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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불

2017년 11월 24일(금) 제531호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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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원래 불을 다스리는 동시에 불에 홀리는 존재였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밥 짓기는 까먹고 불을 바라보며 부지깽이로 바닥에 이상한 말을 끼적이는 노동자였다.

노르웨이에서 대박이 난 리얼리티 쇼가 있다. 연예인들이 나와 요리를 하거나 사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출연자는 일반인이다. 그들은 우승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경연을 벌이지도 않는다. 그저 장작을 패서 모닥불을 지피는 게 전부다. 프로그램은 그들이 그러한 일들을 평소와 다름없이 수행하는 장면을 편집 없이 장시간 방영한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 이유는 무엇일까? 바쁜 일과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멈춤과 치유의 시간을 제공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출연자들이 장작을 쌓을 때 평평한 면을 아래로 해서 포개면, 방송국으로 전화가 폭주한다. 그들은 말한다. “안 돼! 장작은 평평한 면을 위쪽으로 해서 포개야 해!”

모닥불 프로그램을 보던 한 시청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프로그램 때문에 화장실을 못 가요!” 왜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장작에 언제 불을 붙일지 모르니까요!” 시청자들은 겉으로는 느리고 단순해 보이는 상황에서 숨어 있는 역동성을 발견한다.

역동성을 빠름과 변화에 결부시키는 관습은 현대 문화가 만든 신화이다. 인류의 조상, 수렵·채집인은 동굴에 사는 게 지겹고 지루해서 동굴 벽화를 그린 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매일 겪는 삶의 드라마를 기록하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냥할 때의 공포와 흥분을 가슴에 담아둘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비록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니 그들에게는 반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 불을 발견했을 때의 공포와 흥분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들은 불을 지피고 유지하는 방법을 지난한 노력과 학습을 통해 터득했을 것이다. 불꽃을 들여다볼 때는, 그 색깔과 열기와 움직임에 한없이 매혹됐을 것이다. 내게 모닥불의 세계를 소개해준 친구는 말했다. “우리의 유전자 속엔 불이 있어요.” 나는 넋이 나가 시선을 불꽃에 고정시킨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우리는 모닥불과 같은 ‘정중동’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는 느린 움직임과 흐름에 마음을 ‘역동적’으로 조율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마치 처음으로 명상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아, 지루해 미치겠어. 딴생각이나 하면서 끝나기를 기다리자’는 식으로 마지못해 그 시간을 견딘다. 인간이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루틴’에는 한 사람을 성인으로 만드는 학습 과정뿐만 아니라 인류의 진보와 뇌신경의 진화가 압축돼 있다. 그래서 명민한 작가들은 사소한 행동을 분석하여 그 안에 숨어 있는 우주를 밝혀낸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좋은 차 마시는 열한 가지 방법’에 대한 에세이를 썼고, 만화가 데이비드 리스는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을 썼다.

“자기 안에 숨은 불씨를 살리세요”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는 어떤 특별함도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경험은 이벤트 상품으로 구입하거나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게 아니라면 작심하고 미리 계획해야 한다. 특별한 장소와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일하는 주중에는 안 되고, 주말에, 심지어 은퇴 후에 말이다. 우리는 특별함을 꿈꾸지만 그 꿈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자아실현이라는 말은 하나의 기획이나 프로그램이 돼버렸다. 자원봉사를 하거나 전시회에 가거나 동호회 활동을 해야 우리는 잃어버린 꿈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 “자기 안에 숨은 불씨를 살리세요!” 이 말은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발견하는 식상한 슬로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불을 다스리는 동시에 불에 홀리는 존재였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밥 짓기는 까먹고 불을 바라보며 부지깽이로 바닥에 이상한 말을 끼적이는 노동자였다. 수업 시간에 지루해지면 작은 불꽃을 수놓듯 교과서 페이지 위에 추상화와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예술가였다. 노을을 바라볼 때는 눈을 뜨고도 램수면에 빠진 것처럼 눈동자가 바삐 움직이는 몽상가였다.

물론 아직도 그렇다. 우리 유전자 안에는 불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를 까먹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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