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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속살기행, 건축물개방축제

2017년 11월 08일(수) 제529호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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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품은 공간은 도시를 좀 더 사랑스럽게 만든다. 오픈하우스서울은 건축물 50여 개를 돌아볼 수 있는 건축물 개방 축제다. 건축가들도 자신의 사무실을 스스럼없이 열었다.

22년 전 한 교회의 의뢰를 받았다. 건축주인 목사는 주말에는 예배당으로 쓰지만 평일에는 비어 있는 공간을 ‘지혜롭게’ 쓰기 위한 방안을 고심했다. 그는 장애아를 위한 학교를 만들고자 했다. 유걸 건축가(76·아이아크 공동 대표)는 먼저 해외 사례를 찾아보았는데, 한숨부터 나왔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통합교육을 하고 있었다. 특수학교를 별도로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좋은 학교의 조건을 궁리했다. 수업 끝나는 종소리가 들리면 뛰어나올 마당이 있어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서울 일원동에 위치한 밀알학교의 아트리움 (atrium:실내에 설치된 넓은 마당)은 그런 고려 속에서 설계됐다.

ⓒ김흥구
밀알학교의 아트리움은 이용자(학생)를 중심에 두고 설계됐다.
1층부터 4층까지 연결하는 경사로는 학교 전체 공간을 묶고, 천장의 폴리카보네이트는 외부의 빛과 공기를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설계하면서 난관이라고 생각했던 아파트 숲 사이에 위치한 공간, 한정된 대지,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바닥은 정작 어려움이 아니었다. 특수학교를 짓는다는 소식에 지역 주민들이 들끓었다. 설득과 소송의 지난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20년 후, 밀알학교는 특수학교가 지역사회와 융합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시사IN> 제525·526호 ‘밀알학교를 보라, 지역의 보배가 되었다’ 기사 참조). 

10월24일 오전 11시, 밀알학교에서 유걸 건축가는 일일 도슨트(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가 되었다. 스무 명 남짓한 이들이 1시간30분가량 유 건축가와 함께 그가 설계한 밀알학교의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1층부터 4층까지 연결하는 램프(경사로)가 어떻게 학교 전체 공간을 묶는지, 아트리움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 폴리카보네이트가 외부의 빛과 공기를 어떻게 끌어들이고 있는지…. 건축물이 지어진 시대의 풍경과 공공의 의미가 유 건축가의 이야기를 통해 겹쳐지고 또 펼쳐졌다.

밀알학교야말로 ‘한국적 상황’이 반영된 건축물이다. 유 건축가는 설명 도중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논란을 언급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가 같은 논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밀알학교가 좋은 사례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실은 ‘장애인을 위한 좋은 학교’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애초 설계 의도대로 이 학교가 언젠가는 통합교육을 하는 학교로도 쓰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밀알학교뿐 아니라 10월21일부터 28일까지 8일간 서울과 서울 근교의 건축물 50여 곳이 일반 시민을 향해 문을 활짝 열었다. 민간 비영리단체 오픈하우스서울이 만들고 있는 도시 건축 축제 ‘오픈하우스서울 2017’은 밀알학교처럼 사회적 의미를 환기해주는 건축물은 물론이고 사옥과 근대 건축에 시민들을 초대하는 축제다. 평소 여러 이유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공간을 속속들이 둘러보거나, 건축을 설계한 건축가와 시민이 직접 만날 수도 있다.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들은 자신의 사무실 문을 스스럼없이 열었다. 참가비는 모두 무료다.

ⓒ김흥구
사무실 ‘커튼홀’을 공동으로 쓰고 있는 조재원·김광수·구승회 건축가(왼쪽부터)는 설계사무소를 공개했다.

4회를 맞은 오픈하우스서울은 올해 서울문화재단의 우수문화축제에 선정되기도 했다. 건축 전공 학생 참가자가 많았던 초기와 달리 지금은 일반 시민의 참여가 늘었다.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ㅁ집’과 ‘땅집’은 신청자 접수가 시작됨과 거의 동시에 마감됐다. 

오픈하우스서울의 대표는 17년차 프리랜서 건축 전문기자 임진영씨다. 임씨는 취재를 다니며 느꼈던 기쁨을 일반 시민에게 돌려줄 순 없을까 고민했다. “대부분 건축을 어렵다고만 생각하는데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문화재 답사의 새 지평을 연 것처럼 건축도 답사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어떨까, 건축물도 도시의 구성원이잖아요. 이런 축제를 통해서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떤 게 좋은 건축인지에 대한 안목이 쌓이기 때문에 좋은 건축을 공공시설에도 요구할 수 있게 돼요.”

