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벽두 출판인들의 가슴은 무너졌다. 오프라인 서점에 책을 유통하는 송인서적이 새해 둘째 날 부도를 맞았다. 북센과 함께 출판 도매업을 양분해온 송인서적과 거래하던 출판사 2000여 곳의 어음과 재고가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송인서적과 거래를 일원화한 곳도 500여 곳에 달했다.

온라인 서점이 대세라지만 피해는 적지 않았다. 적은 곳은 몇백만원, 많게는 억대 손해를 입은 출판사도 있었다. 직원 두세 명이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도 수천만원대 피해를 본 경우가 수두룩했다. 부산에서 지역 출판을 이끌어온 산지니의 경우 이례적으로 자사 피해액을 공개했는데, 그 규모가 어음 4000만원, 책 재고 8500만원에 달했다. 이처럼 정초부터 언론지상을 도배한 출판계 뉴스는 비극이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송인서적의 부도로 출판계가 휘청이고 있습니다”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시사IN 이명익부도 후 송인서적은 인터파크에 인수되어 상호가 ‘인터파크 송인서적’으로 바뀌었다.
〈시사IN〉 설문에 응한 출판 편집자들 역시 올해 최고 이슈로 송인서적 부도 사태를 꼽았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버텨온 출판계이지만, 송인서적 부도 사태는 절절한 체감이었다. “아직도 그 여파가 상당하다. 한국 출판계의 도매 문제는 사실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 본래 제자리가 아닌 곳에 있었으니 돌아갈 곳도 없는 것 아닐까”라는 한 출판인의 답변이 많은 것을 웅변한다.

출판계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송인서적 출판사 채권단 등은 여러 경로로 해결책을 모색했다. 3월 말 송인서적 인수 의사를 밝힌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것을 기점으로 4월에는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법원이 기업회생 신청 절차 개시 결정을 내리며 5월 송인서적 영업이 재개되었다.

송인서적 부도 사태는 아직 현재진행형

상처는 부도 이후 10개월이 지나서야 봉합됐다. 지난 10월27일 법원은 송인서적 회생계획안에 대해 인가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인터파크가 50억원에 송인서적을 인수했다. 송인서적 지분은 인터파크가 56%, 채권자인 출판사들이 44%를 보유하게 되었다. 인터파크는 인수대금 50억원 가운데 42억5000만원을 채무 변제에 사용하고, 재고 서적 평가액 127억원에 대해서도 5년에 걸쳐 채권자들에게 변제할 계획이다.

11월17일 담보권자와 채권자들이 최종적으로 송인서적 회생계획안에 찬성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날 송인서적 채권단에 속한 출판사들은 어음 및 채권 15%를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피해액이 1000만원인 출판사는 150만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나머지 85%는 출자 전환되어 송인서적 주식으로 돌려받는다. 휴지조각이 될 뻔한 어음과 채권이 일부나마 현금으로 되돌아온 터라 출판사들은 한숨을 돌렸다.

ⓒ연합뉴스연초 송인서적 부도로 출판계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사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당장 송인서적 하나가 살아나면서 언 발에 오줌을 눴을 뿐, 출판계를 지배해온 오랜 구태와 이별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출판계가 넘어야 할 산은 뭘까. 지난 8월7일 인터파크는 출판계 양대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한국출판인회의와 송인서적 경영 정상화를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상규 인터파크 대표는 송인서적 인수 후의 계획에 대해 “그동안 출판계의 문제점이었던 어음 관행을 개선하고 투명한 유통 정보를 제공하겠다”라고 밝혔다.

부도 사태 이후 어음 관행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출판계 어음 관행은 좀 독특하다. 책의 특성상 도매상이 가져간 책이 언제쯤 팔릴지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송인서적은 ‘아직 팔리지 않은 책’을 두고 가상의 거래 장부를 기록하고 어음을 끊어줬다. 몇십만원짜리밖에 안 되는 어음은 물론, 6~7개월짜리 장기 어음도 존재했다. 사실상 ‘문방구 어음’이었다. 출판사는 송인서적으로부터 이런 어음을 받아 인쇄소 등 다른 거래처에 보냈다. 송인서적 사태 당시 출판계 안팎에 연쇄 부도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나왔던 이유다.

근본적인 문제는 어음 내역이 주먹구구라는 점이다. 같은 값의 책을 납품해도 누구에게는 1000만원짜리를, 누구에게는 900만원짜리 어음을 끊어주었다.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얼마라도 더 쳐주는 식이었다. 나중에 도매상이 정산해주기 전까지는 어떤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출판사도 모른다.

ⓒ연합뉴스송인서적을 인수한 인터파크는 물류 시스템을 개선하고 배송망을 강화했다.
이처럼 불투명한 구조는 전체 회계를 엉망으로 만든다. 출판사에 준 돈과 실제 서점에서 수금한 돈이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물론 도매상에게도 불합리하다. 과도한 요구를 계속하는 거래처와는 관계를 끊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가족과 지인 중심으로 이루어진 송인서적 경영진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못하고 사태를 키웠다.

새롭게 태어난 송인서적은 상호가 ‘인터파크 송인서적’으로 바뀌었다. 사업장도 새롭게 단장했다. 인터파크 물류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배송망도 강화될 전망이다. 인터파크는 기존 온라인 쇼핑몰 시스템을 기반으로 도서 유통망이 투명해지도록 할 계획이다. 어음 거래 관행도 현금 거래로 바꿔나간다. 실제로 인터파크 송인서적은 영업 시작 이후 현금 거래를 현실화하는 등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인터파크가 송인서적 인수에 나서게 된 데에는 출판계의 설득과 인터파크 자체 필요성이 맞아떨어졌다. 인터파크는 1997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서점을 열었지만 시장에서는 1위(예스24), 2위(알라딘)와 격차가 나는 3위에 머물러 있었다. 다른 온라인 서점에 비해 출판계와도 스킨십이 적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인터파크는 몇 해 전부터 오프라인 서점 진출을 꾀하는 등 돌파구를 마련해왔다.

출판계는 인터파크가 추진하고 있는 ‘오투오(O2O: online to offline)’ 전략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이는 온라인 서점과 동네서점이 협업해 작가와의 만남 등 각종 이벤트를 열면서 ‘윈윈’하겠다는 인터파크의 계획이다. 인터파크 송인서적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동네서점의 활로를 찾는 데 기여하리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파크가 자본력을 앞세워 영세한 출판 유통시장을 흔드는 것 아니냐는 염려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배부른 기우’에 불과해 보인다. 인터파크의 송인서적 인수 과정에 참여한 한 출판계 인사는 “인터파크 송인서적의 등장은 오랫동안 고착화됐던 도서 시장에 새로운 자극이다. 지금은 오히려 인터파크가 자본력을 발휘해서 시장을 흔들어야 동네서점과 출판사의 살길이 열린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협상 과정에서 인터파크 이상규 대표와 인터파크도서 주세훈 대표가 송인서적 이사진으로 참여해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송인서적 부도 사태 이후 출판계에는 한 가지 공감대가 형성됐다. 송인서적 하나를 살리는 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후진적인 서지 정보, 판매 정보, 물류 시스템 등 구조적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통해 따로 굴러가는 생산·유통 시스템을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힘겹게 제자리를 찾은 송인서적이 그런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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