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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권력투쟁에 미사일로 베팅한 북한

2017년 11월 21일(화) 제531호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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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났다. 지난 4월 정상회담에 비해 시 주석의 태도가 느긋하고 당당해졌다. 중국공산당 제19차 당 대회 이후 권력 장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의 전력을 동원한 트럼프의 ‘함포 외교’도 ‘자금성’의 높은 담을 넘지는 못했다. 일본에서는 “최고의 압박(11월6일 미·일 정상회담)”, 한국에서는 “힘에 의한 평화(11월8일 한국 국회 연설)”를 강조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정작 중국에 가서는 “압박과 견제”라며 그 톤을 다운시켰다.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의 엄격하고도 전면적 이행”이라는 시진핑 주석의 절제된 약속에 만족해야 했다.

ⓒXinhua
11월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환영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중·일 아시아 순방을 통해 3국으로부터 대규모 통상이익을 거뒀다. 이번 순방에 맞춰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3척이 서태평양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항공모함 3척을 동원해 짧은 기간 최대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지난 4월8일 시진핑 주석을 처음 대면했을 때도 함포 외교가 동원됐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지금 이 순간 시리아를 향해 59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이 날아가고 있다’고 통보했다. 당시 시진핑 주석의 반응은 지금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만리장성처럼 끄떡도 하지 않았지만 그때는 흔들렸다.

4월 회담 때 미·중 정상 간에 ‘묵계’가 오갔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협력하지 않을 경우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대형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겠다고 했고, 시 주석은 북한이 다시 중대한 도발을 할 경우 중국 기업의 대북 송금과 석유 수출을 규제하는 등 “독자 제재를 검토하겠다”라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100일간 유예기간을 두자는 전제가 있었지만 북핵 문제가 불거진 지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측에서 ‘제재’라는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순방의 핵심이 중국 방문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에서 그가 제기할 핵심 의제는 결국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4월의 첫 정상회담 이래 북한은 화성 12호와 화성 14호 발사를 통해 미국 본토를 위협했고 지난 9월 수소폭탄 실험까지 감행했다. 100일 유예기간이 이미 지났다. 그러니 이번에 대북 원유 공급과 송금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최근 일부 언론은 여기에 중국 내 북한 노동자 추방까지 트럼프가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3대 대북 압박 조치’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중국의 독자 제재에 대해서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 주석이 지난 4월에는 왜 대북 제재 약속을 했고,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상황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시진핑 주석이 처한 위치가 달라졌다.

4월 정상회담 때는 시진핑이 쫓기는 처지


지난 4월 시 주석은 쫓기는 처지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난 10월24일 폐막한 중국공산당 19차 당 대회 얘기다. 시 주석은 당 대회 이전 치열한 권력투쟁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시 주석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시 주석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례적으로 이른 시기인 4월8일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 또 조건부 대북 독자 제재를 약속했다. 바로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대미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제스처였던 셈이다. 이번 당 대회 결과 시 주석은 권력 강화에 성공해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미국이 요구한다고 들어줄 이유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제 안심해도 될까?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원유 공급 중단을 시 주석이 동의하지 않았으니 한시름 놓아도 될까? 지난 19차 당 대회 직전 중국을 대하는 북한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은 19차 당 대회 하루 전날인 10월17일 축하 전문을 보냈고, 10월25일 시 주석의 총서기 재선을 축하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문도 발송했다. 지난 5월 초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북한이 격렬하게 비판한 이래 <조선중앙통신> 등에서 사라졌던 ‘습근평(시진핑)’이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북한이 보여왔던 ‘대중 적대시 태도’의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북한은 그동안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중국이 주최하는 중요 행사 때마다 ‘고춧가루’를 뿌려왔다. 하루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다음 날(9월6일) 동해를 향해 미사일 세 발을 쏘았다. 지난 5월14일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정상회담이 열릴 때는 화성 12호 미사일을 발사했고, 브라질·러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이 참석한 브릭스 정상회담이 열린 9월3일에는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모두 다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진핑 주석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국제회의라는 점이다. 즉 북한은 시 주석이 중요한 국제회의를 주최하는 날을 일부러 골라 ‘고춧가루’를 확 뿌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여온 것이다. 그런 북한이 19차 당 대회 이후 시진핑 주석의 승승장구를 축하하고 나선 것이다. 어떻게 봐야 할까?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 6월21일 워싱턴에서 미·중 전략안보대화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4월 북핵 위기 국면 이후 중국이 그동안의 협조 노선을 버리고 비협조적으로 돌아선 이유를 따졌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관여하는 중국 기업들과 이를 지원하는 10여 개 중국 은행과 무역회사를 특정하며 대처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아무런 협조도 얻을 수 없었다. 4월 정상회담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격분했고, 지난 6월27일 미국 국무부는 ‘2017년 인신매매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중국에 가장 낮은 ‘3등급’을 부여했다. 북한과 이란, 시리아, 수단, 콩고 등과 같은 등급으로, 2014년부터 2등급을 유지한 이후 3년 만에 다시 강등됐다. 이어 타이완에 대한 무기 판매 재개 및 단둥은행에 대한 금융제재를 단행했다.