건축물 개방 축제의 모태는 프랑스의 ‘문화유산의 날(Journées du patrimoine)’ 이다. 1984년부터 매년 9월 셋째 주 주말 이틀 동안 열리는데, 도시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의 건물들이 ‘속살’을 드러낸다. 오래된 건축물이나 공장, 농장, 정원, 공원, 문학 및 군사 유적지 등 문화유산으로 규정지을 만한 거의 모든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아예 이 시기를 노려 여행 일정을 잡는 관광객도 있다.

이를 아이디어 삼아 1992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시작된 ‘오픈하우스 런던’은 이후 뉴욕, 더블린, 텔아비브, 예루살렘, 멜버른, 바르셀로나, 시카고, 로마, 헬싱키 등 23개 시로 번져나가며 오픈하우스 월드와이드를 만들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모두 민간 비영리단체로 꾸려지며 관이나 협회의 산하가 되지 않는다는 ‘느슨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시민의 영역에 머물며 외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독립 기구로 기능하기 위해서다. 오픈하우스서울은 아직 오픈하우스 월드와이드의 정식 멤버로 합류하지는 못했다. 한 번에 1000여 개의 건축물이 개방되는 다른 도시와 달리 서울은 50여 개의 소규모로 열리는 등 건축 문화 여건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당 얼마’ 말고 ‘3차원’으로 만나는 공간


상시 조직이 아닌 오픈하우스서울은 건축 관계자들의 긴밀한 협조 아래 진행된다.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임진영 대표를 비롯해 건축가와 건축학과 교수, 에디터와 디자이너로 이뤄진 운영위원들은 사무실을 옮겨 가며 회의를 거듭한다. 최춘웅(서울대), 황지은(서울시립대), 염상훈(연세대), 김형진(그래픽디자이너·워크룸 대표), 김상호(정림건축문화재단 실장), 최진이(에디터), 배지운(문화기획자), 임여진(건축가) 등 운영위원은 매년 올해의 테마를 기획하고, 건축물을 선정해 섭외하며, 건축주를 설득해 일정을 조율하는 등의 실무를 맡는다.

ⓒ김흥구
오픈하우스서울 2017을 기획한 이경희 사무국장, 노정화 코디네이터, 임진영 대표(왼쪽부터).

이야기를 품은 공간은 도시를 좀 더 사랑스럽게 만든다. 오픈하우스서울 2017이 선정한 50여 개 프로그램은 건축가로 시작해 ‘Suburb of Seoul’(서울 근교의 건축물 방문 프로그램) ‘지하철 3호선으로 찾아가는 상가아파트 투어’ ‘전통과 현대’ ‘근대 건축의 재해석’ ‘건축과 사회’ 등 세부 주제로 나뉜다. 사람에서 건물을, 건물에서 사회를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오픈하우스서울 2017이 주목한 올해의 건축가는 최욱(원오원아키텍츠 대표)이다. 최 건축가의 대표작을 모두 모아 소개하고 직접 방문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최 건축가는 현대카드 본사 3관과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설계했으며, 백남준 기념관과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등 적산가옥의 기본 특성을 살린 건축물로 주목받은 건축가다.

ⓒ시사IN 윤무영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백남준 기념관은 적산가옥의 기본 특성을 살려서 지어졌다.
원오원아키텍츠의 황선영 소장(맨 왼쪽)이 참가자들에게 도면을 보여주고 있다.

대다수 건축가들은 상업시설이든 공공시설이든 어떤 건물을 짓든 간에 건물과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도록 훈련받는다. 사적 공간을 짓더라도 건물이 도시의 일부임을 고려해 이 건물이 도시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 고민하는 식이다. 그런 고민은 건물만 봐서는 알 수 없다. 오픈하우스서울은 건축가한테 직접 건축 의도와 고민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최욱 건축가는 “도시에 머무는데 이 도시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하다”라고 말한다. 건축은 보고 감상하는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이고 개입하는 ‘현재진행형’의 예술이다. 그리고 자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소설이나 미술과 달리 건축이라는 ‘작품’의 주인은 건축가가 아니다. 건축가가 자신의 역량을 모두 투입해 최고의 설계도를 내놓았다고 해도 건축주의 요구나 주변의 민원, 관계기관의 허가 문제로 인해 원안이 그대로 구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다이내믹’한 과정이야말로 건축을 가장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다.

건축가들은 ‘평당 얼마’ 식으로 건물을 올리는 대신, 3차원으로 공간을 사고한다. 그 때문에 공간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건축을 가장 강렬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오픈하우스서울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여행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내년 10월에도 오픈하우스서울은 시민들을 만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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