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 아베 신조가 다시 일본 총리로 뽑혔다. 아베는 2006년, 2012년, 2014년에 이어 다시 총리로 선출되었다. 지지율 마지노선까지 무너지며 수세에 몰렸던 아베 총리가 10월22일 총선에서 생환하자, 한국 언론은 ‘압승’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들을 쏟아냈다. 한국 언론의 일본 총선 관련 보도에서 또 다른 단어 하나가 눈에 띈다. 바로 ‘아베노믹스’다. 한국의 보수 언론은 “아베노믹스 성공으로 유권자들이 아베에게 힘을 실어주었다”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의 ‘좌클릭’을 비판하며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부르짖는 이들도 부쩍 아베노믹스를 칭송한다.

총선에서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다수당이 된 건 맞다. 하지만 여론조사 수치 몇 개만 보더라도, 아베 정권이 밑바닥 민심까지 얻으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는 의문이 든다. 총선이 치러지는 내내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45%에서 40.6%로 하락세를 이어갔다(교도통신 여론조사). 〈아사히신문〉이 선거전 막바지(10월19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아베 총리가 앞으로도 총리직을 계속하기 바라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고 답한 이가 51%나 되었다. 심지어 출구조사(교도통신)에서도 아베 총리를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유권자가 51%에 달했다. 자민당 비례대표 득표율도 33.1%로 지난해 말 치러진 참의원 선거 때보다 하락했다.

ⓒAP Photo10월22일 아베 일본 총리가 도쿄 자민당사에서 총선 당선 확정자의 이름 위에 장미꽃을 달고 있다.
또 한국 언론이 ‘아베 압승’ 배경으로 꼽은 아베노믹스도 과연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까? 선거 기간 내내 아베는 아베노믹스 성공으로 취업자 수가 185만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아베는 또 구직자 대비 구인 기업 비율을 나타내는 유효구인배율이 1.52(구직자가 100명이라면 일자리는 152개가 있다는 뜻)라며 이 모든 것이 아베노믹스의 성과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의문이 든다. 우선 ‘취업자 185만명 증가’는 2012년과 2016년 취업자 통계를 비교한 수치인데, 이 가운데 56%(103만명)는 개호·보육·의료 분야 취업자다. 청년 세대 일자리보다 노인 세대 취업자가 늘었고 여성도 3040 세대보다 고령자 쪽에서 늘었다. 비교의 시점이 2012년인 점도 문제다. 당시는 리먼브라더스 사태(2008년)로 인한 경제위기와 동일본대지진(2011년) 등으로 취업자 수가 현저하게 줄었던 시기이다. 경제위기 이전인 2007년 취업자 수와 비교하면 2016년 증가한 취업자 수는 38만명에 불과하다.  

유효구인배율 상승도 아베노믹스 성과와는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격감이 그것이다. 2016년 생산가능인구는 10년 전인 2006년에 비해 717만명이 줄고 2012년과 비교해도 361만명이 줄었다. 저출산·고령화 때문이다. 노동할 인구가 줄면 유효구인배율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EPA10월22일 아베 일본 총리가 도쿄 자민당사에서 총선 당선 확정자의 이름 위에 장미꽃을 달고 있다.
자민당이 선전하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또 하나 실적은 기업 수익의 증가와 주가 상승이다. 먼저 기업 수익 증가는 이차원의 완화(양적·질적 금융완화)로 인한 ‘엔저 가속’으로 수출 대기업이 호황을 누린 덕분이다. 아베 정권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4조 엔이나 되는 대폭 감세도 실시했다. 대기업의 사내보유금은 아베 정권하에서만 70조 엔이나 증가해 최초로 400조 엔을 돌파했다.

이에 더해 일본은행이 주식시장에 대량 자금을 붓고 있으니 주가 상승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중앙은행이 직접 주식투자에 뛰어들지 않으므로, ‘무리한 주가 부양’이란 비판도 나온다. 주가 상승으로 ‘슈퍼리치(최상위 40대 부자)’ 보유 자산액은 2012년 8조 엔에서 2016년 16조 엔으로 두 배 증가했으나 그만큼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일본은행 총재인 구로다 하루히코의 임기가 내년 4월까지인데 연임이 확실시된다.

일본공산당의 희생으로 이뤄낸 야권연대

자민당이 284석을 확보한 이유는 아베노믹스의 성공이라기보다 ‘기울어진 운동장’ 덕이다. 바로 1994년 도입된 소선거구제(일본의 소선거구제는 자민당의 분열로 위기의식을 느낀 우익 정치 세력에 의해 도입되었다)와, 제1야당인 민진당 소속 의원들이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가 이끄는 희망의당으로 합류하는 등 야당의 분열이 자민당에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베 압승’은 아니다. 평화헌법(헌법 제9조) 개정과 전쟁법에 대한 견해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자민당·공명당·보완 세력(자민당으로부터 갈려 나왔거나 자민당 정권을 뒷받침하는 어용 야당) 등 ‘범여권’과 일본공산당·입헌민주당·사회민주당·시민연합(안보법제 폐지와 입헌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연합) 등 ‘범야권’의 양자 대결 구도에서 보면, 범여권 의석은 15석 줄어든 반면 범야권 의석은 31석 늘었다.

10·22 총선을 맞아 ‘아베의 숙적’이라 불리는 시이 가즈오 일본공산당 위원장은 소선거구에 자당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의석수 감소도 각오한 결정이었다. 그 결과 일본공산당이 후보자를 내지 않은 32개 선거구에서 입헌민주당·사회민주당·무소속 후보 등이 승리했다. 그 밖에도 22개 선거구에서 지역비례 후보가 당선되었다. 도쿄전력의 가시와자키 가리와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니가타 현의 경우 5개 선거구 중 세 군데에서 야권연대 후보가 승리를 거두어, 〈니가타 일보〉는 ‘야권연대, 1강에 바람구멍’ ‘야당 연대투쟁의 효과 증명’ 같은 기사를 내기도 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SNS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선거운동을 전개한 입헌민주당은 야권연대의 최대 수혜자였다. 15석에서 55석으로 의석을 늘린 입헌민주당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후보 단일화를 진행한 일본공산당과 사회민주당에 대해 “우리 이상으로 힘든 선택을 해주셨다”라며 사의를 표했다.

야권연대의 선전과 관련해서 특히 눈길을 끄는 쪽은 시민연합이다. 시민연합은 2015년 전쟁법 반대 서명운동을 주도한 29개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결성되었다. 시민연합은 7개 정책을 제시하며 민진당 이탈로 잠시 흔들렸던 야권연대를 견인했다. 시민연합이 제시한 7개 정책은 다음과 같다. 헌법 9조 개정 반대, 특정비밀보호법·안보법제·공모죄 등 철회,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 대한 검증 없는 원전 재가동 반대, 아베 사학 스캔들 및 남수단 파견 자위대 부대의 일일 보고 은폐 의혹 규명, 보육·교육·고용정책 확충, 사회보장 정책 확립, LGBT(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해소·여성에 대한 고용 차별과 임금 격차 철폐 등이다. 시민연합이 제시한 7개 정책은 이후에도 야 3당과 시민 사회단체의 연결고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명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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