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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장관, “노동을 알아서 노동부 장관이 힘들다”

2017년 10월 31일(화) 제528호
이숙이 기자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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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2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했다. 장관 취임 후 그는 “노사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농구 선수 출신이다.
서울신탁은행 선수로 뛰다 부상으로 은퇴한
후 은행원이 되었다.
이후 다시 노동운동가로 변신했다가 정치에 입문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흔치 않은 이력을 지녔다. 농구 선수 출신으로 서울신탁은행 팀에 스카우트되었다. 센터포워드로 3년간 활동하다 부상으로 운동을 접고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다. 여행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여성 최초로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금융노련) 상임부위원장을 지냈으며 2004년 ‘사무직 노동자 출신 첫 여성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비례대표에 이어 서울 영등포 지역에서 두 번이나 당선됐지만 대중에게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외환위기(IMF 구제금융) 때 금융권 구조조정 문제를 협의하며 알게 된 정세균 국회의장(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과 각별해 ‘정세균계’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주로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다. 한 참모는 장관직을 수행하는 요즘이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이른바 ‘양대 지침(공정인사 지침,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폐기,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 직접고용 명령, MBC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고발 등 민감한 현안이 좀 많은가.

직원들과 집중 토론을 하며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있던 김 장관을 고용노동부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용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문재인 대표와의 독대 김영주 장관이 지명된 후 정치권 안팎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캠프 출신도, 같은 상임위 출신도 아니고 2012년 대선 때 적극적으로 뛴 것도 아닌데 초대 내각에 기용됐으니 뭔가 숨겨진 인연이 있는 것 아니냐는 궁금증이다. 김 장관은 문재인 대표 시절의 인연을 풀어냈다. “2015년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취임 후 여성 의원들에게 식사를 제안했는데 다들 선약이 있어서 남윤인순 의원과 저, 둘만 가능해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당일 남윤인순 의원이 급한 일이 생겨 약속을 취소해야 할 형편이라 연락했더니 문 대표가 나만 괜찮으면 둘이라도 보자고 하더라. 1시간40분가량 밥 먹으면서 쓴소리를 많이 했는데, 문 대표가 큰 눈을 끔벅거리며 내내 경청했다.”

이날 김 장관이 한 얘기는 주로 ‘2012년 문재인 캠프의 대선 전략과 선거운동이 얼마나 아마추어적이었는지’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내민 다섯 개의 노동 악법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의견 등이었다. 독대 당시 김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노동법 처리를 두고 당 지도부와 의견이 충돌했다.

ⓒ김영주 의원실 제공
지난 4월30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신촌 집중유세에서 김영주 의원이 함께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모르긴 해도 이날 독대가 문 대통령에게 김 장관의 ‘전문성’을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을 듯싶다. 장관 지명 사실을 알리려 연락한 임종석 비서실장은 “대통령께서 직접 ‘김영주 의원으로 갑시다’라고 하셨으니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의 산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김 장관은 중학생 때 농구부였던 짝꿍의 가방을 지키며 기다리다 감독 눈에 띄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여고 시절에는 ‘무학여고 14번’ 농구 선수로 이름을 떨쳤으나 실업팀(서울신탁은행)에 진출한 후 부상으로 3년 만에 은퇴했고, 관례에 따라 소속 은행에 배치됐다. 당시 은행원들은 대부분 상업학교를 나와 주산·부기에 능숙했는데, 김 장관은 운동만 하다 은행원이 됐으니 나이만 많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계륵’ 신세였다. 그는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을 개인 교사로 삼아 떡볶이 사줘가며 하나하나 업무를 익혔다. 그리고 2년 후에는 그 지점에서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직원이 되었다.

