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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촛불 시대를 잘못 읽고 있다

2017년 11월 20일(월) 제531호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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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정당 의원 9명이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자유한국당은 이제 116석이 되어 121석인 더불어민주당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 이것으로 보수 세력이 복원된 것일까?

바른정당 의원 9명이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다. 김무성 의원 등 8명은 11월9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바른정당 대표권한대행인 주호영 원내대표만 11월13일 바른정당 전당대회까지 업무를 보고 탈당한다. 이로써 자유한국당은 116석으로 덩치를 키우게 된다.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121석과 불과 5석 차이여서,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원내 1당 탈환도 노려볼 수 있다. 20석이던 바른정당은 11석으로 쪼그라들면서 교섭단체 지위도 잃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분열했던 보수의 주도권 경쟁이 일단 자유한국당 우위로 정리되는 흐름이다.

바른정당은 지난 1월24일 의원 33명이 속한 원내 4당으로 공식 출범했다. 바른정당은 탄생부터 ‘동상이몽 정당’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보수 개혁이 불가능하니 신당을 만들어 보수 혁신을 해야 한다는 기류가 한 축이었다. 대선 주자였던 유승민 의원, 오랫동안 ‘남원정’으로 불렸던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정병국 의원 등이 이 노선을 대표했다.

하지만 실제로 집단 탈당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에너지는 따로 있었다.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거점이 될, 친박계 색채를 뺀 탄핵 찬성파 보수 신당이 필요했다. 반 전 총장을 불러들여 대선 경쟁력을 바탕으로 보수 진영을 주도하는 당으로 올라선다는 구상이었다. 이 경우 당시에는 새누리당 내에 남아 있던 20명 안팎의 ‘친반기문’ 그룹이 2차 탈당을 할 가능성도 유력했다. 이 ‘반기문 플랫폼’ 기획이 결정적인 집단 탈당의 에너지를 제공했다. 김무성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중심에 있었다.

두 기획은 모두 신통찮은 결과를 냈다. ‘반기문 플랫폼’ 기획은 반 전 총장이 출마 선언도 못하고 레이스에서 탈락하면서 허탈하게 실패로 돌아갔고, 바른정당이 보수 내부 경쟁의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어정쩡하게 연합되어 있던 두 기획의 봉합선을 따라 균열이 일어났다. 대선 직전에 의원 13명이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이번 2차 탈당에서 9명이 나왔다. 의원마다 사유가 다르지만, 크게 보면 ‘반기문 플랫폼’ 기획에 끌렸던 인사들이 더 쉽게 복당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조문하는 추모객.
ⓒ시사IN 조남진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사건 당사자의 오피스텔 앞 대치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가족과 만나는 모습.
ⓒ시사IN 신선영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모습.

이제 자유한국당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느껴진다. 이탈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재결집한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는 어려워도 선전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현재 자유한국당이 차지한 광역단체 6곳을 다음 지방선거에서 지키지 못하면 대표를 사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6곳은 수도권인 인천, 영남권인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이다(경남은 홍 대표 본인의 지사직 사퇴로 현재 공석이다).

현실은 간단치 않다. 근본적으로 새누리당 분당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았다. 새누리당 분당의 원인은 ‘정권 재창출 불가 판정’과 ‘보수의 정치적 파산’이었다. 전자에 대한 반응이 ‘반기문 플랫폼’이었다면, 후자에 대한 반응이 ‘보수 혁신 경쟁’이었다. 이제 전자는 지나간 문제가 되었고, ‘반기문 플랫폼’에 베팅했다 실패한 의원들은 모양새 나쁘게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보수가 정치적 파산 선고를 받았다는 현실까지 지나간 문제가 되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제명에도 여론은 싸늘


이 질문을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못 들은 척’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11월3일 박근혜 전 대통령 당적 제명을 대표 직권으로 의결했다. 여론 반응은 신통치 않다. 11월10일 나온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2%다. 지난주 9%보다 3%포인트 올랐지만, 보수 지지층의 복원과는 거리가 멀다. 한때 지지율 40%를 넘나들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평까지 들었던 보수의 전성기와는 비교하기도 어렵다.

왜 그럴까. 문제의 본질이 박 전 대통령 개인의 잘못만으로 가려질 성질이 아니라서다. 이회창 대선 후보 캠프에서 정치를 시작해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청와대와 정당을 넘나들며 일했고, 지금은 컨설턴트로 있는 한 보수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2020년 총선까지도 이길 생각은 하지 말라고 보수 쪽 지인들에게 말하고 다닌다. 유권자가 보수에 분노하는 정도가 결코 단발성이 아니다. 상황이 가볍지 않다.” 그는 보수 집권 9년 동안 벌어진 사건들 중에서도 세 가지를 지목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그렇게 돌아가시고, 세월호 참사가 나고, 박근혜 국정 농단이 터지고…. 지금 사람들 마음속에 이게 다 연결되어 있다. 나라를 맡겨놨더니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느냐고 한 묶음으로 생각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게 나라냐’는 구호는 탄핵 사태를 불러온 국정 농단 하나만 보고 나온 외침이 아니었다. 짧게는 박근혜 4년, 길게는 이명박·박근혜 9년에 대한 ‘종합평가’의 성격도 있었다. 단순한 무능이나 부패의 문제를 뛰어넘어, 한국의 보수 세력이 국가 운영을 맡기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게 선거 한두 번에 바뀔 리가 있겠느냐고.” 컨설턴트는 한숨과 함께 덧붙였다.

‘중대한 하자’란 무엇일까. 두 차례 보수 정부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앞서 거론된 셋 말고도 두 장면을 더 꼽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12년 대선에서 펼친 국정원과 군을 동원한 정치 개입 사건,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2015년에 감행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다. 이 다섯 장면은 보수가 정치적·사회적 반대파를 대화 대상이 아니라 ‘적’으로 간주하고, ‘적’을 물리치기 위해 국가권력을 초법적·불법적으로 동원한 대표 사례다.

