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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없었다면] 광화문에 우뚝 선 박정희 동상이라…

2017년 11월 06일(월) 제529호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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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 4m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워졌다. 학생들은 우편향 국정 역사 교과서로 공부하고 박정희 기념사업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책상 위에 놓였거나 벽에 걸린 달력을 들춰보라. 달력 대부분에 2017년 ‘12월20일’은 빨간 날, 대통령 선거일로 표시되어 있다. 이듬해 달력이 인쇄되던 지난해 하반기까지도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지금과 같은 1년 뒤를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또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지난겨울 촛불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촛불 1주년을 맞이해 ‘촛불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지내고 있을 ‘디스토피아’를 그려봤다. 촛불이 없었다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끝까지 파헤치기 힘들었을 터이다. 최순실씨는 여전히 청와대 문건을 받아 빨간 줄을 긋고 청와대를 제 집처럼 들락거리고 있을 것이다. 정유라씨도 이화여대 재학생으로 삼성이 제공한 말을 타고 한창 도쿄 올림픽을 준비했을 것이다.

ⓒ연합뉴스
2011년 11월14일 경북 구미시에 세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
역사·교육·문화 부문에서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을 것이다. 올해 국정 역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보급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박정희 동상이 건립됐을 수도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따라 온통 ‘우편향’ 콘텐츠가 텔레비전·서점·영화관을 점령했을 것이다.

‘만약 이런 세상이라면 우리는 어떤 기사를 쓰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창간 이래 처음으로 허구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다만 ‘사실 기반’ 허구이다. 실제로 그런 징조가 있었고 자칫하면 일어날 수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삼았다. 디스토피아를 그려보니 ‘촛불’의 위대함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촛불이 있었기에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고 오늘이 변했다. 모두, 입김 서리던 지난 겨울날 꽁꽁 언 손으로 희망을 밝힌 ‘촛불 시민’ 덕분이다. 

<편집자 주>




서울 광화문광장에 동상 하나가 추가됐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구상도를 손에 쥔 양복 차림의 남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광화문광장 박정희 동상건립 프로젝트’가 현실이 되었다. 10월25일 기념사업회는 경기도의 한 주물 제작소에서 만든 높이 4m의 박정희 동상을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옮겼다. 여러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상은 ‘광화문광장 박정희동상건립 지지연합’ 회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광장 중앙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제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서울 상암동에 박정희 동상이 건립될 계획이 다시 세워졌다. 박정희 대통령기념재단이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에서 기증받은 높이 4미터의 박정희 동상을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정면에 세우겠다고 밝힌 것이다. 광화문에 세워질 뻔한 바로 그 동상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절정으로 치달은 가을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 신년 대국민 담화에서 “2017년은 그동안 왜곡돼온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15년 10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의 “올바른 역사 교육은 미래 세대에게 영혼을 물려주는 것”, 2015년 11월 국무회의에서의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않으면 혼이 비정상” 같은 발언이 시작이었다. 박 대통령은 임기 중·후반기를 지나며 ‘역사’와 ‘역사 교육’에 집착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대표적이다. 2015년 10월부터 정부가 추진해온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발이 거셌지만, 결국 올해 3월 전국 중·고등학교에 국정 역사 교과서가 배포됐다.

국정 역사 교과서가 뿌려지면서 올해 내내 학교 현장에서 ‘교과서 전쟁’이 벌어졌다. 학부모들은 한 권에 4000원씩 하는 국정 역사 교과서를 사지 않겠다며 불매운동을 벌였다. 역사 교사들은 ‘국정교과서로 가르치지 않겠다’, 학생들은 ‘국정교과서로 배우지 않겠다’며 맞섰다. 서울·강원·경남·세종·광주·전남·전북·제주 등 진보적인 교육감이 선출된 일부 시·도 교육청은 우편향 국정 역사 교과서를 대체할 보조 교재를 개발해 함께 배포했다. 이에 교육부는 시정 명령과 특정 감사 등으로 압박했다. 일부 학교들에서는 국정 역사 교과서로 가르치기를 거부한 교사와 배우기를 거부한 학생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쿠데타 세력을 경제발전 주역으로 찬양