그렇게 은행 일에 익숙해졌을 무렵 김 장관의 인생행로를 바꿀 또 한 번의 계기가 생겼다. 노조에서 진행한 여성 조합원 교육에 참가했다가 은행에서 벌어지던 각종 차별에 눈을 뜬 것이다. 특히 5년차 여행원의 월급이 갓 들어온 남자 행원보다 적고, 여행원이 승진을 하려면 일단 ‘전환고시’라는 것을 통과해 일반 행원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등을 알고 분노했다. ‘여행원’은 단순히 은행원 중에 여성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일반 행원’ 아래 있는 또 다른 직급이었던 것이다. 이 교육 이후 김 장관은 노조 분회장을 맡아 본격적인 노조 활동에 뛰어들었고, 서울신탁은행 노조 여성부장을 거쳐 금융노련 상임부위원장에 이르기까지 20년 가까이 노조에서 일하며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그사이 임신부 유니폼을 만들었고, 동일 노동·동일 임금의 가치를 담은 남녀고용평등법이 탄생케 했으며, 1992년 시중은행에 이어 1994년 국책은행에서도 여행원 제도를 완전 폐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 공로로 1996년 국민포장을 받았다.

뒤늦게 공부에도 뛰어들었다.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노동경제학’을 전공했다. “노조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시장경제학을 체계적으로 알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미시 경제, 거시 경제 공부하느라 초반에는 어려움도 겪었으나 졸업 때는 우수논문상까지 받았다”라는 게 김 장관의 설명이다. 대학원에 입학한 1997년 2월은 외환위기가 몰려오고 있던 시기다. 구조조정의 급물살이 금융계는 물론 모든 분야를 강타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는 경제와 노동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경제가 좋아야 노동도 인정받고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절감했다.

ⓒ연합뉴스
10월10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타워크레인이 무너진 아파트 공사 현장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나설 때 나서는 ‘김조직’ 여성은 대체로 ‘조직’에 약하다는 평을 듣는다. 사회생활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학맥 인맥도 느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장관은 별명이 ‘김조직’일 정도로 조직에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김조직’이라는 별명은, 지점에 근무하던 김 장관이 대졸 남자 직원이 수두룩하고 업무도 생소한 본점 국제업무팀에 배치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선거를 통해 리더로 선출된 뒤 붙여졌다.

학연·지연으로만 보면 김 장관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다. 여고 시절에는 운동선수를 하느라 친구 사귈 기회가 거의 없었고, 실업팀에 진출하느라 대학은 마흔 넘어 방송통신대를 나왔으며, 고향도 서울이라 그 흔한 ‘향우회’ 회원도 아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선수 시절 몸으로 익힌 팀워크와 오랜 기간 노조 간부로 활동하면서 체득한 ‘나보다 우리가 먼저’라는 신념을 토대로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조직을 만들어냈다. “나설 때 안 나설 때 가려서 나설 땐 반드시 나서고, 나서지 말아야 할 자리에서는 절대로 안 나서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랄까?”라며 김 장관은 웃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 총선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신낙균 새천년민주당 부총재로부터 노동계 여성 전문가 자격으로 영입 요청을 받은 그는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듬해 그는 총선에서 비례대표 39번을 받았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죽었다 깨어나도’ 당선권에 들기 힘든 번호였다. 후순위 번호를 받으면 아예 번호를 반납하는 식으로 불쾌감을 표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김 장관은 아무 불평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다른 지역구 후보들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 그때 당으로부터 임종석, 우상호, 김성호, 허인회 등 386 후보 다섯 명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 장관은 지역 기반이 취약했던 이들의 당선을 위해 해당 지역구의 노조 인맥 등 있는 조직 없는 조직 다 끌어모았다. 특히 임종석 후보는 김 장관이 그 지역구에 있는 학교를 나온 터라 당선에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그때 맺은 인연으로 김 장관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 등 이른바 386 정치인들은 ‘누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김 장관의 지원에 힘입어 초선 의원이 된 임종석 비서실장은 자기 몫의 당무위원 자리를 김 장관에게 양보해 김 장관이 적극적인 정당 활동을 하도록 돕기도 했다. 김 장관은 2007년에 쓴 책 <열정으로 긍정으로>에 “그때 당무위원을 했던 것이 오늘날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그(임종석)가 국회로 향한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다”라고 썼다. 김 장관은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13번을 받아 원내에 진입했다.


