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인도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라고 물어보면 열 명 중 다섯 명은 ‘소 숭배’를 떠올린다. 나머지는 카스트 제도, 커리, 똥, 갠지스강 같은 대답을 한다. 굳이 소 숭배를 우선순위에 올리는 까닭을 모르겠으나, 한국인들 뇌리에 꽤 깊이 박혀 있는 상식이다.

독실한 힌두교 신자들은 오늘날에도 ‘소는 어머니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어머니이기에 숭배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21년 전 처음 인도 여행에 나섰던 스물네 살의 나도 도로 중앙선에 떡하니 앉아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모습과 그걸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는 인도인들을 보며 과연 소 숭배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깨진 건 인도 땅을 처음 밟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그날 나는 델리의 네루 바자르라는 채소 시장을 걷고 있었다. 거리의 소 하나가 눈치를 힐끗 보더니 양배추 하나를 긴 혀로 감아 꿀꺽 삼켰고, 가게 주인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소의 ‘뺨’을 냅다 후려쳤다. 그 소는 정말 구슬프게 “움메~” 하고 울더니 인파 속으로 사라졌고, 가게 주인은 소를 향해 몽둥이를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소 숭배 국가 인도에서 목도한 소 폭행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인도가 세계 최대 소고기 수출국?

ⓒAP Photo인도인은 소를 어머니처럼 숭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소는 인도 사람들에게 짐작보다 훨씬 많은 걸 바친다. 일단 우유. 인도 요리에서 우유·요구르트·치즈·버터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재료다. 우유 부산물 없이 만들 수 있는 커리는 거의 없다. 그리고 소똥. 지금도 인도 농촌에서 말린 소똥은 겨울을 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연료다. 딱 지금쯤 인도의 농촌 여성들은 소똥을 모으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소가죽 역시 중요한 생필품이고, 어떤 하층 카스트는 죽은 소를 식량으로 삼기도 한다. 농업 인구가 절대다수인 인도에서 지금도 소가 트랙터 구실을 한다는 건 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인도에서 ‘소=어머니’라는 정의는, 장성한 내가 모시고 부양하는 어머니가 아니다. 어린 내게 모유를 제공하고, 똥 기저귀 빨아주며 이런저런 뒤치다꺼리를 다 해주는 어머니에 가깝다. 말하자면 숭고한 ‘모성’을 핑계로 끊임없이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존재랄까.

거리의 소들은 주인이 있는 경우도 있다. 낮에 그 많던 소는 해거름이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소들은 그저 낮 동안 스스로 자급을 했을 뿐이다. 밤에도 거리에서 서성이는 소가 있다면 대부분 늙어서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해 유기된 소이거나, 우유가 나오지 않는 암소들이다. 소 숭배의 근원은 암소라고 하지만 암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인도에 힌두교 지상주의를 강조하는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소를 숭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들은 가뭄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소에게만 물을 공급하고, 소가죽으로 생계를 연명하는 사람들을 배교자 취급하며 폭행한다. 최근 트럭에 소를 싣고 가던 사람이 힌두교 과격 세력에게 맞아죽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덕분에 ‘세계 최대의 소고기 수출국 인도’의 경제적 지위도 이제 흔들리는 중이다. 응? 진짜다. 비록 물소이긴 하지만 인도는 브라질과 함께 1, 2위를 다투는 소고기 수출국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3위고, 미국이 4위다. 인도의 소고기 산업을 이끄는 이들은 2억명에 달하는 이슬람교도이다. 인도의 이슬람교도에게도 소고기는 중요한 식재료다. 신이 깃들어 있다는 일반 소 대신 물소를 식용으로 키운다. 최근 들어 힌두교 지상주의자들이 물소 역시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자칫 인도에서 소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종교 분쟁의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