국정 역사 교과서는 최초 내용이 공개된 지난해 12월부터 줄곧 우편향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현대사 부분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23회나 등장하는 것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헌정 교과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교과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한 5·16 쿠데타 세력을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치켜세웠다.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유일한 유한양행 회장을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소개하며 그 업적을 기술하기도 했다. 친정부·뉴라이트 학자들로 구성된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도 논란거리였다. 집필진 중 한 교수는 지난해 10월 ‘최순실 국정 개입 의혹 사건’이 벌어질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느님 앞에 죄 없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며 “(박근혜) 대통령님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쓰기도 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을 덮는 데 성공한 박 대통령은 또 ‘안보 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올해 3월 국회를 통과한 호국보훈교육진흥법이 그 진두에 섰다. 호국보훈교육진흥법은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전 국민의 호국보훈 교육 ‘의무화’를 규정한 법이다. 국가보훈처가 매년 수십억원씩 예산을 들여 이른바 ‘나라사랑 교육’을 실시해왔는데, 올해부터 이를 아예 법으로 못 박은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보훈처장은 유치원 및 초·중학교 교육과정에 호국보훈 교육이 반영될 수 있도록 교육부 장관 또는 시·도 교육감에게 요청할 수 있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반영되어야 한다(제9조 1항). 보훈처장은 호국보훈 교육 대학교도 지정할 수 있고(제9조 3항), 재외 동포에게도 호국보훈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제15조 1항). 공무원은 당연히 의무교육이다(제10조 1·2항).

‘구시대적이고 정치 편향적인 교육이다’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온 나라사랑 교육은 호국보훈교육진흥법 통과 후 더 노골적으로 반공·우편향 색채를 띠게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신화’로 찬양하고 반유신·반독재 운동과 광우병 촛불집회 등에 참여한 사람들을 ‘종북 세력’으로 표현한 안보교육 DVD가 학교에 배포됐다. 한국자유총연맹 등의 보수·친정부 단체 소속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나라사랑 교육 전문 강사 가운데 일부는 초등학생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치거나 북한 인권 실상을 가르친다며 ‘영아 살해, 강제 낙태’ 등의 끔찍한 고문 동영상을 틀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프로젝트는 마지막으로 큰 행사 하나를 앞두고 있다. 바로 11월14일,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다. 그동안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국비 등을 포함해 1400여억원 예산을 책정해 박정희 기념사업을 해왔다. 새마을테마공원·민족중흥관·역사자료관 등이 현재 건립 중이고 박정희 일대기 신문 연재, 다큐멘터리 방영, 기념음악회 등의 프로젝트도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 중구도 신당동 박정희 가옥에 228억원을 들여 ‘박정희 공원’을 조성했고 우정사업본부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제19대 대선을 한 달여 남긴 늦가을, 구미시를 비롯한 전국 곳곳의 거리에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장식물들이 단풍잎과 함께 흩날리고 있다.

※실제로는…


서울 광화문광장 박정희 동상 건립은 실제 추진된 사업이다. 지난해 11월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이 계획을 발표했고 이를 위한 범국민 모금운동도 제안했다. 실제 경기도의 한 주물 제작소에는 광화문광장에 세울 높이 4m의 박정희 동상이 제작 의뢰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건립되지는 못했다. 서울시가 바로 ‘불허’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12월 말, 광화문광장 내 조형물 등의 건립 및 이전에 관한 사항을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조례를 변경하면서 이런 시도가 원천 차단됐다.

올해 초 집필 완성된 국정 역사 교과서도 실제 학생들 책상 위에 오를 뻔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에도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 현장 적용 시기를 1년 늦췄을 뿐이었다. 2018년부터 국정·검정 역사 교과서 혼용을 계획했지만 올해부터도 희망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국정 역사 교과서를 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거부하는 시·도 교육청은 특정 감사와 시정 명령을 내리겠다”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취임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문재인 대통령이 폐기를 지시하면서 이 국정 역사 교과서는 비로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연합뉴스
지난 1월31일 교육부는 정부 세종청사에서 국정 역사 교과서를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사흘째인 5월12일 폐기를 지시하면서 이 교과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호국보훈교육진흥법 또한 실제 추진됐던 법안이다. 제19대 대선 전날인 지난 5월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회부됐지만 더 이상 입법 절차가 진행되지 못했다. 5월18일 새로 임명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7월25일 우편향 안보 교육을 담당해온 나라사랑교육과를 없앴다. “보훈처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의 정신을 기리는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존 계획에 따라 올 4분기까지  진행될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 교육은 내년부터 완전히 폐지된다.

경상북도 등에서 추진한 각종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도 상당수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우정사업본부의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도 취소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고 치켜세웠던 남유진 구미시장은 새마을테마공원 등을 포함한 이른바 ‘박정희 타운’을 짓는 데 여전히 예산 1400억원을 배정해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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