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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에 맞서 ‘연대’

2017년 12월 21일(목) 제535호
최태섭 (문화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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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은 특별한 권리의 준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언가가 특별하기 위해서는 희소해야 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특권이라는 그것을 갖지 못한 이들이 존재해야만 성립한다는 것이다.

특권이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 곳은 신분제도가 존재하는 사회다. 신분제는 누구의 아이로 태어났는가가 평생 동안 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한계를 정한다. 귀족의 아이는 그가 훌륭하든 개차반이든 상관없이 귀족이 된다. 노예의 아이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인품과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노예가 된다. 이 둘은 죽음이라는 궁극적 사건을 빼면 전혀 다른 삶을 산다. 만약 사후 세계가 있다면 천국도 종교의 축복을 독차지한 귀족들이 점령할 게 틀림없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권의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공식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지만, 특권은 작동한다. 현대사회의 특권을 정의한다면 ‘한 사회에서 인종·성·계급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위치’ 정도가 될 터이다. 유색인종은 백인종이 겪지 않는 다양한 난관에 부딪힌다. 여성과 비이성애자는 남성과 이성애자에 비해, 노동계급과 빈곤층은 자본가와 부유층에 비해 그렇다.
ⓒ정켈 그림
특권이라고 하면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것이 없는 이들에 대한 차별로부터 오는 반사이익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자수성가했다고 믿는 어느 남성은 가정환경이 유복했기에 커리어를 쌓는 데 집중할 수 있었던 점과, 그와 동등하거나 뛰어났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 커리어는커녕 삶을 펼쳐보기도 전에 가난에 시달리다 범죄자가 되거나 희생양이 된 빈민가의 소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설령 알게 된다 해도 그것은 자신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는 특권의 발명자도, 차별의 창시자도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아래서 여느 사람처럼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특권은 가해와는 다르다. 가해는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유리함을 누리며 부당함에는 무지하거나 침묵하는 것이다. 그 침묵이 어쩌면 간헐적이고 일시적인 가해보다 더 두껍게 사회의 불평등을 보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권을 해체하기가 가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가해에 대한 책임 묻기보다 특권 해체가 훨씬 어려워


한 사람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이내 그는 자신이 원치 않았으나 사람들과 사회가 제공하는 이익을 발견하고, 그것을 걷어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선량한 사람일 것이 분명한 그는 단지 남들과 평등해지기를 원했겠지만, 까다롭고 어리석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뿐이다. 그가 곁에 서고자 했던 이들에게는 삶의 조건을 이루었던 특권이 남긴 습관과 흔적 때문에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에게는 특권적 삶으로의 복귀라는 너무 쉬운 선택지와, 특권으로부터의 도피라는 파멸적 선택지가 주어진다. 한 개인에게 후자를 강요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숭고한 희생도 뭣도 아닌 사회적 개죽음으로 끝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개인들이 내리는 윤리적 결단만으로는 부족하다. 약자들은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약자를 옹호하려는 이들은 그들과 함께하며 방패막이가 되어야 한다. 의무감이나 부채감보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더 커져야 한다. 이견이 있으면 토론하고, 차이가 있으면 존중해야 한다. 이 과정을 지칭하는 단어는 바로 이것이다.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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