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창간한 스페인 디지털 미디어 〈엘콘피덴시알(El Confidencial)〉의 사정은 다르다. 창간 이래 지금까지 적자 한번 없이 매해 확장해왔다. 출발선은 한국 디지털 미디어와 같았다. 하지만 지난 16년간 한국 디지털 미디어가 포털의 그늘 아래 갇혀 뚜렷한 존재감을 남기기 어려워진 반면, 〈엘콘피덴시알〉은 기존 전통 미디어를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급성장했다.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가 펴낸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에 따르면, 스페인 독자의 16%가 주 1회 이상 〈엘콘피덴시알〉 사이트를 방문한다고 응답했다. 스페인 전체 뉴스 사이트 중 5위, 〈아베세(ABC)〉나 〈라방과르디아〉 같은 주요 일간지 홈페이지보다 더 높은 수치다. 지면이 없는 순수 디지털 미디어로는 순위권 내에서 유일하다.
지난해 순이익은 300만 유로(약 39억원), 기자 총 100여 명, 디지털 전문 인력 40여 명. 지난 10월11일 방문한 〈엘콘피덴시알〉의 지표다. 1250㎡의 편집국 공간에는 각종 인포그래픽, 데이터 시트가 벽면 가득 붙어 있었다. 한쪽 벽면에 붙은 “Paper is Dead(종이 지면은 죽었다)”라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가디언〉 기사를 통해 〈시사IN〉이 보도한 삼성 문자 기사 잘 읽었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초 카르데로 편집국장이 취재진을 회의실로 안내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8월24일자 〈가디언〉이 〈시사IN〉의 삼성 장충기 문자 특종 보도(제517호 ‘그들의 비밀대화’ 커버스토리 참조)를 인용해 쓴 ‘삼성: 유출된 문자 언론 조작을 밝히다’ 기사를 두고 한 말이었다. 카르데로 편집국장은 회의실 벽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스페인 언론도 대기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특히 은행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다행히 우리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 압력에 거세게 대항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가리킨 회의실 벽면에는 ‘우리의 사명과 원칙’이라는 글귀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정치·경제·각종 압력단체로부터 독립을 유지한다. 커뮤니케이션과 상호 존중, 훌륭한 팀워크로 엄격한 저널리즘을 갈고 닦는다. 현재와 미래에 당면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수익성이 필수임을 잊지 말라.”
〈엘콘피덴시알〉의 모든 기사는 온라인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운영 방식 자체는 한국 디지털 미디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정적인 차이는 포털의 유무에서 비롯된다. 네이버·다음 같은 거대 포털이 없어 뉴스를 보려면 미디어 사이트에 접속해야 한다. 〈엘콘피덴시알〉 사이트가 꾸준히 광고 플랫폼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다.
〈엘콘피덴시알〉의 전략도 지난 16년간 빛을 발했다.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경제·금융·기업 분야 전문성 강화다. 설립 당시 경제 전문 디지털 미디어로 출범해 지금도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엘콘피덴시알〉에서 다루는 경제 관련 뉴스는 폭넓다. 단적인 예로, 〈시사IN〉이 방문하기 이틀 전인 10월9일에는 ‘전통 은행에 도전하는 한국의 핀테크’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 카카오뱅크 사례를 자세히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 핵과 케이팝 외에는 한국 뉴스가 전무한 스페인 언론으로서는 이례적인 접근이다.
탐사보도와 데이터 저널리즘에 대한 투자도 매체 전략 중 하나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파트너십을 맺고, 파나마 페이퍼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취재한 스페인 대표 미디어가 바로 〈엘콘피덴시알〉이다. ICIJ와의 협업에 대해 카르데로 편집국장은 “당초 ICIJ가 우리와 일하기 전에 스페인 대표 일간지들과 접촉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대부분 이를(파나마 페이퍼스) 믿지 않았고, 보도할 용기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ICIJ가 차선책으로 택한 미디어가 〈엘콘피덴시알〉이었다. 적극적으로 협업에 나선 〈엘콘피덴시알〉은 조세회피처에 연루된 주요 스페인 인사들을 추적 보도했다.
디지털에 최적화된 조직으로 변화에 대응
현재 탐사보도팀은 총 10명이다. 전체 기자 수가 100명인 점을 감안하면 꽤 높은 비율이 상시 탐사보도팀으로 활약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하면 속보를 떠올리기 쉽지만, 〈엘콘피덴시알〉은 그렇지 않다. 편집국을 크게 속보팀, 데일리팀, 탐사보도팀 세 그룹으로 나누고 탐사보도팀에 데이터 저널리스트를 투입하는 등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카르데로 편집국장은 “산탄데르 은행의 방코 포퓰라 인수를 추적한 보도도 자랑스러운 결과물 중 하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우리 보도를 공개적으로 신뢰할 만하다며 이를 바탕으로 방코 포퓰라를 조사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매체 전략은 일찌감치 기술 인력을 확보해 미디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점이다. 카르데로 편집국장은 내부 공간을 안내하던 중 “우리가 가장 강점을 보이는 부서”라며 두 부서를 지목했다. 한쪽은 데이터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데이터 분석실이었고, 다른 한쪽은 ‘랩(Lab·연구실)’이라 이름 붙인 엔지니어 부서였다. 데이터 분석실에는 사이트 방문자에 대한 각종 지표가 벽에 붙어 있었다. 2017년 10월 방문객이 어떤 코너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를 한 달 전, 1년 전 지표와 비교 분석해두었다.
맞은편 ‘랩’에서는 디자인과 코딩 작업이 한창이었다. 카르데로 편집국장이 다가가자, 한 개발자가 새로운 ‘네이티브 애드(광고형 기사)’ 샘플을 시연했다. 부트스트랩(웹페이지 구현 방식의 일종)을 활용해 화려한 시각 효과로 광고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카르데로 편집국장은 “디자이너 2명, 비디오 담당자 3명, 개발 인력 20명 정도가 여기서 일한다. 전체 디지털 전문 인력 40명이 기자들을 지원한다. ‘랩’에서는 온라인에서 구현 가능한 다양한 시도를 테스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꾸준히, 유연하게 최신 기술을 확보하고 실험하는 게 ‘랩’의 본래 목적이라고도 설명했다. 모바일 최적화 역시 최근 ‘랩’에서 추진하는 업무 중 하나였다.
기술 인력과 경험, 대외 인지도까지 갖췄지만, 〈엘콘피덴시알〉에게도 모바일 전환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온라인 광고 포트폴리오도 PC 버전에 집중되어 있어서 변화가 불가피하다. 카르데로 편집국장은 “카탈루냐 독립 이슈 기사를 예로 들면, 독자의 85%가 모바일로 접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우리 수익에서 모바일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는 재정 구조가 안정적이었지만, 멀리 보면 다른 수익 모델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개별 기사 유료화처럼 구독형 모델로 나아갈 계획이다.
다행히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모바일 중심으로 광고시장이 재편 중이지만, 전체 온라인 광고시장 역시 그 규모가 여전히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미디어 핫라인(Media Hotline)’과 ‘아르세 미디어(Arce Media)’가 발표한 〈2016년 광고 투자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약 5750만 유로(약 745억원) 수준이던 스페인 디지털 광고 시장은 2016년 2억1460만 유로(약 2780억원)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스페인 전체 광고 투자의 26%에 달하는 수치다. 지면 광고 급감으로 디지털 전환이 느렸던 기존 미디어가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엘콘피덴시알〉은 디지털에 조직이 최적화되어 있어 발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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