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순씨(51)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부근에서 살았다. 평소 형무소 건물 부근을 자연스럽게 지나치기 마련이었지만 때론 일부러 들러 전시물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일까? 일제강점기 때부터 군사정부 시기까지 가냘프지만 끈질긴 ‘해방의 꿈’을 간직하고 그곳에서 버틴 사람들이 가깝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하필 남북한 체제에서 모두 버림받고 금기시되어온 인물들, 즉 ‘조선공산당 사람’들이 가슴에 꽂혔다. 그들의 삶을 복원하고 싶었다. 이미 수없이 이뤄진 조선공산당의 이념과 노선에 대한 평가보다 구체적 인물들이 품었을 희망과 고통, 좌절에 끌렸다. 그래서 쓴 책이 〈조선공산당 평전〉. 구상부터 출간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조선공산당 관계자들은 당대의 가장 전위적이고 위험한 사상을 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쉬지 않고 도전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안위와 목숨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일제와 봉건지주, 자본가 등 ‘반동 세력’과의 싸움에 바쳤다. 심지어 자신들끼리도 운동의 주도권과 상부 조직(코민테른)의 승인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웠다. 박헌영, 이동휘, 조봉암, 이재유, 김삼룡, 이현상 등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뿐 아니라 김 알렉산드라, 남만춘, 김사국, 김약수 등 무명의 투사들까지…. 지금 기껏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정도로 불리는 그들의 무대는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시베리아와 만주 벌판, 대륙 연안의 상하이와 내륙의 충칭을 포괄하는 아시아 전역이었다. 최씨는 아시아 대륙 대신 서울 사대문을 누비며 책을 썼다. 그 시절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집과 조직, 모임 장소 등을 일일이 찾아가 기록과 대조하며 생생하게 재현했다.
최백순씨가 조선공산당 사람들에게 공감한 이유는, 그 역시 자신의 몸으로 희망과 좌절을 모두 뜨겁게 체험해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민중당 가입으로 진보 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민주노동당 출범(2000년)에 참여해서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는 무려 10명의 동지를 국회에 진출시키는 환희를 맛봤다. 당시 그가 만들고 운영했던 정치 웹진 ‘진보누리’는 진중권 동양대 교수 같은 대표적 진보 논객들을 양성하는 인큐베이터 같은 매체였다. 이런 성공의 역정 덕분에 2008년 분당 이후의 쓸쓸한 시기 동안에도 진보신당-통합진보당-정의당으로 이어진 진보 정당 운동을 끈질기게 버텨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그는 “한국의 진보 정당이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명망가와 엘리트 중심의 운동 집단이 되어버린 이유를 찾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더욱 심화시켜, ‘나의 붉은 역사 답사기’를 계속 써나가겠다는 것도 그의 간절한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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