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9일 제주도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3학년 이민호군(18)이 숨졌다. 현장실습을 하던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의 음료 제조업체 ㅈ공장에서 압착기에 눌려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간 지 열흘 만이었다. 지난해 5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특성화고 졸업생이 사망한 데 이어 올해 1월 통신사 고객센터 해지방어 부서에서 일하던 전북 전주의 특성화고 학생이 자살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연이은 특성화고 학생·졸업생 죽음의 배경에 현장실습 제도가 있다.

11월9일 사고 당시 CCTV 영상을 보면, 오후 2시께 생수병을 포장하는 라인에서 혼자 작업을 하던 이군은 압축포장 기기가 작동하지 않자 이를 확인하러 기계에 들어갔다가 나오려는 순간 다시 작동되는 걸 보지 못한 채 압착기에 몸 일부가 눌렸다. 5분가량 방치되었고 다른 현장실습생이 그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ㅈ업체가 작성한 산업재해 신청서를 보면 재해 원인에 ‘고인이 적재기를 운영하여 완제품 적재업무 수행 중 갑자기 운전조작반의 정지 스위치를 작동하지 않고 설비 내부로 이동하여 설비 조치 과정에서 상하 작동 설비에 목이 끼이는 협착 사고가 발생함’이라고 적혀 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제공11월23일은 이민호군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이군은 생일을 나흘 앞두고 사망했다.
유족들은 업체가 고인의 과실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11월24일 현재 가족들은 업체의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진상조사를 주장하며 이군의 발인을 미루고 있다. 아버지 이 아무개씨는 “사고 후 15일이 지났지만 업체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사고 당일에도 병원 응급실에 넣어놓고 우리가 도착하자 (병원) 영수증을 보내주면 결제하겠다고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군이 기숙사형 특성화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할 당시 아버지는 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은 상황이었고 어머니도 허리디스크로 고생 중이었다. 진로를 묻는 부모에게 이군은 “걱정 말라”고 말했다. 기숙사비를 포함한 학비가 모두 무료인 특성화고에 진학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군과 한 살 터울인 형도 같은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닌다. 이군의 전공은 자연생명과였지만 지게차 운전 자격증이 있어서 사고를 당한 ㅈ업체에 지원했다. 7월25일부터 일한 이군은 야근수당 등을 포함해 매달 약 25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100만원씩 적금을 들고 100만원은 부모에게 건넸다.

이군의 사망 사건을 자체 조사한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지게차 업무를 맡아 현장실습을 하던 중 공장의 포장 완성 단계 담당자에게 생산라인의 기계 고장 시 조치하는 법을 배웠다. 약 5일간 교육을 받은 후 담당자는 퇴사했고 이군 혼자 관련 기기의 관리를 맡았다.

11월9일 사고 전에도 이군은 두 차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에 따르면 사망 사고까지 세 번 다 이군이 담당한 생산라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첫 번째 사고로 휴대전화 액정이 깨졌고, 두 번째 사고에서는 기계를 고치다 떨어져 갈비뼈를 다쳤다. 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회사 직원은 그에게 기계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물었다. 병원에서는 1주일간 입원 치료를 권했지만 이군은 다 낫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에 복귀했다. 그가 계속 병원에 있으면 기기 고장 시 고칠 사람이 없어서 생산라인이 멈춰야 할 상황이었다.

이군은 평소에도 가족들에게 설비 고장이 잦다고 말해왔다. 아버지 이씨는 “기계가 자꾸 고장 나 잔업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생수) 발주량을 맞춰야 되니까 밤 10시30분까지 일했다고 해서 밥은 먹었냐고 물으면 라면 먹었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씨가 직접 공장에 전화해 사람을 더 붙여달라고 한 적도 있지만 추가 인력은 며칠 지원되다 중단됐다(지난해 12월 기준 이 업체 전체 직원은 37명이다).

ⓒ시사IN 이명익11월2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제주 실습생 사망 관련 브리핑이 열린 가운데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이상현 추진위원장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이군의 물음 “또 야근합니까”

현장실습생 이군은 장시간 노동에도 시달렸다. 학교와 사업체 간 작성한 현장실습표준협약서(표준협약서)에 따르면 현장실습생의 노동시간은 1일 7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실습생 동의하에 노동시간을 연장하더라도 1일 1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주 2회 이상 휴일을 주어야 하지만 이군의 근무일지를 살펴보면 현실은 달랐다. 평일에는 오전 8시30분부터 11~12시간 이상 근무를 했고, 토요일에도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일했다. 이군과 ㅈ업체 관계자들이 주고받았던 카카오톡에도 회사의 연장근무 지시에 '또 야근합니까'라는 동료의 물음이 남겨져 있다.

업체는 표준협약서 이외에 이군과 근로계약서를 따로 작성하기도 했다. 근로계약서에서 근무시간과 관련된 부분을 보면 ‘시업(시작) 시간은 오전 9시이며 종업 시간은 18시로 하되 업무 형편에 따라 회사 계약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연장 근로할 수 있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 밖에도 업체와 이군 간의 근로계약서에는 계약 당사자의 급여를 회사 내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거나 타인의 급여를 알려고 하는 경우 징계 조치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이군의 죽음은 현장실습 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취업률 제고를 위한 조기 취업을 비롯해 전공과 무관한 현장실습 업무, 안전 관리에 소홀한 실습 업체와 관리 감독에 무심한 교육 당국의 모습이 종합적으로 얽혀 있다. 특히 이씨를 고용한 업체는 잦은 기계 고장과 앞선 두 차례 사고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방치했다. 보통 기계의 협착 사고 시 울리는 경고음도 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기를 실습생 한 명에게 전담시킨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도 남는다. 장시간 노동 역시 표준협약서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 위반 정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군의 고등학교 역시 지도 감독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비켜갈 수 없다. 학교는 이군이 실습을 시작한 이래 네 차례 업체를 방문했다고 알려졌지만 앞선 두 번의 사고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제주도 교육청 관계자는 “두 번째 사고 발생 후 이군이 학교에 부상 사실을 알렸고 학교에서는 퇴사를 권유했지만 이군이 계속 다니기를 희망했던 걸로 파악된다”라고 말했다. 해당 업체에는 이군과 같은 학교 학생이 다섯 명 더 있었다.  

문제는 이군과 그가 다니던 업체가 결코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8월 교육부는 현장실습을 근로 중심에서 학습 중심으로 바꾸고 기간 역시 1개월 내외로 줄이는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개선 방안은 아예 폐지하자는 쪽과 6개월은 보장해야 변별력이 있다는 쪽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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