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가진 끼와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있고, 장점이든 단점이든 ‘포장’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김주혁은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처지에서 드러내기 싫을 부분도 김주혁은 태연하게 말하곤 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어떤 감정에 깊이 잠겨 있지 않아 기분 폭이 일정한, 잔잔한 호수 같은 사람이었다.

ⓒ이우일 그림
김주혁은 1998년 〈흐린 날에 쓴 편지〉로 데뷔해 이듬해인 1999년 〈카이스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주연을 맡게 됐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수록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눈치를 본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이를 무기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충분히 교감해야만 자기도 상대방도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믿는 쪽이었다. 돋보이려는 욕심으로 타인의 존재감을 죽이는 연기는 절대 안 한다는 지론이 있었다.

그런 덕분일까. 김주혁은 동료들에게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로 손꼽히곤 했다. 특히 여배우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연기할 때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지는 부분을 누구보다도 공감했고, 상대의 연기를 잘 받아주려 애썼다. 작품에 대한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감정적으로 소모가 큰 장면에서는 빨리 촬영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스태프들을 다독였다.

김주혁에게 ‘배려’는 몸에 밴 습관에 가까웠다. 영화 〈방자전〉(2010)에서 작품 자체보다 더 많이 회자됐던 수위 높은 베드신이 화제에 올랐을 때다. 방송에서 촬영 후일담을 부탁하자, 곧장 상대 배우 허락 없이 자기 혼자 이야기해도 괜찮은지 반문한 게 대표적이다. 여배우들에게 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장면이기에 그는 아무렇지 않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혹여 조금이라도 수치심을 느낄까 봐 ‘컷’ 소리가 나면 바로 이불을 덮어줬다. 그러면서 “그게 남자 배우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상대방이 감정을 잡을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주는 배우”(엄정화), “다른 배우와 했다면 어색하거나 쑥스러웠을 연기도 그와 함께여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연기하는 동안 우리는 실제 부부 같았다”(손예진), “연기에서 무척 일상적이면서도 편안한 매력이 돋보인다”(천우희) 등등. 그와 함께 호흡한 여배우들의 찬사는 과장이 아니다. 능청스러워 보이지만 깜짝 꽃 선물을 할 줄 아는 로맨틱함을 지닌 수헌(〈싱글즈〉 2003), 동네에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싶은 ‘만능 재주꾼’이면서도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는 두식(〈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2004),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다혈질이지만 밝고 똑똑한 대통령의 딸을 사랑하게 되며 갈등하는 상현(〈프라하의 연인〉 2005), 7년 순애보의 주인공과 입 맞출 절호의 기회가 와도 고작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밖에 건넬 수 없는 광식(〈광식이 동생 광태〉 2005) 등 김주혁이 연기한 캐릭터는 우리 곁을 지키는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었다.

촬영장으로 출근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던 ‘천생 배우’

40대가 되고 난 후, “철도 좀 들고 멋있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고백했던 김주혁은 ‘철저히 자신을 실험해보고 싶다’는 다짐을 실행에 옮겼다. 누가 봐도 이몽룡 이미지인 그는 ‘사연 있는 마초’를 자처하는 몸종 방자(〈방자전〉)로 분하더니, KBS2 〈1박2일〉에서는 허당미 넘치는 ‘구탱이 형’으로 예능의 신 스틸러로 활약했다.

대배우인 아버지(고 김무생)의 후광에 기대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제 힘으로 여기까지 왔음에도 그는 자신의 ‘연기’를 두고 시종일관 엄격하고 가혹했다. 여간해선 만족하지 않았고, 마음에 들더라도 취해 있는 법이 없었다. 촬영장으로 출근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던, 일흔 살이든 여든 살이든 연기를 할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던 ‘천생 배우’ 김주혁이 2017년 10월30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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