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부터 ‘모바일 퍼스트’를 예견한 언론사가 있다. 2012년 9월24일 언론사 ‘애틀랜틱 미디어’가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출신의 쟁쟁한 기자들을 모아 창간한 인터넷 언론사 〈쿼츠〉다. 애초에 컴퓨터용 웹사이트보다 모바일 사이트를 먼저 만들어 선보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정치·사회·경제·스포츠 따위 전형적인 뉴스 분류를 없애고 〈쿼츠〉가 추천하는 기사인 ‘Obsession(천착)’이라는 분류 하나만 남겼다. 400단어 이하 짧은 기사와 정반대로 1000자 이상의 긴 기사가 오히려 모바일에서 가장 많이 읽힌다는 법칙(‘쿼츠 커브’)을 발견하고 이를 적용했다.

최신 디지털 기술을 저널리즘에 접목하는 실험도 계속했다. 뉴스를 위한 인포그래픽 제작 도구인 ‘아틀라스(Atlas)’와 지도 제작 도구인 ‘맵빌더(MapBuilder)’를 개발했다. 취재기자가 직접 자신의 기사에 꼭 맞는 그래프와 표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쿼츠〉 편집국장 케빈 딜레이니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직접 인포그래픽을 만든다면 훨씬 더 퀄리티 높은 기사가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 기자들에게 도구가 주어진다면 기사의 대부분을 컨트롤하며 훨씬 일관성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쿼츠〉의 모든 기사는 취재기자가 직접 글·사진·인포그래픽을 작성하고 배치한다. 담당 편집자는 수정이나 추가를 제안할 뿐이다.

ⓒ시사IN 신선영〈쿼츠〉의 기자들이 일하는 사무실 모습.
기자와 기자 사이에 칸막이가 없고 뚫려 있다.

2016년 2월 독자와의 채팅으로 간추린 뉴스를 전달하는 〈쿼츠〉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했다. 그해 애플은 〈쿼츠〉 앱을 ‘올해 최고의 앱’ 중 하나로 선정했다. 올해는 가상현실(AR) 기술까지 도입했다. 예를 들면, 〈쿼츠〉 앱에서 지난 9월15일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고 ‘산화한’ 토성 탐사선 카시니(Cassini)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가상현실로 보기’ 버튼을 누르면, 3D 프린터로 재구성한 카시니의 실물 크기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화면을 터치해 크기를 줄이거나 늘릴 수도 있다.

〈쿼츠〉의 실험은 온라인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9월6일, 〈세계경제를 움직인 물건들(The Object that Power the Global Economy)〉이라는 책을 발간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최첨단 모바일 미디어 언론사가 가장 ‘올드한’ 제품(책)을 제작해 파는 셈이다. 휴대전화에 카메라를 장착할 수 있게 만든 ‘액티브 픽셀 센서’부터 미래 에너지로 주목받는 ‘리튬 이온 배터리’까지, 보이지 않게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물건 10가지를 풍부한 사진과 인포그래픽, 인물 인터뷰로 설명했다. 이미 모바일과 웹으로 공개했던 인터랙티브 기사를 인쇄 버전으로 재구성한 페이지도 있다. 115페이지짜리 책 한 권의 가격은 35달러(약 3만9000원)이다. 케빈 딜레이니 편집국장은 “이 책은 〈쿼츠〉가 오직 디지털 기반 언론사라는 틀을 또 한번 깨는 실험이자, 새로운 수익 모델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쿼츠〉는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기사뿐 아니라 ‘정통 탐사보도’ 기사도 쓴다. 지난 7월26일 보도한 ‘미국 제재를 받는 푸틴의 동지들이 영국 회사를 이용해 평판을 세탁하는 방법(How the family of Vladimir Putin’s US-sanctioned ally uses British companies to burnish its reputation)’이라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 중 한 명을 추적해, 이들이 영국의 홍보회사와 법률사무소에 돈을 뿌려 미국의 경제제재를 회피하는 수법을 파헤쳤다.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트럼프의 협박은 중국어로 들으면 심지어 더 안 좋게 들린다(Trump’s threat at the UN to “totally destroy” North Korea sounded even worse in Chinese)”라는 기사 역시 짧지만 통찰력 있다. 9월19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때 트럼프 대통령이 한 연설을 다뤘다.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기자가, 트럼프의 말치고는 과격하지 않았지만 공식 중국어 통역을 거치면서 이 연설이 얼마나 군사적이고 파괴적인 뉘앙스를 띠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케빈 딜레이니 국장은 “많은 언론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그 발언을 보도했지만 우리 같은 관점은 없었다. 이처럼 〈쿼츠〉는 지적인 독자들과 비즈니스 종사자들을 겨냥한 차별적이고 흥미로운 기사를 보도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6번가에 있는 〈쿼츠〉 사무실은 언론사라기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을 연상케 한다. 직원들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공간이 설계됐다. 특정한 개인을 위한 폐쇄적 공간은 한 곳도 없다. 편집국장 케빈 딜레이니도 다른 기자들과 똑같이 칸막이 없는 작은 책상이나 사무실 이곳저곳에 마련된 소파를 떠돌아다니며 일한다. 커피·차·맥주를 비롯해 먹을거리가 상비된 주방이 있다. 한쪽 벽에는 〈슈퍼마리오〉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보이’ 콘솔이 설치돼 있고 체스·모노폴리 등 다양한 보드게임 공간도 마련돼 있다.