당시 중국의 태도 변화 배경에 당과 군의 은퇴한 원로그룹의 저항이 있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시진핑 주석이 대미 협조 정책으로 치달아 대북 압박을 가하자, 6·25 참전 세대 등 북한과 혈맹의식을 가지고 있는 원로들이 들고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뒤 중국 권력 내부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북한이 7월4일 화성 14호 발사부터 9월3일 6차 핵실험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여러 정보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의 대미 협조 노선에 제동을 건 것은 은퇴한 원로그룹만이 아니라고 한다. 중국 권력의 핵심 내에서 시 주석의 발목을 강하게 잡는 그룹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장쩌민 전 주석 세력이 그 중심이었다. 이번 당 대회에서 ‘칠상팔하(七上八下·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라는 나이 제한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중국공산당 상무위원 7명 중 장더장·류윈산·장가오리(장고려) 등 세 사람이 장쩌민계였다. 이들은 시 주석이 북한 관련 결정을 할 때마다 북측의 얘기도 들어봐야 한다며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해왔다. 군부에는 선양(심양)군구가 버티고 있어 그 힘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장쩌민 전 주석과 쩡칭훙 전 국가부총리를 필두로 세 사람의 상무위원과 그들을 따르는 세력들 그리고 선양군구까지 가세한 세력이 시진핑 주석 세력과 대북 정책을 두고 충돌하며 권력투쟁을 벌였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 권력 지도에서 이른바 장쩌민계와 일체가 되거나 또는 도구가 되어 권력투쟁의 한 축을 외곽에서 담당한 셈이다. 시진핑 주석의 행적을 뒤쫓아 다니며 북한이 고춧가루를 뿌려온 이유다.

ⓒ중신망(中新网)
2014년 1월4일 중국 선양군구의 ‘붉은 군대’ 사단이 흰색 위장복을 입고 눈 덮인 산야를 행군하고 있다.

장쩌민 전 주석을 중심으로 한 이 세력을 보통 상하이방(상해방)이라고 한다. 출발은 지린방(길림방)이었다. 장쩌민은 1950년대 랴오닝성의 창춘제일기차제조창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정치적인 힘을 갖게 되자 옌볜대 조선어학과 출신으로 김일성대 경제학부에 유학했던 장더장을 내세워 지린방을 구축했다.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출신들을 대거 중앙정부로 끌어올린 것이다. 또한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당 총서기가 된 이래 당시 군부를 장악하고 있던 양상쿤·양바이빙(양상곤·양백빙) 형제를 몰아내고(양가장 사건) 그 자리에 선양군구 출신의 쉬차이허우(서재후)를 앉혔다. 쉬차이허우는 궈보슝(곽백웅)과 더불어 후진타오 시절에 이르기까지 중국 군부를 장악한 장쩌민의 대리인이었다.

ⓒEPA
10월18일 중국공산당 제19차 당 대회에 참석한 시진핑(왼쪽에서 두 번째) 국가주석, 장쩌민(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 국가주석.

