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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습 중지하고 세금 내는 게 예수의 길”

2017년 12월 28일(목) 제536호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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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사학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한국 대형 교회가 성경을 왜곡해 신자들을 기만하고 특권만 누리려 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약점을 희석하기 위해 대북 목소리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역사학자이자 교회사학자다. 2001년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을 맡았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역사학자로서 활동뿐 아니라 교회사학자로서도 교회 개혁 운동의 중심에 섰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대형 교회 세습 반대 운동과 기독교계 친일 청산 및 회개 운동, 종교인 납세 운동 등을 펴왔다.

최근 신도 수 10만여 명에 연간 예산 1000억원대의 대형 교회인 명성교회에서 담임목사 부자 세습 논란이 불거졌다. 이만열 명예교수를 만나 한국 대형 교회의 현주소를 물었다.



ⓒ시사IN 윤무영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사진)는 “한국 교회는 멀쩡한 사람들, 상식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바보로 만들었다. 그런 현상이 변칙적 부자 세습을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배경이다”라고 지적했다.
대형 교회에서 부자 세습 논란이 반복되는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대형 교회가 형성된 게 1970년대 유신 정권부터다. 당시 경제적으로는 재벌이 만들어지고, 교회에서는 대형 교회가 출현한다. 광림교회·금란교회·임마누엘교회·순복음교회 등 많은 대형 교회가 서울과 지방에서 만들어졌다. 재정적으로 가진 게 많다 보니 불투명한 운영을 많이 했다. 담임목사가 바뀌는 권력 체인지가 이루어지면 불투명한 재정이 드러나고 교회가 불미스럽게 된다고 여겼다. 아들에게 세습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본 거다. 또 하나는 대형 교회 설립자들이 ‘이 교회를 내가 이루었다. 내가 이뤘으니 다른 사람에게 주기보다 내 자식에게 물려줘야만 내 정신과 신앙 체계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또 한국 교회가 세습 문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신학자들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교인들도 동조했다. 이 삼박자가 어우러져서 교회 세습이 버젓이 이뤄졌다.

신도들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나?


대형 교회에서는 평신도들이 세습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를 곤란해한다. 강남 광림교회 세습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내가 대표로 있던 복상포럼에서 세습 반대 심포지엄을 열었다. 그날 저녁 그 교회 부목사들과 장로·권사들이 몰려와 행사 간판, 플래카드, 마이크까지 떼어갔다. 광림교회 세습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그러더라. “우리 교회 신도는 정치인, 판검사, 의사, 학자 등 사회 각 분야에 없는 사람이 없다. 그분들도 다 조용히 있는데 당신들(교회 개혁 운동 세력)이 뭔데 지금 세습을 반대하느냐”라고. 그래서 내가 한국 교회는 멀쩡한 사람들, 상식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 바보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 현상이 변칙적 부자 세습을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배경 아닌가 생각한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제공
10월18일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회원들이 명성교회 세습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일반 여론도 세습에 부정적이다.


워낙 비판과 비난이 많으니 한동안 교차 세습이 성행했다. 한 대형 교회 설립자가 자기 사위나 아들을 다른 대형 교회 목회자로 올리고, 대신 상대 교회 목회자의 아들이나 사위를 자기 교회 목사로 교차 등록하는 방식으로 눈을 피했다. 변형된 세습이라 할 수 있는 교차 세습은 지금도 없어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 고위층이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기득권을 형성한다는 주장이 있다.


내가 강연을 다니며 파악한 바로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군 고위 장성을 포함해 고위 공무원 사회에 유독 개신교 신자들이 많다. 국회는 가톨릭 신자까지 합치면 거의 40%가 기독교인이다. 이분들이 자기 영역에서 제대로 기독교적인 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정의를 구현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실망스럽다. 행실로 보면 도저히 기독교인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되지 않는 분들이 어느 교회 나간다고 인사하는 경우가 많더라.

일부 대형 교회에서 구복(求福)을 강조하며 신자를 늘리는데?


서울 한 대형 교회에서 삼박자 축복을 설교한다. 예수 잘 믿으면 범사가 잘 풀리고, 돈 잘 벌고, 건강하다고. 이 삼박자 축복을 구원이라 하더라. 이걸로 파고들어 20만~30만 신도를 모았다.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 ‘복받는다’는 말을 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그 복은 이 세상 사람이 말하는 복과는 다르다. 가령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나오는 8복이 있다. 가난한 자, 우는 자, 온유한 자, 평화를 만드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는 내용이다. 맨 마지막에는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쓰여 있다. 문제는 성경이 말하는 그 복을 한국 교회에서 말하기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그걸 복으로 인정하고 그 복을 받기 위해 살라고 얘기하면, 기독교인들부터 우리 사회 불의를 보고 참으면 안 된다. 8복 가운데 제일 끝에 정의를 위해 핍박받으면 그게 복이라고 했는데 그런 복을 얘기하는 대형 교회가 어디 있나. 내가 이명박(MB) 정권 때 MB가 다닌 소망교회에 가서 강연을 한 적 있다. 그때 “이명박 정권은 사악한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걸 강론하고 강연하는 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고 실천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기독교 단체가 민주화운동에 기여하기도 하지 않았나?


