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3일 서울 대방동 서울공업고등학교에 새로 국어 교사가 부임했다. 학기 중에 들어온 교사는 첫 수업 시간 주제를 ‘자기소개’로 잡았다. 아이들에게 자기소개 글을 받았다. 손재주가 좋아 섬유디자인 계열 진로를 계획한다는 학생, 서른 즈음에 작은 커피숍 하나 여는 게 꿈이라는 학생, 죽기 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식집을 차리겠다는 학생,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게 일치하지 않아 고민이라는 학생…. 자신의 고민과 꿈을 털어놓는 아이들 앞에서 교사도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해직 교사 출신입니다. 8년9개월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어요.”
김형태 전 양천고등학교 해직 교사(52)가 교단에 복귀했다. 긴 여정이었다. 2008년 서울 양천고의 사학 비리를 공익 제보한 그는 2009년 3월 재단으로부터 파면 통보를 받았다. 학교 밖으로 쫓겨났지만 김 교사는 늘 학교를 위해 싸웠다. 기자회견, 집회, 1인 시위 등을 벌이며 사학 비리의 문제점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서울시 교육의원으로 당선했다. 교육의원이 된 이후에 더 바빴다. 그는 양천고뿐 아니라 전국의 사립학교들이 투명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후에도 ‘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를 맡으며 꾸준히 교육계 현안에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지난해 12월 제정된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 지원 및 보호에 관한 조례’에 따른 서울시교육청 특별채용에 합격해 이제 ‘해직’이 아닌 ‘현직’ 교사로 교단에 섰다.
‘잃어버린 8년9개월’만은 아니었다. 교육청 감사와 검찰 수사 등을 이끌어내 양천고를 포함한 많은 사립학교의 민낯을 알리고 사학 비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과 ‘부패방지법’의 적용 대상에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되면서 사학의 공공성을 높일 계기도 마련됐다.
사회적으로 진전을 이뤘지만 김 교사 개인적으로는 힘든 나날이기도 했다. 몸담았던 학교는 ‘배신자’라 손가락질하며 소송 등으로 계속 김 교사를 괴롭혔다. 재단 이사장 등 김씨가 고발한 비리 사학인들은 번번이 처벌을 피해갔다. 서울 양천고 전 이사장 정 아무개씨(85)도 최근에야 교사 채용 대가로 수천만원의 돈을 받은 죄가 인정되어 1년3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도둑을 신고했는데 잡으라는 도둑은 잡지 않고 신고자만 괴롭히는” 시간을 버텨온 김 교사는 사립학교의 공익제보자 보호가 제도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립학교 교원은 여전히 ‘공익신고법’의 보호 대상에 빠져 있는데 여기에 포함되도록 바꿔야 한다. ‘공익제보자 보호법’도 만들어 개인의 힘만으로 조직의 비리에 맞서야 하는 현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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