몇 걸음 더 뒷걸음질을 쳤다면, 한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위치까지 밀려날 수도 있었다.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신간 <정치의 공간>에서 이렇게 쓴다. “냉전과 분단 조건하에서 보수는 민주주의 원리와 제도, 사회 통합의 문제를 소홀히 하더라도 정치적 헤게모니는 쥘 수 있었다. (…)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잘 보여주듯 한국 보수는 민주주의의 역전도 불사할 만큼 권위주의적 권력 행사를 서슴지 않았다. 억압적·이데올로기적 정부기관의 대선 개입, 언론 통제, 반대 세력에 대한 사찰과 정치적 배제, 이데올로기적 검열 등은 권위주의적 통치의 전형적 특징이다.” 보수 집권기 9년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권위주의로의 퇴행’이었고, 2016년 촛불집회는 주권자들이 퇴행을 결정적으로 막아낸 장면이었다.

그러므로 보수가 요구받고 있는 혁신이란 특정인(박근혜) 제명이나 당사 이전 따위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권위주의로의 퇴행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필요하고, 헌정체제와 법치주의 원칙과 민주적 다원주의 원리를 훼손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퇴행을 막아낸 주권자들의 마음에 다시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바른정당 기획의 한 축인 보수 혁신이란 이것이 성공할 때 의미가 있다.

바른정당은 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종북몰이 보수’를 청산 대상으로 규정하는 등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7월 이혜훈 바른정당 당시 대표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매카시즘을 반대한다. ‘문재인이 집권하면 김정은이 집권하는 거다’ 식의 종북몰이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종북몰이는 한국 보수가 상대를 대화 대상이 아닌 ‘적’으로 낙인찍을 때 즐겨 사용해온 논법으로, 근본적으로 다원주의 원리와 불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청산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한국 보수의 뿌리 깊은 반(反)다원적 전통과 단절하려는 중요한 시도였다.

ⓒ시사IN 신선영
11월9일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에 복당한 의원들이 홍준표 대표(가운데)와 만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런 의미 있는 시도가 자리를 잡기 전에 자유한국당의 중력에 당이 반토막 났다. 보수의 주도권을 잡은 자유한국당 내에서 제대로 된 혁신 논의가 분출하는 기색은 아직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제명으로 쇄신이 완수된 양 넘어가는 정도만으로도 친박계의 적지 않은 저항을 겪어야 했다. 정부를 맡겨도 좋을 세력으로 유권자들이 보수를 다시 봐줄 근거는 사실상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지독한 관성이다. ‘좋은 시절’을 오래 누려온 보수는, 자신들이 헌정체제와 법치주의 원칙과 민주적 다원주의 원리에 충실하다고 입증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진보·보수 양당 구도만 복원하면, 유권자 지형도 예전만은 못해도 얼추 생존은 가능한 수준으로 복원되리라 기대한다. 그러던 와중에 집권 민주당 정부가 민심을 잃으면 다시 기회가 굴러들어와 주리라고 기대한다. 현 상황을 타개하려 내놓은 해법이 보수 ‘혁신’이 아니라 ‘단일대오 형성’이라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지금 보수가 내놓는 해법은 양당 구도 복원이다. 2016년 촛불집회를 ‘단발성 이벤트’로 볼 때나 나오는 결론이다.

‘합리적 보수’에 구애하는 안철수 대표

자유한국당이 원하는 보수 지지층 복원이 보수 혁신을 수반하지 않는 이상, 거대한 유권자 블록이 대안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 뜨게 된다. 시장 자유를 선호하고 지나친 국가 개입에 반감을 갖고 있으며 대북 강경책을 지지하는 유권자층은 한국에 제법 두껍다. 이 유권자가 문재인 정부의 모든 정책을 지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유권자 중에서도 헌정체제와 법치주의 원칙과 민주적 다원주의 원리를 훼손하는 정치세력은 아예 후보로 고려조차 하지 않는 성향이 있을 수 있다. 이 ‘헌정을 존중하는 보수주의자’들은 현재 마음을 둘 정당이 사실상 없다.

보수 유권자가 공중에 뜨면서 국민의당의 노선 투쟁도 불붙고 있다. 안철수 대표와 친안계가 노리는 포지션이 여기다. 친안계로 분류되는 한 수도권 의원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보수 유권자들이 지금 지지할 정당이 없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대표 보수 정당으로 돌아오면서 친박계도 은근슬쩍 함께 오는데, 이들을 극우로 주변화하는 게 국민의당의 사명이자 살길이라고 본다.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면 바른정당이 비교섭단체가 되었다고 통합 논의가 사라질 이유는 없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국민·바른 통합 기획’은 국민의당 내에서 큰 파열음을 내고 있다. 박지원·유성엽 의원 등 호남 계열 인사들은 친안계가 그리는 그림이 무리수인 데다 사리에도 맞지 않다며 연일 안 대표를 성토하고 있다.

보수의 혁신과 재구성은 박근혜 제명과 기존 보수 세력 통합 정도로는 완수할 수 없는 과제다. 위기의 본질은 한국 보수가 손쉽게 헤게모니를 유지하던 기존의 전선이 해체되고, 오히려 다수 유권자가 보수를 헌정체제와 다원적 민주주의 ‘밖’에 있는 그 무엇으로 의심한다는 데 있다. 최장집 명예교수는 이를 압축해 표현했다. “좋은 시절은 끝났다. 보수는 존립하기 위해서라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실이 아직까지는 자유한국당 내에서 충분히 인식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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