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 풍년이다. 분명 박근혜 정부는 다량의 파쇄기를 구매했고 서버를 폐기했다는데도 뭐가 자꾸 나온다. 청와대 압수수색이 거론되던 지난해 12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대통령 비서실은 컴퓨터 서버 22대를, 탄핵 결정이 난 3월 이후에도 60대나 없앴다. 그런데도 문건이 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자타 공인 정보·기록 전문가 전진한 알권리 연구소장(43)은 “대통령기록물을 관리하지 않으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박근혜 정부가 기록 관리와 정보공개에 대해 보인 태도를 되돌아보면, 예견된 참사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7시간’ 대통령 행적을 ‘봉인’했고, ‘일본군 위안부’ 관련 한·일 정상 간 전화통화를 비공개한다고 결정했다.
전 소장은 박근혜 정부의 기록 관리 상태를 알았기에, 그만큼 허술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지난 5월 서버기반컴퓨터(SBC)를 조사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업무용 컴퓨터로 프린트하거나 팩스 등으로 보낼 때 자동 저장되는 청와대 내 시스템이다. 실제로 이번에 캐비닛 문건 이후에 발견된 서버상 문건은 SBC 등에 남은 흔적이었다. 전 소장은 잠자고 있던 테라바이트(TB) 규모의 사초를 찾아내는 데 길라잡이 구실을 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공개할 수 없는 기록이었기에 대충 관리했고, 그것이 거대한 역풍이 되었다. 이번에 줄줄이 공개되는 기록물을 보면서 전 소장은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린다.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 시민활동가인 전 소장이 기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참여정부 시절이다.
2002년 참여연대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했다. 정보공개사업단에 발령이 나면서 기록물 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2004년 〈세계일보〉와 ‘기록이 없는 나라’라는 기사를 공동 기획했다. 곰팡이 핀 문서고 등을 고발했지만, 반응은 들인 품에 비해 적었다. 하지만 기사 가치를 제대로 알아본 진성 독자의 눈에 띄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 지시로 대통령기록물법이 제정되고, 2급 기관이던 정부기록보존소를 1급 기관인 국가기록원으로 격상했다.
하지만 다음 정권을 잡은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남긴 기록을 정쟁 도구로 악용했다. 이명박 정부 검찰은 청와대 이지원 시스템의 유출 의혹이 있다면서 노 전 대통령 쪽 수사를 벌였고, 박근혜 정부는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 전 소장은 “박근혜·이명박 정부는 기록을 악용하고 도구화해 기록의 가치와 의미를 퇴색시킨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기록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다른 차원에서 교훈을 남겼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가기록원 적폐청산 TF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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