문제는 이들과 북한의 관계다. 장쩌민 시대 북·중 관계는 긴밀히 유착돼 있었다. 장더장이야말로 김정일 위원장의 대리인으로 불릴 정도로 북한 이익을 대변했고, 저우융캉·류윈산·장가오리 등은 수시로 북한을 오가며 교류했다. 특히 이들 세력의 물리력이나 다름없는 선양군구는 북한 핵·미사일 개발의 실질적인 배후라는 설이 파다했다. 선양군구가 북한의 핵 개발에 관여한 이유 역시 중국 권력투쟁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선양군구는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제4야전군이 주축이다. 조선족 출신이 많다. 흔히 북·중 혈맹관계라 할 때 중국 쪽 혈맹의 주체가 바로 선양군구다. 이들은 또 장쩌민 세력과 결탁해 중국 권력의 한 축을 맡았다. 재래식 전력으로는 선양군구를 대적할 세력이 없다. 다만 핵무기를 관장하는 청두(성도)군구만이 그 위협이 된다. 그래서 이들이 북한에 핵물질과 장비를 뒤로 흘려주고 북한 기술자를 데려다 교육과 훈련을 담당해왔다는 것이다. 유사시는 북한의 핵이 곧 자신들의 핵이 될 수 있다고 여긴 셈이다. 국제 제재의 국면에서도 북한에 식량과 원유 공급이 이뤄졌고 북한이 단둥이나 다롄 등의 기업으로부터 생필품에서 무기구매까지 가능했던 것도 바로 선양군구 덕분이었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은 선양군구를 여덟 차례나 방문했고 선양군구의 고위층에게 희토류 광산 개발권을 제공하는 등 이권으로 보상해왔다. 2013년 2월12일 3차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가 험악해지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의 핵이 워싱턴만 겨냥하라는 법은 없다. 베이징도 겨냥할 수 있다”라고 발언했다. 그 얘기를 들은 시진핑 주석이 격노했다고 한다. 

2012년 제18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 주석은 첫 과제로 당과 군의 장쩌민 세력 척결에 나섰다. 측근인 왕치산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벌여온 반부패 투쟁, 즉 ‘호랑이 사냥’이 바로 그것이다. 맨 처음 저우융캉 정법위 서기가 보시라이 사건에 연루되어 철퇴를 맞았고, 선양군구 대부인 쉬차이허우가 궈보슝과 더불어 부패 혐의로 수감 중에 사망했다. 쉬차이허우 일파를 제거한 뒤인 2015년 말 선양군구를 베이징군구로 흡수하려다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적도 있다. 그 뒤로는 기존의 7대 군구를 동서남북중의 5대 전구로 개편을 시도했다. 선양군구를 겨냥한 것이었다. 각 군구에는 작전과 훈련 기능만 남기고 병력 동원과 명령은 중앙에서 틀어쥐는 체제로 재편했다. 선양군구는 베이징군구에 속해 있던 내몽골과 지난(제남)군구에 속했던 산둥 지역을 흡수해 북부전구로 확대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몽골은 장쩌민계 상무위원 류윈산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산둥은 장가오리의 영향권이었다. 즉 이번 19차 당 대회에서 이들이 은퇴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Xinhua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장쩌민 전 주석 세력과 밀접한 연관을 맺어왔다.

중국 내 북한 지지 세력의 기반 무너져 

결과적으로 장쩌민 세력은 지난 7월 후계자로 내세웠던 쑨정차이가 낙마하고 당 대회를 통해 최고 권력기관인 상무위원회가 시진핑 세력으로 재편되면서 사실상 몰락했다. 중국 권력 내 북한의 든든한 지지 세력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다만 선양군구인 북부전구에서 장쩌민계의 세력이 손을 뗀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이들이 관장해온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당장 감행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북 원유 공급에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다. 어떤 돌발 사태가 벌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또한 중국 권력 내 북한 지원 세력이 몰락했다 해도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즉 시 주석이 당장 김정은 체제의 붕괴를 시도할 가능성은 그리 높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북한이 중국 내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무력 도발을 벌이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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