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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게 맛을 알아?”가 시가 되는 순간

2017년 11월 24일(금) 제531호
이숙이 기자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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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윤무영
‘수사반장’ ‘양촌리 회장’ 등으로 국민 배우 반열에 오른 연기자 최불암은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다. 그날도 지인 몇이 술잔을 기울이던 참인데, 화장실을 다녀오던 그가 갑자기 몸을 구부려 댓돌 위에 어지럽게 놓인 신발을 정리했다. 왜 그러는지 물어보니 “시간을 함께하는 이에 대한 예의 같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 명동에서 ‘은성’이란 술집을 운영하던 어머니 덕에 어려서부터 시인들을 많이 만난 최불암은 촬영이 없는 날이면 시집을 읽을 정도로 시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70대의 나이에도 휴대전화로 이런 문자들을 날려서 ‘진짜’ 시인들을 각성케 했다. “세월은 그리움을 만들긴 하지만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군요.” 시인이자 일간지 문화부장을 맡고 있는 장재선 시인(51)은 자신이 경험한 이런 에피소드들을 시로 썼다.

2002년 한 광고를 통해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카피를 유행시킨 배우 신구. 그는 경기고를 나와 서울 상대 시험을 치렀다 낙방해 성균관대에 들어갔는데, 군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요즘도 신문을 매일 네다섯 시간씩 볼 정도로 세상에 관심이 많은 그는 근엄한 배역을 많이 맡아서인지 늘 진지해 보였다. 그런 그가 광고 히트 후 철딱서니 없는 노인 역할도 여럿 맡아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는데, 그는 이를 두고 장 시인에게 “내 벽이 허물어진 것 같다.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장 시인은 이 얘기도 시에 담았다. “(…) 젊은이들이 진지충이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지만/ 난 그래도 한마디 할 자격은 되지/ 니들이 인생을 알아?”라고.

이처럼 장 시인은 취재를 하거나 문화계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배우·가수·영화감독 등에 대한 얘기를 틈날 때마다 시로 썼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황정순·최은희·임권택·신구·패티김·김지미부터 해방둥이인 조영남·이장호를 거쳐 조용필·안성기·송강호·차인표·엄정화·김윤진·하지원·수애·전지현·손예진·김옥빈과 아이돌 가수 윤두준·소녀시대 등이 그가 쓴 시의 주인공들이다. 젊은 세대는 이름도 낯설 원로부터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이돌까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중문화 스타들이 시의 주인공으로 총출동하는 셈이다. 장 시인은 이렇게 쓴 시 가운데 40편을 묶어 최근 <시로 만난 별들>이라는 책을 냈다. 스타 33명의 인생 스토리와 장 시인이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장면들은 프로필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붙였다. 팩트와 취재 후기가 담긴 듯한 독특한 형식의 시와 에세이를 읽다 보면 멀게만, 또는 화려하게만 느껴지던 대중문화 스타들의 희로애락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장 시인은 “대중문화 스타를 순수문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조심스러웠다. 이 또한 양쪽에 대한 관심과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세상에 내놓게 됐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기자라는 저자의 별난 이력에다, 한국문인협회 문학생활화위원장이라는 감투도 이 책의 탄생에 추동력이 됐을 법하다. 시 읽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시대에 대중문화 스타와 시의 콜라보는 그 자체로 눈길을 끈다. 10월26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는 최불암씨가 시를 읽고 영화감독 이장호씨가 색소폰을 연주하고 가수 최성수씨가 노래를 부르는 북 콘서트가 열렸다. 동인문학상과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한 한 작가는 이 자리에 참석한 뒤 자신의 블로그에 “내가 살아온 문단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낯선 분위기지만 기분은 고조되고 흥이 났다. 동생들과 처제들에게 주려고 책을 서너 권 사가지고 돌아왔다”라고 썼다. 11월7일 장 시인은 이 책으로 제3회 서정주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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