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호를 펼친다. 〈작은책〉도 올해의 인물을 꼽았다.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 나무판에 평화 메시지를 새기며 ‘서각 기도’를 한 노신부의 일대기가 새삼스레 눈에 들어온다. 5·18 당시 전일빌딩에 있었다는 어느 할머니의 사연, 충북 음성에서 파업 중인 환경미화원의 호소도 실렸다. 소설가 안재성·하명희, 〈시사IN〉에 연재 중인 김형민 PD의 글도 있다. 사진도 거의 없는데 읽는 맛이 있다.
연말 술자리에서 편집장 유이분씨를 만났다. 늘 유쾌한 심성을 가진 사람인데, 어두운 이야기가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정기독자가 줄어드는 데 대한 걱정이었다. 사무실에서 구독 취소 전화를 받고 본인이 아는 사람이면 가슴이 무너진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잡지쟁이’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책〉을 만드는 사람은 3명이다. 버스 운전기사 경력으로 잘 알려진 발행인 안건모씨, 편집장 유이분씨, 그리고 가끔 취재기자로 변신해 글을 쓰는 독자사업부 직원 1명이다. 디자인은 유 편집장의 딸들이 맡고 있다. 유 편집장은 매달 수십만원씩 후원금을 내고도 틈만 나면 여러 노조와 단체 행사에 참여한다. 내가 속물처럼 물었다. “그 사람들에게서 돈이 나오나요?” “아니, 돈은 다른 데서 나와요. 좀 배운, 좀 버는, 경제적으로 좀 나은 사람들이죠. 그래도 가요, 연대하러. 그게 우리 매체가 할 일이니까.”
오래된 것들이 절멸해가는 세상이다. 기존 미디어라면 통째로 적폐로 규정하고, 민주노총 같은 노동 조직에 반감을 가진 이도 적지 않다. 그래도 어떤 오래된 것들은 고귀하다. 408일 최장기 굴뚝 농성을 마쳤던 파인텍 노동자 차광호씨가 얼마 전 또다시 ‘하늘감옥’에 수감된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의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을 취재해달라고 스스럼없이 요청할 수 있는 〈작은책〉은 더욱 그렇다. 여러분의 응원 속에 고귀하게 남는 것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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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잡지이지만 과속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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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다수결을 믿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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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세월이 만든 문학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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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기자
〈중국인 거리〉를 처음 읽었던 날의 ‘사로잡힌’ 기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버짐 핀 아홉 살짜리가 되어 할머니도, 엄마도, 매기 언니처럼도 살고 싶지 않은 주인공의 마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