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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KBS, 성우들도 뿔났다

2017년 10월 30일(월) 제528호
김빛이라 (KBS 기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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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업 전보다 바쁜 ‘무보수’ 노동자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음향감독은 매일 열리는 파업 집회에서 장비를 정리하고, 기자들은 ‘유튜브 뉴스’로 보도를 한다. 무력감을 딛고 스스로 일어선다.

“그런 ‘리즈 시절’도 있었더랬지.” ‘한때는 우리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는 KBS의 호시절 이야기를 듣고 지내왔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도 아니고, 내가 몸담고 있는 방송국에서 수년 전까지 있었던 ‘보통’의 일들이라니…. 선배들한테 전해 듣는 일화들이 너무도 생소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한 적도 있었다.

단신에 들어갈 한 단어를 지켜내기 위해 국장실을 열고 들어가 열변을 토한 사건들, 선후배 수십명이 새 프로그램 포맷을 고민하다 밤을 새웠다든지 KBS에서 촬영 나왔다고 버선발로 맞이해주셨다는 제보자들을 만난 이야기들은 ‘엄혹한 시대’에 입사한 내겐 너무 멀게 느껴질 뿐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분위기, 거기에 더해 선후배가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치열하게 방송을 만들어갈 수 있는 문화가 부러웠다. 적어도 파업을 시작하기 전, 보도국 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송을 멈추고 나오니, 보이기 시작했다. 기자도, 아나운서도, PD도, 촬영감독도 모두 맡았던 일은 잠시 내려놓았지만 방송국 바깥에서 외려 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에 굶주려 있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KBS 쿨FM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음향을 담당하는 최지현 감독은 입사 11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 현장으로 뛰쳐나왔다. “더 이상 불편한 마음으로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방송 엔지니어의 꿈을 이룬 그는 일벌레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과 귀를 닫고 그저 ‘직장인’으로 살아오고 있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고 했다. “혼자 울부짖어봤자 변화하는 게 없는 조직이니까, 녹음 잘하고 오늘도 무사히 퇴근만 하면 된다는 자기 위안이 고통스러웠어요. 옳지 않은 것, 바뀌어야만 할 부조리를 알고도 눈치만 보는 방송인으로 살아간다면 청취자 앞에 떳떳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녀는 파업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열리는 집회에서 음향을 담당하고 있다. 누구보다 일찍 집회장으로 출근해 장비 뒷정리까지 한 지 50일이 다 되어가니, 파업 전의 일상보다 더 강도가 높다면 높겠다. 서로 격려하려 마이크를 잡는 이들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귀담아들을 수 있는 지금, ‘내가 방송사에 입사한 이유’를 찾은 것 같다며 웃었다.

파업 전보다 바쁜 ‘무보수’ 노동자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KBS 파업뉴스팀’은 특종상 트로피가 벌써 두 개다. 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댓글부대 운용을 최초로 실명 폭로했고, 이를 둘러싼 청와대와 국정원, 군 사이버사령부의 관계를 밝혀낸 보도는 지금까지 파장이 상당하다. 과거 국장단의 거부로 ‘KBS 뉴스감’이 되지 못했던 리포트가 파업을 하는 기자들이 만든 ‘유튜브 뉴스’로 더 큰 빛을 보게 된 셈이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댓글부대 운용을 실명 폭로하고 이를 둘러싼 청와대와 국정원, 군 사이버사령부의 관계를 밝혀낸 ‘KBS 파업뉴스팀’.

“요즘은 서로 취재 나가겠다고 경쟁하고 있어요.” 밤새 ‘파업뉴스’ 편집을 마친 유성주 촬영기자는 자신도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고 고백했다. KBS가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세월호 수색 현장에서 로고가 없는 핸디캠을 들고 숨어서 촬영한 시간들을 잊지 못한다. “영상으로 역사의 현장을 생생히 담아내겠다는 꿈을 갖고 입사했는데, 직업의 정체성이 심하게 흔들리는 순간이었어요.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자괴감이 들었죠.” 

무력감을 딛고 스스로 일어서려는 기자들이 하나둘 모여 시작된 취재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현장으로 나가고 밤을 새웠다. 짜인 틀은 없었고, 보도를 통해 파헤쳐야 할 것을 논하기 위해 입사 20년차부터 막내까지 머리를 맞대고 벌써 ‘파업뉴스’ 10여 편을 제작해냈다. 제대로 된 리더십이 작동하는 KBS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뉴스여서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방송국에는 다양한 직군이 존재한다.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까지 ‘보이지 않는 이들’이 ‘보이는 이들’보다 훨씬 많다. 반드시 필요한 작업들을 해내는 사람들이다. “KBS에 몸담고 있는 이상, 모두가 언론인이라고 생각해요.” KBS 도서관에서 콘텐츠 자료를 관리하는 고인석 직원이 말했다.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거나 진행하지 않기에, 스스로 언론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좋은 방송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지원하는 일을 하다 보니 시청자들의 반응에 울고 웃는 건 제작자들의 마음과 다를 바 없더라고요. 공영방송을 만드는 일에 일조해야 하기에 함께 반성하고 함께 싸워야죠.” 입사 27년차, 매일 파업 현장에 나와 후배들과 함께하는 이유는 “떳떳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조직이 아니라, 후배들이 자유롭게 방송을 만들어갈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다. “거창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런 KBS를 물려주어야만, 마음 편히 퇴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KBS의 목소리’ 성우들의 첫 노조 가입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10월17일 열린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파업 집회 현장에서 구지원 전속성우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파업 44일차 아침, 구지원 전속성우실장이 집회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특정 직종 전원이 파업에 뜻을 모은 것도 이례적이었고, 70년 넘는 국내 방송 역사상 성우들의 노조 가입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희는 2년짜리 한시적 계약직입니다.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KBS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성우들의 역사에도 자랑스러운 선택을 한 이들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아나운서들의 파업으로 각종 텔레비전과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대체 투입된 상황에서, 파업을 하는 동료들 전원이 뜻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이 ‘KBS의 목소리’임이 가장 자랑스러운 날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맑고 또렷하게 퍼졌다.

방송을 잠시 내려놓은 지금, 우리 모두는 이번이 ‘마지막 파업’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비장하지만 또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하는 이유는 ‘보통’의 KBS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그려보고 있어서가 아닐까. 축제라면 축제의 시간일 수 있는 지금, 방송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젠가 지금의 우리를 돌아봤을 때, ‘보통의 KBS’를 알리는 멋진 예고편이었다고 추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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