한국 교회가 이렇게 비난만 받아온 것은 아니다. 지금도 통일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70%는 기독교인들이 주도한다. 기독교적인 마인드로 북한을 돕는 사람이 많은데, 아무리 그런 노력을 기울여도 명성교회 세습 논란 등이 한번 터지면 기독교 전체가 도매금으로 비판을 받는다. 대형 교회 지도자들이 한국 교회가 세워놓은 긍정적 업적을 다 파괴하고 있다.

근현대 기독교사에서 긍정적 업적을 꼽는다면?


가령 1899년에 발행된 <황성신문>을 보면 당시 대한제국 지방 관리로 나가는 사람들이 “야소교(기독교) 있는 곳은 안 가겠다. 그 고을에 가면 야소교 교인들이 들고일어나서 해먹지 못한다고 푸념하더라” 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정도로 초기 기독교는 반봉건·반부패에 앞장섰다. 1904년에서 1910년 사이 나라가 일제에 넘어갈 때 소위 친일 주구에 대한 암살 등 친일파 제거 작업도 기독교 청년들이 앞장서서 감행했다.

구체적 사례를 든다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쏜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 신자였고, 안 의사와 함께 거사를 도모한 우덕순이라는 분도 기독교 청년이었다. 매국노 이완용을 명동에서 칼로 찌르다가 일제에 붙들려 사형당한 이재명 의사도 기독교인이었다. 또 샌프란시스코에서 친일 발언을 한 스티븐스(대한제국 외교 고문)를 암살한 전명운·장인환 의사 둘 다 크리스천이었다. 구한말 그런 원흉 제거 사건들에 이어 3·1운동, 일제하 무장 독립운동, 임시정부 운동의 주도 세력이 기독교인들이었다. 또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 기독교에서 일어난 신사참배 반대 투쟁도 교회사적 의미만이 아니라 일제의 황국신민화, 민족 말살정책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민족운동이다. 196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 1980년대 통일운동 과정에서 주요한 계기를 만들고 주도한 이들도 기독교인이 많았다. 기독교인들이 그런 사회적 역할, 민족을 위한 역할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친일파 청산이 안 된 게 기독교 책임도 크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에 적잖은 교회에서 가미다나(작은 신사)를 두고 참배했다. 또 일부에서는 교회 종을 태평양전쟁 물자로 바치기도 했다. 나라를 빼앗긴 약소국이어서 강요당한 일이었다고 해도 해방이 됐다면 교회가 회개하고, 그런 다음에 새로 시작해야 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갇힌 교회 목회자들이 해방 후 친일 청산을 위해 중요한 제안을 했다. 일제 때 목사나 장로직을 맡은 사람들은 모든 걸 내려놓고 자숙하면서 회개하자, 그다음에 교회가 받아주면 복귀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대다수 한국 교회가 응하기는커녕 오히려 변명으로 일관했다.

어떤 변명을 폈나?


‘우리가 일제에 협력하고 싶어서 했느냐’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수모당했는지 아느냐’ 이런 식이었다. 더 나아가서 ‘신사참배나 일제에 협력한 문제는 나(목회자)와 하나님 간의 문제’라는 주장도 폈다. 만약 그때 한국 교회 전체가 친일을 회개했다면 이 회개 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퍼져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교회 안에서 먼저 묵살되는 바람에 사회를 향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2000년대 들어 보수 교단이 주로 ‘아스팔트 극우’ 성향을 보였다.


북핵 문제와 관련이 있다. 2000년대 북한 핵 개발 문제를 계기로 보수 세력이 서울시청 앞에서 김정일 화형식을 벌이는 등으로 세 결집을 시작했다. 대형 교회, 특히 약점이 있는 일부 특정 대형 교회가 주도했다. 그 약점을 희석시키는 한 방편으로 대북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다음 이명박 정권 때 여러 대형 교회가 정권과 결탁해 극우적인 목소리를 더욱 키웠다. 그렇게 세를 불린 이들이 박근혜 탄핵 국면에 이어 요즘까지도 태극기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기독교계가 종교인 과세에 가장 반발하는데?

나는 일찍부터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해 종교인 여부를 떠나 국민으로서 져야 할 의무라고 지적해왔다. 교회에서는 헌금을 신도가 교회에 내는 ‘세금’이라며 거기에 또 세금을 내라는 건 이중 과세 아니냐는 식의 논리를 펴더라. 월급받을 때 회사가 법인세 내는데 왜 근로자가 소득세를 내야 하느냐고 따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황당한 논리다. 종교인 과세와 관련해서는 정치인들도 문제가 있다.

정치인이 왜 문제인가?

기독교에서 못 내겠다고 버티더라도 국민의 의무라며 밀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밀고 나갔을 때 이른바 ‘표 문제’라고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이 겁을 먹는 거다. 그걸 끊을 수 있는 정치인들의 용단이 필요하다. 기독교인 가운데 상식 통하는 사람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걸 긍정하고 있고, 목회자 가운데 실제 세금을 내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같은 데서 하는 주장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는 건 옳지 않다. 세금은 국민적 시각에서 봐야지 직업이 거룩해서 못 낸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에 하고픈 말은?

한국 교회는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는다. 오로지 영광된 자리, 부유한 자리, 높은 자리, 세력화하는 동력으로 기독교와 예수를 이용하려 한다.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예수님은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지 말라”고 했다. 오늘날 한국 종교 지도자들은 너무 많이 갖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아들에게 대물림해주려 한다. 종교인 납세 문제라든지 대형 교회 세습 등은 다 예수의 길이 아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국 교회가 예수님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깊이 성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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