〈쿼츠〉에서 가장 특이한 곳은 ‘작업실(Work room)’이라고 불리는 공간이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고를 떠올리게 하는 작은 방에는 커다란 원목 책상과 다양한 공구, 그리고 3D 프린터가 갖춰져 있다. 케빈 딜레이니 국장은 “이곳은 디지털의 첨단을 달리는 〈쿼츠〉가 아날로그적인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 곳이다. 책을 위한 아이디어나 가상현실 기사를 위한 ‘카시니’ 모델이 여기서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지만 가장 많이 이용하는 팀은 ‘Things팀’이다. 이 팀은 데이터·프로그래밍·디자인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는데 아틀라스, 맵빌더 같은 기사 제작 도구나 가상현실 기사, 인터랙티브 기사 같은 ‘복잡한 것’들을 만든다. ‘Things팀’은 컴퓨터 앞에만 붙어 있지 않고 책상 위에서 손을 움직여 그림이나 모형을 제작하며 영감을 얻는다.

ⓒ시사IN 신선영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쿼츠〉의 사무실 중 ‘작업실’이라 불리는 공간.

2016년 매출 약 338억원, 순수익 11억원

〈쿼츠〉의 실험적인 저널리즘은 수익으로 돌아왔다. 〈쿼츠〉가 2016년, 창간 이후 최초로 흑자로 돌아섰고 매출 약 3000만 달러(약 338억2500만원) 중 100만 달러(약 11억2750만원)에 이르는 순수익을 냈다. 〈쿼츠〉 수익의 핵심은 광고다. 광고는 웹사이트·앱·뉴스레터에 골고루 실리는데 웹사이트보다 앱과 뉴스레터 등 자체 콘텐츠에 붙는 광고 매출이 더 높다. 글로벌 경제 리더와 유명 인사를 한자리에 불러모아 여는 포럼·토론회 같은 행사도 수익 사업 가운데 하나다.

〈쿼츠〉의 광고는 한국 언론사 사이트에 붙어 있는 온라인 광고와 다르다. 웹사이트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 기사를 읽기 번거롭게 만드는 광고, 자동으로 동영상이 재생되거나 팝업창이 뜨는 광고가 아니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을 때 거슬리지 않게 광고를 웹사이트·앱·뉴스레터에 정교하게 배치한다. 심지어 〈쿼츠〉의 광고 가이드라인은 “광고 내용이 〈쿼츠〉의 브랜드와 일치하지 않거나 이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광고를 거절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라고 명시해놓았다. 수익만을 고려해 ‘아무 광고’나 싣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케빈 딜레이니 편집국장은 “이용자(유저)와의 관계에서 광고가 남용되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인다. 모든 광고가 가능한 한 좋은 경험으로 이용자에게 다가가길 원한다. 그래서 우리 이용자들은 광고를 차단하는 프로그램인 ‘애드블록’ 사용률이 다른 웹사이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라고 말했다.

〈쿼츠〉는 편집국과 광고 사업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전통적인 저널리즘 윤리를 강조한다. 〈쿼츠〉의 공동 대표는 케빈 딜레이니 편집국장과 제이 로프 영업·마케팅 부문 사장이다. 편집국장은 사업 부분에 관여하긴 하지만 책과 같은 제품 제작, 인력 충원, 새로운 사업 기획 등 편집국 운영과 관련된 일만 책임진다. 영업·마케팅 분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광고팀은 독자가 읽기 전에는 〈쿼츠〉의 어떤 기사도 읽지 못한다. 반대로 기자들은 광고 사업에 신경 쓰지 않는다. 편집국장조차 어떤 광고가 들어오는지 전혀 모른다. 웹사이트나 앱에 들어가야 비로소 어떤 광고를 하는지 알 수 있다.

전 세계로 확장된 〈쿼츠〉의 저널리즘 실험

이런 엄격한 분리 정책은 궁극적으로 〈쿼츠〉의 수익성을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케빈 딜레이니 편집국장은 “우리 독자 중에는 비즈니스 종사자가 많다. 만약 우리 보도가 영업이나 광고 때문에 왜곡되고 객관성을 잃는다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사업적 결정을 내릴 비즈니스맨은 없을 것이다. 광고주들은 우리가 독립된 뉴스 조직이라 생각할 것이고, 그 가치를 인정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쿼츠〉는 다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다양한 국가를 여행했거나 거주한 경험을 가진 기자를 선호한다. 회사에서 해외로 기자들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기자들이 개인적 이유로 이민을 가도 계속 〈쿼츠〉 기자로서 글을 쓸 수 있다.

〈쿼츠〉가 특별히 관심을 둔 지역은 크게 두 곳이다. 첫째는 인도다. 방대한 인구가 핵심이다. 〈쿼츠〉 인도 버전을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200만명씩 독자가 늘어나고 있다. 둘째는 아프리카다. 영미권 언론에서 아프리카 대륙은 주로 ‘전쟁’ ‘질병’ ‘천연자원’ 프레임으로만 다루었다. 〈쿼츠〉는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혁명과 숨겨진 비즈니스 이슈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중국이 동아프리카의 모바일과 디지털 금융에 어떻게 투자하고 있는지가 〈쿼츠〉의 관심사다. 현재 영국과 홍콩에 법인을 세웠고, 인도·아프리카·프랑스·독일·브라질 등 여러 대륙에 기자들이 상주한다. 미국에서 새로운 실험으로 수익 모델을 마련한 〈쿼츠〉는 이제 전 세계로 확장해 저널리즘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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