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한경식씨(55)에게는 아홉 살 많은 형이 있다. 열여섯 살 소년 시절에 한씨는 형이 모아놓은 1960년대 〈뉴스위크〉에서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비틀스의 사진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알아봐야겠다.’ 운명적인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소년은 대기업의 엔지니어가 되었다. 열여섯 살에 처음 접한 비틀스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비틀스의 노래를 듣고, 신문·잡지에 실린 관련 기사를 모아나갔다. 그러던 1995년, ‘비틀스 앤솔로지 프로젝트’를 접했다. 비틀스의 모든 곡을 정리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때였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전곡 해설집을 쓰리라. 일본, 미국, 영국 등에서 나온 외국 서적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며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썼다. 만 39세였던 2001년, 자신과 한 약속을 지켰다. 800여 쪽짜리 비틀스 전곡 해설집을 펴냈다.

첫 책을 낸 후 개운치 않았다. 뭔가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비틀스의 ‘틸 데어 워즈 유(Till There Was You)’는 페기 리의 영향을 받아 폴 매카트니가 불렀는데, 한씨는 페기 리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개정판을 떠올렸다. 비틀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뮤지션들의 음악을 찾아 듣고, 외국 서적을 수집했다. 2015년 5월 폴 매카트니의 내한 공연은 결정적 계기였다. 한씨는 “몇십 년 동안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공연을 본 이후 개정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120여 종의 서적을 참고해 글을 쓰고, 오류를 잡아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실에는 그 근거를 다 수록해 독자가 비교해보도록 했다. 첫 책을 낸 지 16년 만인 지난 9월 말에 개정판 〈Across The Universe:비틀스 전곡 해설집〉을 펴냈다. 비틀스의 노래 282곡에 대해 가사, 악기 편성, 레코딩 일자, 노래가 나오게 된 배경, 당시 비틀스의 활동, 멤버들의 개인사 등 해설을 1112쪽에 담았다. 책을 들여다보면 가수 장기하씨가 “중요한 것은 이 방대한 양의 글을 무려 한국인이! 한글로! 집필했다는 점이다”라고 쓴 추천사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경식씨는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번역가로 일한다. 지금 번역 중인 책도 비틀스 관련 책이다. 비틀스의 음악을 들으며 번역을 하고,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 비틀스 관련 신간을 주문한다. 또 다른 비틀스 관련 책도 준비 중이다. 비틀스가 한국에 가장 가까이 온 게 1966년에 열린 일본 공연. 비틀스의 방문이 일본에 미친 영향을 써보려고 한다. 40년 가까이 여전히 왜 비틀스일까? 그의 대답으로 충분했다. “비틀스를 들으면 행복해진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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