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대한민국에 끼친 심대한 해악 중에서도 손꼽히는 폐단은 전국을 투기판으로 만든 것이다. 지난 9년간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에 ‘올인’하는 바람에, 청약시장은 투전판으로 전락하고, 대출 규제가 완전히 무력해졌으며, 세금은 투기억제 및 자원배분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여기에 유례없는 초저금리 기조가 겹치면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강상태이던 부동산 시세가 2014년 이후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이제 서울에 변변한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건 경제적으로 중상위권 이상 계층에서나 가능하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기간에 투기라는 ‘괴물’을 깨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렇게 깨어난 괴물이 대한민국 전역을 유린하고 있다. 투기와 맞서 싸워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문재인 정부는 적어도 2017년 말 현재까지는 매우 효율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8·2 부동산 종합대책’을 통해 투기 심리의 예봉을 무디게 했고, ‘10·24 가계부채 대책’으로 과잉 유동성의 부동산 시장 유입을 통제하고 있다. ‘11·29 주거복지 로드맵’에서는 공공임대 및 공공분양 주택 10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수요가 집중되는 수도권에 공공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해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굳히겠다는 의미다.

ⓒ연합뉴스11월30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더해 부동산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뉴스가 나왔다. 지난 11월30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로 인상한다고 결정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은 6년5개월 만이다. 시장의 다른 조건들이 동일할 경우, 금리 상승은 부동산 등 자산 가치에 하방 압박을 가하게 된다.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 부문에서 ‘높은 세율의 부동산 보유세’를 제외하면 기준금리 인상만큼 투기에 위협적인 정책도 없다. 그동안 부동산 관련 대책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해온 문재인 정부가 금리 인상이라는 든든한 원군을 맞게 된 것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초저금리 기조가 종식된 만큼 부동산 시장은 안정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제도만 있었지 실행한 적은 없었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가 드디어 내년부터 시행된다. 노후화한 주택을 철거하고 새로 건립한 주택 가격이 정상적인 상승분을 넘어설 때 그 초과분에 대해 징세하는 제도다. 시행되면 그동안 투기의 뇌관 구실을 해온 강남의 재건축 단지들은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더욱이 내년에는 전국적으로 45만 가구, 2019년에는 41만 가구의 아파트 입주가 예정되어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시기에 ‘10년 평균 입주량’이 20만 호 정도였다. 그 두 배에 달하는 규모의 입주가 내년과 후년에 각각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요의 상당 부분이 충족되어 주택 가격 상승의 여지가 그만큼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금리가 오르고, 대출 가능 금액은 격감하며, 공급까지 늘어난다. 보유세를 제외한 각종 부동산 관련 세금 역시 강화되거나 새롭게 시행된다. 이런 상황 전개를 감안하면, 부동산 가격이 다시 급등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보인다.

ⓒ연합뉴스금리 인상 이후 매수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부동산 시장이 주춤해졌다. 공인중개업소가 밀집한 서울 송파구의 한 상가 모습.
문재인 정부의 목표가 부동산 시장을 물가상승률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라면 지금 같은 기조와 정책 조합을 그대로 시행하면 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를 만든 촛불 시민들은 부동산 문제를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 적폐’로 인식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산 문제의 근본 해법이라고 할 수 있는 보유세에 대한 지지가 70%를 상회하는 현실을 보면 그러하다. 결국 ‘토지 보유에 따른 불로소득’을 국고로 환수하자는 이야기다.

마침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줄기차게 ‘지대 개혁론’을 설파 중이다. 그는 지난 9월 정기국회 원내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지대’를 한국 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며 다음과 같이 ‘지대 개혁’을 주창한 바 있다. “지대 추구는 극소수의 토지 소유자가 독식하는 연간 300조원의 토지 불로소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보유세와 임대소득세 강화를 통해 이를 사회화하지 않으면 소득주도 성장도, 양극화 해소도 불가능하다. 농지개혁을 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좌우 구분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지대 개혁에 나서자.”

대한민국 국부의 86%가 부동산 자산

지난 11월10일 국회에서 열린 ‘헨리 조지와 지대 개혁’ 토론회에서도 추미애 대표는 “헨리 조지(단일 토지세를 주장한 미국의 경제학자)가, 지대 추구를 방치하면 언젠가 땅 주인이 숭배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지 않았나. 지대 추구의 모순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바꾸자는 여론이 일어날 때까지 치열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국민대차대조표(잠정)’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국부 총액은 1경3078조원인데, 이 가운데 무려 86%가 부동산 자산(1경1310조원)이다. 대한민국의 토지 가격은 1964년 1조9300억원에서 2016년 6981조원으로 3617배 올랐다. 지난 20년 동안(1997~2017)에도 물가상승률 146.7%, 임금상승률 61.9%인 데 비해 땅값은 4배 정도로 치솟았다.

‘토지+자유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2007~2015년, 매년 발생한 부동산 불로소득이 같은 해 GDP의 30%를 웃돈다. 2013년 현재, 개인 토지 소유자의 상위 1%가 전체 개인 소유지의 26%(상위 10%는 65%)를, 법인 토지 소유자 상위 1%는 전체 법인 소유지의 75%를 가지고 있다(가액 기준). 이로 인해 매년 300조원 이상의 지대가 극소수 토지 소유자의 주머니로 흘러들어 간다. 토지를 소유한 개인이,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적으로 형성된 천문학적 부(토지에서 비롯되는 가치)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는 ‘지대 독식 사회’가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적 관리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지대 개혁’으로 가야 한다.

기자명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토지정의센터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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