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 동양 최대 민영 석탄광으로 불리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1963년부터 2004년까지 석탄을 채굴했던 곳이다. 48m 수갱 타워가 우뚝 선 650갱을 비롯해 23개 광구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전국 생산량의 13%를 차지했다(1985년 기준). 당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근무하는 광원이 6300명에 달했다.

현재 사북읍내에서 사골국밥 식당을 하는 고배만씨(가명)도 동원탄좌 광부 출신이다. 20대였던 1981년 사북에 들어와 탄광이 폐업할 때까지 일했다. 고씨는 자신이 동원탄좌 ‘직영’ 광부였다고 강조했다. 동원탄좌에서 하청을 받은 탄광의 직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탄광이 문을 닫을 때까지 갱에 들어갔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에게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당시 사북시장에서는 동원탄좌 인감증(사원증)이 신용카드처럼 통용되었다. 사북에서 동원탄좌의 위상이 그 정도였다.

탄광산업은 오래전에 흘러간 영광이다. 현재 사북은 엄연히 카지노의 고장이다. 2000년 강원랜드 카지노가 개장하고 2004년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문을 닫았다. 카지노가 들어서며 고씨는 돈을 꽤 잃었다. 그는 “카지노에 다 빨렸다. 가게는 (광부로) 일할 때 개업했는데 돈 다 잃고 식당 하나 겨우 꾸려간다”라고 말했다. 2000년 카지노 개장 초 도박 중독에 빠지는 주민들이 속출하자 강원랜드는 출입 일수를 제한했다. 이제 지역 주민은 한 달에 한 번, 넷째 주 화요일에만 출입이 허용된다.

ⓒ시사IN 이명익눈 덮인 강원랜드 카지노 전경.
멀리 사북읍내가 보인다.

 

광부들의 월급으로 돌아가던 사북 상권이 카지노 고객들의 호주머니에 의존한 지도 17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 12월21일 찾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내는 광부들이 찾던 선술집 대신 다른 업종의 가게가 24시간 간판을 밝히고 있었다. 전당포, 모텔, 안마방이다. 사북읍으로 들어서는 초입 ‘석탄사우나. 잭팟 명소! 1억9000만원. 수면실 완비’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강원랜드에서 사북읍내로 이어지는 500m 남짓한 거리 양옆에는 전당포 30여 개가 줄지어 있다. 상호명은 다르지만 ‘자동차·귀금속·금·신용 대출, 마카오 필리핀 현지 상담, 24시 상담’ 등 가게 쇼윈도에 써 붙인 광고 문구는 비슷했다. 전당포에 딸린 주차장에는 번호판 없는 외제차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었다. 한 택시 기사는 “전당포 개수를 80개까지 세다가 포기했다”라고 말했다.

오후 1시쯤 찾은 사북시장은 ‘한가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광산 할 때부터” 사북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해온 한 상인은 “지금이 손님이 제일 없다. 밤새 (카지노에서) 게임한 뒤 자고 있을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사북 상권은 강원랜드 시간표를 따라 움직인다. 카지노가 폐장하는 새벽 6시부터 개장하는 오전 10시까지가 그나마 읍내가 활기를 띨 때다. 택시는 카지노에서 나온 손님을 모텔이나 버스터미널로 실어 나르고, 모텔 앞에는 호객꾼들이 서성인다. 식당도 아침 장사가 제일 잘된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끼가 아니라 마감하는 식사에 가깝다. 손님들은 흔히 아침상에 소주를 곁들였다.

국밥집을 하는 한 상인은 “카지노 손님 상대 장사도 예전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사북 경제는 카지노 앵벌이가 지탱한다. 7~8년 전까지는 돈벌이가 제법 됐다. 앵벌이들이 방 잡고 살면서 돈을 써야 사북 경제가 돈다. 게임만 하고 가는 사람들은 별것 없다.” ‘카지노 앵벌이’는 강원랜드 장기 체류자를 일컫는 속어다. 카지노에 발을 들였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사북을 떠나지 못하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주로 대리 베팅, 카지노 좌석 매매 등으로 푼돈을 벌어 생활한다. 나름 사북 지역에 유입된 경제활동인구인 셈이다.

ⓒ시사IN 이명익강원랜드 아래 사북읍내에는 전당포·모텔·안마방이 즐비하다.
카지노 영업이 끝나는 시간에 가장 분주하다.

