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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와 혐오 사이 ‘신기한’ 신여성

2018년 01월 11일(목) 제538호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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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신여성 도착하다>는 회화·자수·사진·미술·영화·대중가요· 잡지 등에서 발견된 ‘근대화된 여성’에 관한 이미지를 총망라했다.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여성의 존재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 돌연히 옆에서 고요를 깨뜨리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벼락같이 난다. 이때 나의 영혼은 꽃밭에서 동무들과 끊임없이 웃어가며 ‘평화’의 노래를 부르다가 참혹히 쫓겨났다. 나는 벌써 만 일개년간을 두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밤에 이러한 곤경을 당하여 오므로 이렇게 “으아” 하는 첫소리가 들리자 “아이쿠 또” 하는 말이 부지불각간에 나오며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나혜석, <모(母) 된 감상기> (1923년) 중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 <신여성 도착하다>의 규모는 과연 컸다. 회화·조각·자수·사진·인쇄·미술·영화· 대중가요·잡지·딱지본에 걸친 500여 점의 다양한 시청각 매체를 통해,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말에 이르는 근대화를 향해 달음질치던 여성들에 관한 이미지를 총망라하겠다는 야심이 느껴졌다.

이 중 1부 ‘신여성 언파레-드(On Parade)’에서는 신여성을 주제로 한, 수많은 단행본 속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익숙한 이미지들이 주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이런 삽화들. ‘모던 걸’ ‘기생’ ‘웨이트리스’ ‘여학생’이라는 명칭의 네 여성은 모두 스트립쇼 무대에 막 나서려는 듯한, 국적 불명의 옷 조각을 간신히 걸치고 있는 모습이다. 전차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었고 비교적 유순한 외모로 묘사된다)에게 공격적으로 삿대질하는 양장 차림의 여성도 있다. ‘나는 문화주택만 지어주는 이면 일흔 살도 괜찮어요’라고 다리에 구애 광고를 적은 여성들이 뾰족구두를 신고 일렬로 앉아 있다.

ⓒ시사IN 이명익
<신여성 도착하다>는 4월1일까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볼 수 있다.
근대화의 물결이 가져온 충격은 컸지만, 그중에서도 ‘근대화된 여성’을 바라보는 당시 남성들의 심정은 거의 공포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몸을 겹겹이 감싸던 한복 대신 짧은 양장을 입고, 또각또각 청각을 자극하는 구두를 신고, 전통적인 머리 모양 대신 단발로 자르거나 구불구불한 퍼머넌트를 한 헤어스타일을 선택하고, 얼굴을 조신하게 감추는 대신 최대한 화장으로 돋보이게 하며 자신 있게 큰 소리로 웃는 여자들. 아마 그 여자들은 오감으로 당대의 남자들을 위협했을 것이다.

전방위로 저항하던 남자들은 근대화된 여성을 공격하고 모욕했다. 신여성을 주제로 한 책들에 수없이 인용되는, 특히 대중잡지에서 붓을 휘두른 남성 필자·삽화가들이 신여성에게 얼마나 매혹당하고 동시에 얼마나 미워했는지에 관한 구구절절한 묘사를 여기서 굳이 늘어놓을 필요는 없으리라.

당시 대중매체들이 파헤친 ‘신기한’ 신여성의 이미지 대부분은 과장과 상상에 의거해 재현되었다. 이를 알지 못한 현재의 관객들에게, 당대 잡지 표지들의 아카이빙만으로는 신여성의 이미지가 어떤 점에서 문제인지 쉽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숭배와 혐오를 오갔던 그 이미지 중 일부를 좀 더 강조해서 크게 대비시켜주든가, 그 안의 악의적인 인상비평 텍스트 또한 시각자료로 분명하게 제시하거나, 여성들이 썼던 글 원문을 현대 한국어로 풀어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나혜석의 <모(母) 된 감상기> 아래에 ‘이 글은 모성의 절대성을 옹호하던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는 해설을 간략하게 달아두기보다, 차라리 그 원문을 현대 한국어로 풀어서 눈에 잘 보이게 전시했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이미지의 폭격 속에서 예전에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순간들을 발견하게 되는 기쁨은 컸다. 1930년대 문지창이 촬영한 사진 <헤드폰을 쓴 여인들> 같은 경우, 당시의 여성 대중가수들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내게 그들의 레코드판을 헤드폰으로 들으며 즐거워하던 여성들 역시 존재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혹은 홍청자·왕숙랑·박향림 등 당대의 인기 가수들이 모인 단체 사진에서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을 때 무척 즐거웠다.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을 노래한 여성으로 줄기차게 호명되던 이난영과, 사진 속에서 세련된 양장을 차려입고 젊음을 만끽하고 있던 빛나는 신여성으로서의 이난영은 정말 달라 보였다. 동료 가수 중에 키가 제일 후리후리하게 크고 서구적인 미모를 뽐내던, 당시의 조선 땅에선 너무 낯설었던 재즈 보컬까지 구사하던 재능 넘치는 여성 이난영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근대의 여성 미술가들’의 경우 당대의 여성 화가들을 새롭게 배우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나혜석과 천경자를 제외하면 일반 대중에게 낯선 정찬영·박래현·나상윤·이갑향 등을 접하고 그들의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작품을 직접 대면하는 쾌감은 강렬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혈혈단신 유학을 감행하여 예술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고 실제로 빼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붓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현모양처들’

하지만 남성 작가들에 비해 늘 낮춰 보는 시선 앞에 혹은 해방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비극 앞에, 현모양처라는 강압하에 대부분 붓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이 중 천경자를 제외하면 박래현이 거의 유일하게 꾸준히 활동한 작가였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그들의 작품들은 오랫동안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뛰어난 채색화가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유족에 따르면 작품이 세밀화인 관계로 시력을 많이 잃어 작품 활동을 계속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전시에는 정찬영 작가일기도 전시되어 있다. 그 일기 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른 기회에라도 꼭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제강점기에 도쿄의 여자미술 대학으로 건너간 한국 유학생의 80% 이상이 자수과를 전공했다고 한다. 졸업한 뒤 교사로 취직해 경제적 자립을 이뤄내기 수월한 과목이었기 때문이라는 간략한 설명이 남긴 씁쓸한 여운도 잊을 수 없다. 그들 각자의 꿈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어쨌든 모두 아름다운 자수 작품을 남겼다. 다만 그들은 꿈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재력이나 희망을 갖지 못했다.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 5인의 신여성’은 아쉬움이 남았다. 미술, 문학, 사회주의 운동, 무용, 음악계에서 각각 중요한 활동을 펼친 신여성으로 나혜석·김명순·주세죽·최승희·이난영을 선정해 조명했다. 이들이 갖는 대표성은 무엇인지 혹은 이들이 미처 전유하지 못했던 또 다른 대표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설 없이 유명 여성의 표상만이 확대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이건 모두 부푼 기대감에서 비롯된 자잘한 아쉬움이다. <신여성 도착하다>를 시작으로 좀 더 촘촘하고 세분화된 전시들이 연이어 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 12월21일 전시를 시작한 <신여성 도착하다>는 4월1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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