토론회 현장을 본 사람이라면 굳이 구구절절 설명을 안 해도 그게 얼마나 어긋난 관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옆에서 보기에도 시민들이 ‘저래도 될까’ 싶을 만큼 몰입하더라.

연세 많은 분들도 계시던데?


만 19세 청년부터 80대 어르신까지 계셨다. 다리가 다쳐 목발을 짚고 참여한 시민도 있고 제주도, 울릉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오셨다. 각각 230분, 210분에 이르는 세션에 다 참가하며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다. 사실 시민참여단 500여 명을 선정할 때 조사 통계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해외 사례에서 이런 조사할 때 ‘노쇼(불참자)’ 비율이 30% 정도 된다더라. 그래서 350명 정도 오시겠거니 했는데 오리엔테이션 때 478명, 합숙 토론 때 471명이 온 걸 보고 우리 시민들이 존경스러웠다. 471명 중 한 분도 빠지지 않고 일정을 완수했다. 이런 시민의식이 이번 과정에서 제일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연합뉴스
10월20일 참여연대에서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공론조사 결과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건설 재개·중단 양측과의 소통 과정 자체도 ‘숙의’였을 것 같다.

자료집 목차 순서, 글자 크기와 색깔 하나하나가 다 협의의 대상이었다. 양쪽에서 워낙 날카롭고 첨예하게 부딪치니 공정성에 대한 갈등이 컸다. 위원들끼리 위안 삼기로는 ‘만약 한쪽에서만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가 편견이 있는 거지만 양쪽에서 똑같이 그러는 걸 보면 우리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공정성은 갖췄나 보다’라고 얘기했다(웃음). 내가 생각한 제일 좋은 방법은 양쪽이 합의를 이룰 때까지 끝까지 해보자는 거였다. 힘은 많이 들었지만 결국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서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앞으로 다른 갈등 사안에도 이번과 같은 공론조사가 적용될 수 있을까?


그래야 한다고 본다. 이번에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이번 과정 중에 생긴 논란과 갈등을 따로 목차를 둬서 넣었다. 당장 이번 공론화위원회로서는 좀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제대로 정리를 해서 모으면 다음에는 사회적 시행착오를 줄여나갈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많은 사례에 다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국가가 제대로 결정해야 할 핵심적인 사회적 의제가 있다면 공론화의 장점을 끌어낼 수 있도록 우리가 선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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