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들은 ‘교복 부대’였다. ‘이게 나라냐’며 모여든 시민들 사이에 꼭 교복 입은 청소년 무리가 섞여 있었다. 초등학생들은 자유 발언대에 올라 “내가 대통령이라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라며 어른들을 웃기면서도 부끄럽게 만들었다. 평소 “공부나 하라”는 소리를 들으며 광장에서 밀려났던 청소년들이 어느새 광장의 동료가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시민들이 광장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청소년들도 광장에 따라 나왔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원래 광장에 있었다. 지금 청소년 세대는 누구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에 능숙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초등학생 때부터 보수 정권 아래에서 성장했다. 2008년 일제고사가 부활되었고, 자사고·특목고 등 특권 학교가 생겨났다. 초등학생 때부터 격한 입시 경쟁을 경험한 세대다.

이들은 ‘광장’과 ‘억압’을 동시에 경험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부터 부모를 따라 광장을 경험했고, 중·고교생이 되었을 때 더 촘촘해진 입시 전형에 숨 막혔을 것이다. 그러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2015년부터 국정교과서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광장에 대한 경험이 있지만, 일상은 훨씬 더 옥죄임을 당했다.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배우지만, 세상에는 불의와 경쟁이 판쳤다. 그런 세상을 경험해온 학생들이다.

이런 부조화 속에서도 학생들은 꾸준히 광장을 함께 지켰다. 세월호 참사 때는 “정부는 왜 내 친구를 구하지 않았나요?”라며 절규했고, 국정교과서 국면에서는 “그런 교과서 따윈 필요 없다”라며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다. 다만 그러한 모습이 어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거나 보여도 걱정의 대상이 되어 억압당했을 뿐이다. 실제로 2012년 서울의 한 대학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을 때 많은 중·고등학교에도 비슷한 대자보가 붙었다. 대학과 달리 중·고등학교에서는 대자보를 붙이자마자 찢겨나가는 일이 빈번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청소년들의 광장 참여가 이어졌지만, “공부나 신경 쓰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2015년 국정교과서 반대 서명이 일어났을 때도 학교 내 서명을 받다가 제지당한 학생들의 제보가 줄을 이었다.

2016년 많은 학생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집회에 참여했다. 촛불집회 때마다 낮에 학생들의 집회가 따로 열렸다. 청소년들은 대통령이 탄핵되어야 하는 이유를 절절히 외치며 도심을 행진했다. 수능 날에도 시험을 마친 고3 수험생들의 촛불집회가 따로 열릴 만큼 청소년들의 참여 열기가 높았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슬픔과 분노를 겪지 않아도 되는 세상, 정유라의 대학 부정 입학과 최순실 국정 농단 같은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청소년들의 외침 속에 박근혜는 탄핵되었다.

ⓒ시사IN 신선영2016년 11월19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청소년들 모습.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청소년들의 일상은 어떨까? 촛불과 함께 대통령을 몰아내는 경험을 했지만, 여전히 청소년에게 정치는 ‘19금’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너는 나이가 어려서 모른다” “어린애가 그런 것에 신경 쓰면 안 된다” 따위 말을 듣는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교육청으로부터 사찰을 당하기도 했다. “이제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어른들에게 맡기고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도 들었다. 학교에서는 구시대적 인권침해도 지속되었다. 교사가 부러진 각목으로 학생 목을 겨누고 “찔러죽이기 딱 좋다”라고 위협했고, 한 교사가 대걸레 봉이 구부러질 정도로 학생들의 허벅지를 때렸지만 검찰은 “사회상규상 위배되지 않는다”라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학생들에게 체벌 감수 서약서를 받는 학교도 있다. 학생 소지품 압수도 대부분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당리당략 탓에 무산된 18세 선거권

2016년 말 청소년 인권단체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청소년 1086명에게 “청소년에게 피선거권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답은 “이런 대통령(박근혜)이 뽑히지는 않을 것이다”였다. 학생들은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하라며 탄핵 이후에도 행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만 18세 선거권 논의는 정당들의 당리당략 속에 무산되었다. 청소년들에게는 적폐를 함께 청산할 권리가 아직도 주어지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비극으로 돌아온 역사를 경험한 학생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함께 대통령을 탄핵한 청소년들이 적폐도 함께 청산할 권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청소년들은 지난 9월26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를 꾸렸고 시민단체 250여 개가 힘을 보탰다. 내년 지방선거 때 청소년(만 18세)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게 촛불 1주년을 맞는 어른들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기자명 조영선 (서울 영등포여고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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