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우울에 관한 수기집 〈아무것도 할 수 있는〉을 함께 기획한 황혜민씨가 책방에 들러 이렇게 말했다. “좋은 책이다. 우울할 때 읽어보라.” 이틀째 감감무소식인 손님을 기다리다 한껏 풀이 죽어 울증이 올 것 같았다. 혜민씨의 말대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책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텀블벅 후원을 받고 우울증 수기를 모아 제작한 독립출판물이라 그런지 이 책이 말하는 ‘우울에 관한 이야기’는 기성 출판물에서는 볼 수 없는 무게감과 적나라함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나쳐 보이지도 않는다. 우울과 불안, 공황장애가 발생한 계기나 우울한 날의 기분을 읽다 보면 비슷한 경험에서 오는 공감과 안타까움으로 글쓴이들과 함께 우울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담담함마저 느낀다. 밥과 국을 꼭꼭 씹어 삼키듯 그들의 사연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왜 우울해지고 씁쓸해지는지를 알게 된다. “당신이 20대라면, 주변 사람들 10명 중 1명은 우울증 치료가 필요하다.” 그 1명이 ‘마음앓이’ 하는 자기 자신이거나, 그 1명을 바라보는 주변인일 테다.
책방을 운영하기 전에는 평범한 월급쟁이였다.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계산기 두드리듯 내가 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정리했다. 마음으로 생각했을 때는 한 가지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머리로 생각하면 손으로 꼽을 만큼의 이유를 셀 수 있었다. 다수의 의견이 옳고 바로 그게 정답이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피폐해졌다. 결국, 출근해야 할 어느 날 아침. 나에게는 극단적인 생각만이 남았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한복판에 몸을 던져버리면 편할 것 같다는 확신 따위. 가까이 지낸 동생에게 심정을 토로하니 ‘그 정도라면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좋은 일을 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 바람직한 일을 하지 말고, 바라는 일을 하라.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책 속의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억지로 누군가의 기분을 맞출 필요도, 의지가 약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애면글면하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할 필요도 없다고.
‘마음앓이’를 하는 이들은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치열한 시도를 한다. 하지만 정작 사회는 변화하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지난 11월, 한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이 현장실습에 나갔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뉴스에서는 그가 제품 적재기 프레스에 눌려 숨지는 영상을 앞다투어 내보냈다. 우리나라 청년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자살하거나 어이없는 사고로 숨지는 현실. 심지어 자살이 과연 자살(自殺)인지에 대한 의문도 많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을 기획한 김현경씨는 ‘한없이 우울하기만 한 책을 만들지 말자’라고 다짐했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우울을 겪고 글로 풀어낸 이들과 책이 완성되도록 후원하고 응원한 사람들의 뜻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단서를 이 책으로부터 얻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읽을 사람들 모두가 어떤 무엇에라도 보탬이 되기를, 위로가 되기를 염원한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거친 폭풍우가 사라져 잔잔해진 파도 너머로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을 기다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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