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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은 메뉴판에만 있더라고요

2017년 12월 21일(목) 제535호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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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한 앨범 쇼케이스 공연에 갔다. 지난여름 <새 민중음악 선곡집:소성리의 노래> 앨범 기사를 썼던 인연 덕분이다. 뮤지션들은 계절이 두 번 바뀌기도 전에 2집을 만들었다. 1집을 제작할 때처럼 경북 성주 소성리에 머무르며 곡을 쓰고 녹음을 했다. 그렇게 <새 민중음악 선곡집 VOL.2:연대의 노래>가 뚝딱 나왔다. 예술가의 창작욕을 자극하는 세상이구나 싶었다.
ⓒ시사IN 양한모

뒤풀이 장소는 서촌 궁중족발이었다. 9월과 11월 두 차례 가게에서 퇴거시키려는 강제집행 시도 이후 사장님 부부와 연대자들이 번갈아가며 가게를 지키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님을 반겼을 출입문을, 덧댄 철문이 굳게 가로막았다. 신원 확인이 된 뒤에야 안에서 문이 열렸다. 강제집행에 저항하다 손가락 4개가 부분 절단된 사장은 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족발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궁중족발, 화끈화끈 맛있게 매운 확족발, 쫄깃쫄깃 매운 미니족 등이 쓰인 메뉴판 속에만 있었다. 강제집행으로 족발 장사를 못하게 된 부부는 연대자들에게 밥과 배춧국과 소 내장탕을 대접했다.

2016년 바뀐 건물주는 보증금 3000만원을 1억원으로, 300만원이 안 되던 월세를 1200만원으로 올렸다. 1200만원은 2만8000원짜리 궁중족발 430개를 팔고 한 푼도 지출하지 않아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사실상 가게를 비우라는 소리였지만 9년간 분식집과 포장마차를 하며 얻은 가게를 부부는 쉽게 떠날 수 없었다.

건물주가 바뀌고,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임차인이 버티면 명도소송을 걸고, 장사한 지 5년이 지난 임차인이 패소하면, 강제집행이 들어온다. ‘궁중족발’ 자리에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는 수많은 가게의 상호명을 대입해도 무리가 없을 서사다.

반복되는 비극을 막으려는 제도적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임대료 인상 한도를 하향 조정하고,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을 현재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사이 뮤지션들은 벌써 새 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새 민중음악 선곡집 VOL.3:쫓겨나는 사람들>은 내년 초 발매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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