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에 뿌리를 박은 식물은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의 자세를 정돈할까. 그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까. 식물은 언제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위치를 찾는다. 식물은 사방에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힘의 합을 통해 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고 어떤 자세로 자라야 하는지 파악한다.

안미옥의 첫 시집 〈온〉을 빌려 식물들의 방식을 전하자면 다음의 시적 상황을 꺼내도 될 것 같다. 모두가 숲을 이루는 투명한 잎에 집중할 때 “풀숲 안으로”, 가장 안쪽인 “마지막 장소”까지 들어가 “식물의 끝에” “하얗고 부드러운 뿌리”를 보자고(〈식물표본집〉).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거기엔 이미 자신의 태도와 방향을 찾기 위해 애쓰는 발끝과, “갇혀 있”는 현재를 일으켜 다음으로 “건너가려고 하는 중”인 의지와(〈호칭〉), “몸을 비”트는 “벽”에서 열리는 “시작”(〈천국 2〉)이 있다고. 안미옥은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이 사방에서 가해지는 힘을 어떻게 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신하는지, 하여 이들의 처음이라 할 수 있는 호흡의 방법은 어떻게 다듬어지고 이어지는지를 치열하게 그리는 시인이다.

“나는 평평한 바닥을 짚고 서 있었다// 몸을 열면/ 더 좋은 숨을 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몸을 연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공중에 떠 있는 새의 호흡이나/ 물속을 헤엄치는 고래의 호흡을 상상해// 숨이 턱 밑으로/ 겨우겨우 내려가는 사람들이 걸어간다/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두 눈은 붉은 열매 같고// 행진을 한다/ 다 같이 모여 있다// 숨을 편하게 쉬어봐/ 좀 더 몸을 열어봐// 나는 무언가 알게 된 사람처럼/ 유

〈온〉
안미옥 지음
창비 펴냄
리문을 연다.”(〈문턱에서〉 중에서)

어디 멀리로 달아날 수 없어 대지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자신의 상황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시집 속 다른 화자들처럼, 위의 시에서 화자는 “더 좋은 숨”을 쉬기 위해 몸을 열고자 한다. “숨이 턱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막는 훼방의 조건들이 주위에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들숨 날숨을 오가야 단 한 번의 호흡을 완성하듯, 단 한 번의 호흡을 이어가야 몸속의 피가 돌 듯, 시인은 지금 행한 일을 정성스레 반복한다. 했던 말을 몇 번 더 한다. 말의 가장 내밀한 구석까지 들어가 기어이 무게중심을 찾는다.

〈온〉은 안과 밖의 경계에 선 몸이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들숨과 날숨으로 촉발되는 운동성을 발휘하는 시집이다. 이 신중한 움직임이 미더운 까닭은, 한 명 한 명의 호흡으로 불 밝힌 목소리가 얼마나 큰 함성을 잠재하고 있는지 지난겨울과 봄의 우리가 이미 역사적으로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자명 양경언 (문학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