현장 누비는 ‘영등포 주먹’ 2008년 첫 지역구 선거도 ‘김조직’의 저력을 엿보게 한다. 영등포를 지역구로 선택한 김 장관은 비례대표 시절부터 밑바닥을 다졌다. 그때는 열린우리당이 너무 인기가 없어서 사무실 간판을 내걸기조차 힘들었는데 김 장관은 “어르신들, 열린우리당 ‘열’자만 들어도 열받으시죠?”라고 먼저 눙치면서 지역을 헤집고 다녔다.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한 386 의원들이 ‘영주’라는 이름으로 2행시를 지으라는 이벤트를 지켜보다 “‘영’등포의 ‘주’먹이지 뭐”라며 킬킬댈 정도였다.

하지만 그해 총선에서 김 장관은 전여옥 한나라당 후보에게 1.77%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같은 당의 수도권 지역 후보들, 심지어 중진들까지도 상당한 표 차이로 낙선했던 것에 견주면 선전이었다. 그만큼 밭갈이를 잘했다는 얘기다. 이 선거에서 이정미 민주노동당 후보의 득표율이 4.17%가 넘었다. 김 장관 처지에서는 이정미 후보의 출마가 서운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 뒤로도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하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정의당 대표가 된 요즘은 조언도 구하고 협조도 요청하는 사이다.

ⓒ김영주 의원실 제공
2016년 4월2일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영등포갑 후보가 유세차에 올라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장관 지명 전까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 장관은 지난 7월 초 박원순 서울시장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 구청장들을 초대해 만났다. 지난 대선 때 강남을 포함한 서울시 49개 지역구 모두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한 것을 서로 축하하는 일종의 단합대회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내년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내가 어디 출마하려는 거 아니다. 장관 갈 일도 없다. 그러니 여러분 열심히 해서 재선 삼선 하시고 25개 구청장 다 이겨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되려면 서울시부터 최선을 다해 뒷받침해야 한다. 내가 우리 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지원하겠다.” 

그런데 20일 후 장관 지명을 받고 서울시당 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 “장관이 공수표 날린 셈이 됐다. 내년 서울시 선거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김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시스템을 다 갖춰놓아 걱정 없다. 대선 캠프 때 잘한 거 중심으로 평가·기획·여론조사 등 지방선거를 위한 시스템은 이미 다 갖춰놓았다.”


‘영주’ ‘서주’ 이제는 ‘노주’ 김 장관은 고용노동부의 첫 여성 장관이다. 펴낸 책 <열정으로 긍정으로> 제목처럼 매사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김 장관이지만 취임해보니 밀린 일이 산더미 같았다. 고용노동부는 그 어느 부서보다 매일 떨어지는 현안이 많은 곳인 데다, 1년 가까이 국정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한편으로 밀린 일을 챙기면서 한편으로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큼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적절한 해법을 내놓는 데 좋은 수단이 없다는 걸 그간의 정치 경험으로 체득해서다. 한 달 가까이 전국 10대 도시에 현장 노동청을 열어 국민의 의견을 받고 김 장관이 일일이 나가 민원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그렇게 접수된 제안과 아이디어 수천 건을 10월 말까지 분류해 통계를 낼 계획이다. 김 장관은 이를 토대로 대한민국 노동 지도를 새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울산에는 노사분규가 많고, 강원에서는 취업에 소외됐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고, 경기도는 노동청이 너무 멀다는 얘기가 나오는 등 지역마다 특수성이 좀 있더라. 그런 것들을 담은 노동 지도를 만들어 맞춤형 행정을 펴볼 생각이다.”

노동 지도와 별도로 김 장관은 장관실에 노동 현황판을 설치하려고 준비 중이다. 노사분규 현장이 지금 몇 개이고 새로 발생한 곳과 합의가 이뤄진 곳은 어딘지, 청년실업이 지난달에는 얼마인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파견 업종, 비정규직 숫자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등을 담은 종합적인 고용 노사 현황판이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이 있다면 고용노동부 장관실에는 고용 노사 현황판이 있는 셈이다.

