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일어났다. 지난해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에 이어 두 번째 강진이다. 이 지역에는 원자력발전소(원전)가 몰려 있다(왼쪽 표 참조). 현재 운영하는 전국 원전 24기(정비 중 포함) 가운데 18기(75%)가 영남 해변가에 집중되어 있다. 잦아진 지진에 따라 원전 안전에 대한 불안감도 커진다.

보수 언론과 정당은 이를 ‘괴담’으로 취급한다. 자유한국당은 포항 지진 발생 바로 다음 날인 11월16일 원전특별위원회 명의로 ‘포항 지진을 통해 대한민국 원전의 안전성은 다시 입증됐다’라는 논평을 냈다. 〈조선일보〉는 11월17일 사설에서 ‘포항 지진을 빌미로 다시 탈원전 주장들이 나온다.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해 비합리적 주장을 펴는 것이 광우병 사태 때와 같다’라고 썼다.

과연 그럴까? 원전 사고 대응과 안전 분야를 전공한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 13년 동안 근무했다. 이력만 보면 ‘원전 마피아’로 분류된다. 하지만 현장 경험이 있는 연구자인 박 교수는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다. ‘원전 마피아 그룹’에서는 드문 목소리다. 그는 현재 한국의 원전이 위험한 이유를 튼튼하지(내진) 않아서가 아니라 좁은 지역에 많이 모여 있어서(밀집)라고 지적했다.



ⓒ박종운 교수 제공박종운 동국대 교수는 “한국은 원전이 좁은 지역에 모여 있다. 그러면 원전을 관리하는 사업자에게나 좋다”라고 말한다.
규모 5.4 지진이라는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원전 안전성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먼저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원전 안전성이 입증됐다’라는 논평은 말도 안 된다. 원전 바로 밑에 규모 5.4의 지진이 온 게 아니다.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도 원전과의 거리나 지반의 특성에 따라 원전이 받는 충격은 다르다. ‘입증’이라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비전문가들이 원전 안전성을 정쟁 소재로 삼고 있다. 현재 국내 원전 24기 중 21기가 규모 7.0 지진까지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건 맞다. 지반 가속도에 따라 원전 가동이 수동 혹은 자동 정지된다. 하지만 정지되기에 괜찮다는 주장은 원전 위험의 일부분만 말하는 것이다. 2011년 동일본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도 원전은 멈췄다. 문제는 전기였다. 원자로의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를 공급해줘야 하는데, 송전로가 무너지면서 전기가 끊겼다.  그러자 원자로가 녹아내리면서 수소가 발생하여 외부로 누출되어 폭발하였다. 원전 정지는 사고를 막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원전 정지 후 정전 사태를 대비하면 되지 않나?

후쿠시마 사고 때도 비상 발전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물에 잠겨서 못 돌렸다. 지진에 이어진 쓰나미(지진해일) 때문이다. 지진이 나고 연이어 다른 자연재해가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있을까? 당시 지진 충격으로 송전선로가 먼저 무너졌고 전기 공급이 안 되면서 원전 안전 문제가 시작됐다. 한국도 지진이 나면 전기가 차단될 가능성이 높다. 송전로의 내진 설계가 원전만큼 잘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지적은 안 하고 원전의 ‘내진 설계가 잘 되어 있다’ ‘외벽도 두껍고 튼튼하다’라고 강조하고 심지어 ‘지진 나면 오히려 원전으로 피신 가야 한다’라는 주장까지 하는 건 진짜 위험을 못 보게 하는 말 돌리기에 불과하다. 자연재해는 아무리 완벽히 대비하려고 해도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 있기에,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한국은 원전이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이 모여 있다.

현재 부산과 울산은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으로 꼽힌다.

정확히 말하면, 원전 하나가 망가지면 옆에 있는 원전을 망가뜨리고 또 그 옆의 원전을 망가뜨리는 식으로 사고가 전파되는 건 아니다. 하나하나가 튼튼한 건 맞다. 하지만 원전이 같은 지역에 모여 있으면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도 1·2·3호기가 모두 같은 원인으로 고장이 났다. 게다가 한국은 원전이 집중된 지역에 사람이 많이 산다. 고리 원전은 부산이고, 신고리 원전은 울산이어서 다른 지역이라고 주장하는 건 말장난이다. 사실상 바로 옆 부지 아닌가. 30㎞ 내에 400만명 가까이 산다. 그만큼 사고가 나면 방사능 누출 피해를 더 많은 사람이 겪을 위험이 있다.

얼마나 위험한가?

10개 원전이 몰리면 1개에 비해 위험도가 19.4배 높아진다. 사고는 언제든 날 수 있다.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자체 고장이나 관리 부실 등의 전례가 있다. 그렇기에 원전이 모여 있으면 위험성이 커진다는 사실은 굳이 과학이나 기술 개념으로 설명 안 해도 알 수 있지 않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한곳에 모아 짓지 않고, 인구 밀집 지역에 많이 안 짓는 것이 중요하다. 원전이 한 부지에 모여 있어도 안전성 평가를 잘 받았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원전 사고는 일단 나면 매우 큰 문제다. 또 현재 원전 인근 지역에 사는 이들이 어떻게 대피할지, 방사능은 피할 수 있을지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왜 이렇게 한 지역에 원전이 모여 있나?

부지 마련하기가 쉽지 않으니, 한번 들어간 지역에 자꾸 짓는다. 과연 지금 원전 있는 곳이 수도권이었어도 그렇게 쉽게 됐을까? 미국은 사람이 없는 사막에다 원전을 건설하면서도 한국처럼 6기씩 몰아서 세우지 않는다. 계속해서 같은 지역에만 만드는 건 사업자에게나 좋다. 관리하기가 편하니까. 원전이 들어선 해당 지역 주민에겐 전기요금 등의 혜택이나마 있지만,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에게는 좋은 점이 없다.

원전 학계에서 원전 안전성 문제 제기는 드문 일이다.

나는 친핵도 아니고 반핵도 아니다. 잘못된 것을 말하는 거다. 원전 안전성 문제를 감추는 행태를 전문가로서 지적할 뿐인데 나를 반핵으로 몰아세운다. 다들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솔직하게 말을 못한다. 연구 용역을 주로 원전 업계에서 준다. 나는 그런 연구를 거의 하지 않아 빚진 게 없다. 2009년에 동국대로 오면서 한수원에 있을 때보다 좀 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계기가 있었나?

2013년 월성 1호기 안전성 평가에 참여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상황을 가정하고 시험해보는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상당 부분 미흡해 많은 지적을 했다. 그런데도 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발맞춰 최신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전문가들의 문제점을 목격했다. 그래서 원전 안전성에 대한 목소리를 더 크게 냈다. 올해는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을 취소하라는 행정법원의 1심 선고가 있었다. 여기 원고(탈핵 시민단체 등) 쪽 증인으로도 나갔다. 당시 결정의 근거가 원안위 문건이었는데, 해당 문건의 평가가 잘못된 게 보였다. 그래서 기술적인 부분을 솔직하게 설명했는데, 그게 선고 결과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걸 가지고 나를 탈핵이라고 보면 어쩔 수 없지만, 내 기본 문제의식은 원전 안전 문제를 감추지 말고 정확히 이야기하자는 거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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