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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목숨 앗아간 명예 없는 명예살인

2017년 11월 16일(목) 제530호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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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인척 수십명이 가족 살인에 관여했다. 누군가는 거짓말로 알리바이를 제공했고, 누군가는 시체 유기를 도왔다. 아버지가 명령한 결혼을 거부하고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기 때문이다.

베칼 마흐무드는 열여섯 살에 집을 나왔다. 아버지가 남편감으로 정한 사촌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칼이 10대 초반이던 1995년, 쿠르드족인 마흐무드 집안은 사담 후세인을 피해 이라크에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많은 친척도 같이 와서 여전히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마흐무드 집안은 떠나온 고향에서는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 땅과 명망 높은 조상이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베칼의 아버지 마흐무드 마흐무드는 사회보장 시스템에 의지해 살았고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는 동생인 아리 마흐무드에게 집안의 좌장 자리를 빼앗겼다.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딸들이 그의 평판을 떨어뜨렸다. 마흐무드의 딸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마흐무드 가족이 난민 지위를 얻고 난 뒤 딸들이 학교에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서방세계’의 친구를 사귀자 아버지의 폭력이 시작되었다.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상의 단추 하나가 풀려 있다거나 헤어 젤을 사용하는 등 사소한 행동도 폭력의 이유가 되었다. 베칼이 머리카락을 가리는 스카프를 잠시 벗고 있다가 아버지에게 들켰을 때 그녀는 매질을 당했다. 아버지는 딸의 얼굴에 침을 뱉은 후 “부모의 말을 어길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외쳤다. 아버지는 딸들이 서구식 생활방식을 접하게 되자 자기 명령을 듣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이는 곧 자신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일로 받아들였다. 하나뿐인 아들은 여러 가지 사소한 범죄를 저지르는 불량배가 되었지만 아버지한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Mail Online 갈무리
베칼 마흐무드는 친인척의 눈을 피해 온몸을 가리고 다닌다.
베칼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라크에 있는 사촌과의 결혼을 거부하자 부모는 딸을 가두었다. 그녀는 간신히 빠져나와 경찰에 신고했고, 위탁 가정에 맡겨졌다. 아버지는 베칼이 돌아오지 않으면 여동생들을 몽땅 죽이고, 어머니 역시 죽인 후 자살하겠다고 위협했다. 베칼이 입힌 불명예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협박이 말로 그치지 않으리라 믿었다. 마흐무드에게 친족들 사이에서 본인의 체면은 가족의 목숨보다도 중요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자 폭행과 결혼 강요는 계속됐다. 베칼은 다시 도망쳐 위탁 가정으로 돌아갔다.

베칼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을 때 그녀의 오빠가 아버지와 삼촌의 명령에 따라 베칼을 죽이러 찾아왔다. 그는 배낭에 담아온 덤벨로 베칼의 머리를 내리쳤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베칼에게 오빠는 ‘가문을 부끄럽게 한 여동생을 죽이는 게 나의 의무’라고 울면서 외쳤다. 그는 여동생을 차마 죽이지는 못했다. 베칼은 병원에 가서 상처를 봉합했지만 경찰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집을 떠난 그녀 역시 가족의 명예를 신경 썼다.

ⓒPA Wire 갈무리
베칼 마흐무의 아버지 마흐무드 마흐무드와 삼촌 아리 마흐무드(왼쪽부터).
이 일이 있고 몇 달이 지난 후 베칼은 여동생 바나즈가 아버지 뜻에 따라 결혼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나즈는 열일곱 살이고, 남자는 30대였다. 아버지는 데이비드 베컴과 같은 사윗감이라며 매우 흡족해했다. 이라크에서 영국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남자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데다 폭력적이었다. 그는 규칙적으로 아내를 때리고 강간했다. 친정 가족들은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라는 사위의 설명을 수긍했고 바나즈에게 더 나은 아내가 되라고 설득했다. 어린 신부는 2년 반 만에 남편에게서 도망쳤다.

집으로 돌아온 바나즈는 라맛 술래마니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라맛은 오랜 세월 집안끼리 알고 지내온 사이였지만 아버지와 삼촌 눈에는 적합한 짝이 아니었다. 게다가 바나즈는 아직 법적으로 결혼한 상태였다. 바나즈와 라맛은 친척들 눈을 피해 몰래 만났다. 자기들의 만남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지하철역에서 입 맞추는 걸 본 친척이 이를 아버지에게 알렸다.

삼촌인 아리의 집에서 가족회의가 열렸다. 집안 남자들은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바나즈와 라맛을 죽여버리기로 결정했다. 아리는 이 결정을 전화로 바나즈의 어머니에게 통고했다. 2005년 12월31일, 마흐무드는 딸을 목 졸라 죽이려 했다. 바나즈는 창문을 깨고 도망쳤다. 바나즈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2000년대의 영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바나즈 마흐무드 (왼쪽)는 가족에 의해 살해된 채 가방에서 발견되었다.
마흐무드는 바나즈에게 눈물로 사죄했다. 아버지는 다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집으로 돌아오라고 딸에게 빌었다. 바나즈는 아버지를 믿고 집으로 돌아왔다. 2006년 1월22일, 라맛은 납치당할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관련 진술을 하기로 한 날 바나즈는 경찰서에 나타나지 않았다. 라맛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바나즈의 행방을 묻자 가족들은 그녀가 성인이므로 마음대로 다닐 자유가 있다고, 친구와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넉 달 뒤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썩어 여행용 가방 속에 처박힌 채였다. 속옷 한 장만 걸치고 있었고 목에는 전깃줄이 감겨 있었다. 겨우 스무 살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친척 세 명한테 살해당했다. 두 시간 동안 고문과 강간을 당했다. 범인 중 하나는 다른 친척들에게 자기들이 얼마나 남자답게 그녀를 처리했는지 자랑했다. 바나즈는 겁에 질린 나머지 토했으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에 전깃줄을 감았다.

ⓒMail Online 갈무리
아버지 마흐무드 마흐무드가 법정으로 호송되는 모습.
친척 수십명이 사건에 간접적으로 가담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해서 알리바이를 제공했고, 누군가는 시체 유기를 도왔다. 베칼과 라맛을 제외한 누구도 증인으로 나서지 않았다. 어머니나 다른 자매들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살인에 관여한 범인들은 모두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선고 당시 판사는 사건의 야만성을 개탄하면서 혈육의 생명보다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긴 이들을 꾸짖었다. 하지만 이들이 지키고자 한 것이 ‘명예’라는 점에 도무지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은 집안의 여자들을 마음대로 하는 데서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폭력을 사용해서 말이다. 그마저 제대로 못한다며 다른 남자들한테 비웃음을 산다고 두려워했다.

재판에서 증언한 후 바나즈의 연인 라맛과 바나즈의 언니 베칼은 경찰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신분을 바꾸고 숨어 살았다. 베칼은 외출할 때면 친척들의 눈을 피해 온몸을 가리는 전통 복장을 뒤집어쓰고 나갔다. 자유를 원한 대가였다. 라맛은 연인이 죽임을 당한 지 10년이 지난 2016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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