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수사 대상자 잇단 극단 선택, 정치보복 수사의 비극(11월7일 〈조선일보〉)’ ‘정치적으로 ‘의뢰’ 받는 적폐 수사 방식은 문제 많다(11월8일 〈중앙일보〉)’ ‘너무 거친 檢(검) 적폐 수사, 또 다른 적폐 불씨 될 것(11월9일 〈동아일보〉)’.

11월6일 변창훈 검사의 투신 사망 이후 연일 쏟아지는 보수 언론의 사설 제목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하는 검찰 수사팀이 무리하게 보복·하명 수사를 해 불러온 죽음이라는 뜻이다. 동시에 검찰 내부 분위기를 “이러니 정권의 忠犬(충견) 소리 듣는 것(11월8일 〈조선일보〉)” “누군가는 책임져야(11월8일 〈동아일보〉)” 등의 기사로 전했다.

자유한국당은 바로 다음 날인 11월9일 윤석열 지검장을 콕 찍어 목소리를 높였다.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은 “윤 검사장은 깡패입니까, 검사입니까”라고까지 말했다. 동시에 최근 검찰 수사 전체를 공격했다. 검찰 수사 대상 전반이 ‘적폐 세력’이 아닌 ‘보복당하는 피해자’라는,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연합뉴스2013년 4월30일 국정원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직원들이 압수 물품을 차에 실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변 검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 이번 사건의 실체를 명확하게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 수사·재판 방해로 피해를 본 대상은 윤석열 개인이 아니라 국민 전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며 온라인 여론을 조작했고, 이를 통해 왜곡된 여론을 인식하게 된 유권자 다수가 피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국기 문란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데 방해를 한 혐의가 뒤늦게 드러나 수사를 개시했기에, 사적 복수라는 식으로 사안을 곡해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박근혜 국정원’에 파견된 검사들이 피의자로 전환된 이번 사건은 문재인 정부 들어 만들어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자체 조사해 검찰에 수사 의뢰했거나, 서울중앙지검이 먼저 인지해 수사한 건이 아니다. 배우 문성근·김여진씨의 합성사진을 유포했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국정원 직원 유 아무개씨는 자신의 윗선이었던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의 영장이 기각되자, 파견 검사들이 연루된 수사 방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검찰 수사팀으로서도 예상치 못한 자백이었다.

2013년 정치 개입 사건 수사에 직면한 국정원은 위기로 내몰렸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원세훈 유죄가 나오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무조건 무죄로 만들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시에 따라 수사와 재판에 대비한 현안 TF를 꾸렸다. 여기에는 서천호 당시 국정원 2차장을 비롯한 간부와 장호중·변창훈·이제영 검사도 포함되었다. 장 검사는 당시 국정원 감찰실장으로 재직 중이었고, 변·이 검사는 검찰 소속으로 국정원 파견 중이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300회 가까이 국정원 현안 TF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이들은 가짜 국정원 사무실을 만들어 당시 검찰 수사팀의 압수수색을 유도했고, 재판 증인으로 나가는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의 증언을 조작하도록 지침을 내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증거인멸 우려’ 검사들에 영장 발부

국정원 직원이 수사 방해 상황에 대한 자백을 하자,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제 식구’인 현직 검사 세 명을 포함해 연루자들 모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에서 내준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을 방해한, 사법 질서를 유린한 중대 범죄로 보았기 때문이다. 법원도 구속영장이 청구된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이제영 전 대전고검 검사 등 전원에게 영장을 발부했다.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라는 판단이 나왔다.

2013년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 수사와 재판 당시 정부 기관의 조직적 방해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사건이기에 수사는 시작부터 험난했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법률가로서의 양심”을 운운하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기소 자체를 막았다. 국정원 직원이 연루된 뒷조사로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옷을 벗었고, 윤석열 특별수사팀장과 박형철 부팀장은 좌천을 당했다. 법무부는 인사 발령으로 수사팀을 사실상 공중분해시켰다.

ⓒ연합뉴스수사 방해 의혹을 받는 장호중 부산지검장(왼쪽)과 방해 공작 주도 혐의를 받는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
김하영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수사를 은폐했다는 혐의를 받는 서울경찰청에서도 증거인멸이 벌어졌다. 박 아무개 경감은 검찰이 압수수색하기에 앞서 업무용 컴퓨터에서 관련 문건을 세 차례나 삭제했다. 영영 복구되지 못하게 해버려 관련 증거가 상당수 사라졌다는 혐의를 샀다. 박 경감은 2014년 1심에서 징역 9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그만큼 정권 차원의 조직적 방해가 있었다.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재판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공소 유지를 담당한 특별수사팀은 아예 대놓고 법정에서 국정원·경찰의 재판 방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증인들이 미리 말을 맞추고 나오거나 의도적으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원세훈 1심 재판 당시인 2014년 4월과 6월에 모두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던 국정원 직원 박 아무개씨가 대표적이다.

2014년 6월16일 재판 당시 박형철 특별수사팀 부팀장은 “박○○ 국정원 직원은 국내 파트에만 근무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수사팀이 증인으로 신청한 지난 4월 이후 해외 출국해 장기간 입국을 하지 않고 있다. 의도적으로 증언을 안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1심 재판장인 이범균 부장판사는 “어떤 필요에 의해 국정원 직원이 해외에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의혹 수준이었지만 이와 같은 증인 불출석 배후에는 국정원 현안 TF의 역할이 컸다는 점이 4년이 지나서야 드러났다. 이제영 검사 등이 박 아무개 직원의 해외 출장 및 법정 불출석에 적극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거인멸이나 증언 조작 지시는 그 자체로 무거운 범죄이다. 사전 구속영장의 주요 발부 사유에 ‘증거인멸의 우려’가 꼽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범죄를 수사하는 검사라면 누구보다 잘 아는 내용인데, 그 같은 일탈을 다름 아닌 검사가 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장 터져 나오는 검찰 내 볼멘소리가 “이러면 앞으로 누가 상부 지시를 따르느냐” 따위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의미라, 이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검사는 11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법한 지시에 복종 의무가 없고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라고 썼다(임 검사는 2012년 검찰 상부의 ‘윤길중 진보당 재심 사건’ 백지 구형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죄 구형을 한 바 있다). 현재 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은 모두 ‘(현안 TF) 회의는 참석했지만 한 일이 없다’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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