강원랜드가 ‘도박 중독’ 관리를 강화하면서 출입 일수를 한 달에 15일로 제한하고, 대리 베팅 등을 엄격히 단속하자 카지노 앵벌이 수는 급감했다. 5년 전 3000여 명에 달했던 강원랜드 장기 체류자는 현재 500~800명으로 파악된다. 강원랜드가 건전한 게임 문화를 정착시키려 힘쓸수록 지역경제는 얼어붙는다.

밤 10시 사북읍내에서 2㎞ 떨어진 강원랜드 카지노에서는 슬롯머신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카지노 안내 팸플릿에는 보유 슬롯머신이 1360대라고 쓰여 있지만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포커, 바카라, 다이사이 같은 테이블 게임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좌석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은 테이블 뒤에 선 채로 판돈을 걸었다. 슬롯머신 50대가 연결돼 있는 ‘슈퍼 메가 잭팟’ 상금 액수가 7억4000만원을 넘어서며 계속 불어났다.

종종 강원랜드를 찾는다는 중년 여성은 “오늘은 평일이라 그래도 사람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카지노에 왔다. 식사는 카지노 식당에서 ‘콤프’로 해결했다. 콤프는 강원랜드에서 지급하는 포인트로, 쓴 돈의 1%가 적립된다. 콤프로 강원랜드 호텔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빵도 사 먹을 수 있다. 커피나 주스는 카지노에서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돈 쓸 필요가 없다. 읍내에 있는 가게도 대부분 콤프 가맹점이지만 강원랜드 밖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천안에서 차를 몰아 강원랜드 카지노에 왔다는 김창훈씨(가명)는 새벽 6시 폐장 때까지 게임을 하고 차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 카지노에 다시 입장했다. 그도 점심은 카지노 내 식당에서 콤프로 사 먹었다. 강원랜드가 매일 밤 벌어들이는 막대한 부는 카지노에만 고이는 것처럼 보였다.

폐광 지역 카지노 유치는 도박 같은 실험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 태백·정선·영월·삼척 폐광 지역 주민들은 불확실성에 미래를 베팅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1980년대를 지나며 석탄 수요가 감소하고 채산성이 저하되자 정부는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시행했다. 168개에 달하던 탄광은 1994년에는 13개밖에 남지 않았다. 강원 남부 탄광 지역 인구도 44만명에서 15만명으로 급감했다. 산업 전사였던 광부들은 실업자가 되었다.

도박 같은 실험 후 도박 중독 같은 후유증

광부 인구가 가장 많았던 태백시에서 먼저 들고일어났다. 태백 광산 지역에서 활동하던 지역 운동가들과 주민들은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광지역법)’ 제정을 정부에 요구했다. 1995년 사북 지역 광부와 활동가들이 가세했다. 사북은 1980년 광부들의 생존권 투쟁이었던 사북노동항쟁 이후로 공동체 문화가 특히 강했다. 동원탄좌 복지회관을 중심으로 야간 횃불시위, 등교 거부, 삭발, 단식 등이 이어졌다. 1995년 3월3일 정부와 고한·사북지역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가 폐광지역법 제정에 합의했다. 그해 “낙후된 폐광 지역 경제를 진흥시켜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과 주민 생활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폐광지역법이 공포되었다.

폐광지역법에 따라 국내에서 유일한 내국인 카지노가 2000년 강원도 정선에 개장했다. 사행 산업을 유치한다는 계획에 주민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카지노라도 있어야 사람들이 온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1980년대 말부터 탄광 지역에서 활동하고, 폐광지역법 제정 운동을 이끌었던 원기준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극약 처방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때 카지노를 유치하지 않았다면 사북·고한 등 폐광 지역 도시는 소멸해 지도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다. 당시 우리는 차악을 선택한다고 생각했다.”

ⓒ시사IN 이명익강원랜드가 있지만 사북읍은 활기를 잃었다.
한적한 사북시장 모습.
ⓒ시사IN 이명익사북읍의 한 음식점.