지난 8월26일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초청해 점심을 같이한 자리에서 김 장관은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우원식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큰 소리로 신고했다. “김영주 장관이 ‘영주’에서 ‘서주(서울의 주먹)’로 바뀌었다가 이제 ‘노주(노동부 주먹)’가 됐습니다!”


평평한 운동장 김 장관이 취임 후 가장 많이 한 말은 “노사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겠다”이다. 노동계에서는 ‘노조 출신이니 우리 쪽 얘기를 많이 들어주겠지’ 하는 기대가 크고, 경영계서는 이런 우려 때문에 잔뜩 경계하는 기류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국감을 앞둔 터라 현안에는 말을 아꼈으나 틈틈이 오간 대화에서 김 장관의 정책 방향을 읽을 수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똑바로 만들겠다”는 게 무슨 뜻인가?

장관은 국가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우리나라 노동정책의 수혜자가 기업주와 현장 노동자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되도록 애쓰겠다는 얘기다.

최저임금 인상,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 직접고용 명령 등을 보면서 경영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얼마 전 한 경제지의 조찬 포럼에 가서 강연을 했다. 참석자들이 대부분 기업 CEO들이었는데 거기서도 파리바게뜨 얘기를 하면서 우리나라는 고용유연성이 너무 없고, 파견 직종도 너무 적다고 하더라. 맞는 얘기다. 그런데 다른 나라는 파견업체 직원이나 시간제도 정규직과 시급이 똑같다. 급여를 똑같이 주면 얼마든지 유연성 만들어도 좋다고 대답했다. 그분들 질의 다 받아주느라 국무회의에 늦었다(웃음).

MBC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사건은 들여다보니 어떻던가?

취임해보니 한창 조사가 진행 중이던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보냈으니 이제 검찰과 법원에서 판단할 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노동자 편도 누구 편도 아니다. 잘못되고 부당한 걸 바로잡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노사분규나 산업재해는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정하고 방지하는 것이 기업주에게도 이익이다. 9월12일 서울에 현장 노동청이 개청되자마자 1호로 진정서가 접수된 기아차 하청업체인 현대그린푸드만 해도 그렇다. 기업주가 일방적으로 근무 형태를 변경해서 조리사들이 새벽 3시 반에 출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후 현장감독과 조정을 거쳐 첫 근무조가 아침 7시에 업무를 시작하고, 밀린 임금도 다 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노조가 파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게 사전에 예방되었으니 노사 다 잘된 일이다.

노동계는 박근혜 정부의 ‘양대 지침’을 폐기한 데 환영하면서도 현재의 노사정위에는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관이 몸담았던 한국노총도 대통령이 참여하는 8자 회담을 제안했는데?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8자 회담은 노사정위가 합의를 못했을 때 대통령도 와서 머리를 맞대는 일시적인 합의기구로 활용할 수는 있을지언정 상시적으로는 노사정위에서 협의를 해야 한다. 그동안 노사정위에 대해 불신이 생긴 건 미리 논의할 주제와 결론을 상정해놓고, 사용자한테 유리한 건 노동자를 설득하려 하고 노동자한테 유리한 건 사용자의 양보를 받아내려고 해서인 건데, 이 정부는 모든 걸 열어놓고 노사 양측의 합의를 만들어가려 하니 세상 바뀐 것 좀 인식해달라.” 그리고 노동 행정은 고용노동부가 하는 것이지 노사정위가 손대는 게 아니다. 노사정위는 행정으로 할 수 없는 사회적 합의를 다루는 기구이고, 이 노사정위를 제대로 만들고 싶은 게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다.

노동계는 김 장관에게 내심 서운할 수도 있겠다.

노동을 알기 때문에 ‘어? 이거는 노측이 좀 과하다’ 싶으면 ‘이건 법적으로는 맞지만 노측이 조금만 양보하면 결과적으로 노측에 더 이익이 될 수 있으니 이 고비만 넘기게 해달라’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자리가 참 어려운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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