2000년 개장 이후 강원랜드 카지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노릇을 톡톡히 했다. 2016년 기준 총매출액은 1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6200억원에 이른다. 규모로만 따지자면 고용 효과도 모범적이다. 강원랜드의 정규직 직원은 3300여 명 수준이다. 이 중 50~60%가 폐광 지역, 15%가 강원도 내 타 지역 출신이다. 청소나 세탁,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 1700여 명도 대부분 폐광 지역 출신으로 광부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채용됐다. 강원도 내에서 강원랜드만큼 많이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 출신을 주로 뽑다 보니 연줄을 통해 취업을 청탁하는 대규모 채용 비리가 벌어지기도 했다.

폐광지역법은 강원랜드 순익 중 25%를 폐광지역개발기금으로 납입하도록 강제한다. 이 기금은 태백·정선·영월·삼척 지자체로 배분된다. 2016년 강원랜드가 낸 폐광지역개발기금은 1665억원이며 2000년부터 납입한 총액은 1조6000억원에 달한다. 그동안 지방세도 1조6542억원이나 냈다. 다른 지방 소도시에게 정선 강원랜드는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다. 전북 군산이 지역구인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새만금사업 지역에 내국인 출입 카지노 설치를 허용하는 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자체로 유입된 막대한 자금이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년 대가 없이 주어지는 지원금은 철저한 사업타당성 조사 없이 눈먼 돈처럼 탕진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태백시 오투리조트다. 태백시는 2008년 4100여억원을 들여 오투리조트 사업을 추진했으나 영업적자로 3000억원이 넘는 빚을 안게 되어 매년 시 예산의 10%를 부채상환 비용으로 소진했다. 예견된 실패였다. 정선 하이원리조트가 20분 거리에 있음에도 태백시는 연간 관광객 수를 100만명으로 예상했다. 실제 방문객 수는 20만명도 되지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완성되지 않은 골프장과 스키장을 무리해서 개장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태백시는 2016년 800억원에 오투리조트를 부영그룹에 매각했다.

카지노 지원금은 눈먼 돈, 탕진되기 일쑤

2000년 개장 이후 강원랜드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지만 폐광 지역에서는 카지노의 그림자가 점점 더 짙어졌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 마을이 되어버렸다. 사북 초·중·고등학교는 강원랜드가 내는 교육환경개선 지원금으로 아이비리그 무상 연수를 진행하고 스쿨버스를 운영하는 등 높은 수준의 교육 시설과 환경을 제공하지만 매년 학생이 줄어들고 있다. 강원랜드 직원들도 중학교까지는 자녀를 사북에서 키우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대부분 원주나 강릉 등 다른 도시로 유학을 보낸다. 사북을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학생들은 박탈감에 시달린다.

광산 노동자들의 공동체 문화와 자부심도 파괴되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우리가 언제까지 도박 중독자들 돈에 의존해서 살 거냐”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원기준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그 당시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닌가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 지역 문제는 예산만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말 운동가로 사북에 정착해 동원탄좌 광부, 강원랜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서 팀장으로 일했던 김창완 정선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일본에서 카지노를 만들겠다며 강원랜드 견학을 왔다. 내 의견을 묻기에 ‘지역개발 대안으로 카지노를 선택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조금 힘들더라도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게 맞다’고 답해줬다.”

카지노로 지역을 살려보려는 거대한 실험 이후 사북은 조금 다른 모색을 시작했다. 2017년 4월 개소한 정선 도시재생지원센터가 그 첫발이다. 지역 주민들의 의지와 역량이 없다면 막대한 예산 지원이 있어도 지역의 몰락을 막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주제별로 지역 활동가를 키워내는 해봄학교 1기를 운영했다. 사북 지역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탄광산업 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법도 궁리 중이다. 사북에는 마침 훌륭한 자원이 있다. 이제는 ‘사북탄광문화관광촌’으로 불리는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이다. 2004년 폐광 직후 뜻있는 광부들이 탄광의 마지막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나섰다. 그 덕분에 사북탄광문화관광촌의 모습은 2004년 10월31일 마지막 조업일에 멈춰 있다.

ⓒ시사IN 이명익사북석탄유물보존회 소속인 강재석씨는 원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일하던 광부였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강재석씨에게 강원랜드가 들어온 이후 17년 세월에 대해 물었다.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광부였던 그는 이제 사북석탄유물보존회 소속으로 옛 일터를 가꾸고 소개하는 일을 한다. 사북탄광문화관광촌에 대해 열정적으로 소개하던 그가 잠시 말문을 닫았다. 이윽고 짧고 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광산이 끝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행복지수는 낮아졌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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