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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피해자가 긴 편지를 보내왔다

2018년 01월 11일(목) 제538호
이은의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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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성희롱이나 이를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는 내부 관행에 대한 이야기로 사회가 뜨겁다. 도화선이 된 특정 사건들의 내막이나 시시비비를 떠나, 사회가 함께 뜨거웠던 온도는 긍정적인 담론을 가져온다. 성희롱을 고지받은 후 공공기관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정책안이 나올 정도로, 진지한 고민과 담론은 힘이 셌다.

얼마 전 맡은 사건 역시 피해자를 비롯한 내부 구성원들의 뜨거운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술에 취한 남성이 야간에 여대 건물에 들어가 여학생을 뒤에서 안고 도망가다가 이를 저지당하자 여학생을 발로 찬 형사사건이었다.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사건이 발생한 학교 학생들로 법정 안이 꽉 찰 정도였다.

재판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형사 피고인 에게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피고인이 자신을 변론할 권리 역시 최대한 존중받아야 한다.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확인되면 형법에 근거해 죄에 맞는 처벌을 받으면 된다.
ⓒ정켈 그림

피고인의 변호인과 피해자의 변호인은 각자 처지에서 쟁점이 될 만한 사실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확인한다. 피고인의 변호인 처지에서는 형량을 조금이라도 덜 여지가 있는 부분을 따져 묻고, 피해자의 변호인 처지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워야 한다. 판사는 이를 토대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가 양측 변호인 또는 증인에게 필요한 것을 묻거나 확인한다. 판사의 권한이자 의무이다. 안타깝게도 앞서 말한 형사사건에서 ‘재판부가 피고인 편을 든다’는 오해가 생겼다. 언론에 기사가 났고 법정 밖에서 더 시끄러워졌다.

언론에 기사가 난 뒤 열린 재판에서 법정 밖으로 학생들이 줄을 길게 설 만큼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 재판이 시작되고 갑자기 재판부가 양쪽 변호인에게 재판 진행에 대한 의견을 밝혀달라고 했다. 무작정 재판부를 이해한다는 말도, 학생들의 의견만 전하는 것도 맞지 않아 보였다. 자칫 어느 한쪽 혹은 양쪽에 오해와 상처를 남길 수 있었다. 그 법정 안의 모두가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이 상황을 또한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재판에서 나온 발언들이 각자의 역할을 넘어 ‘실체적 진실 발견’이란 목적과 무관하고 무리한 것이었는지 신중하게 생각해보자”라고, “재판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난 다음에 판단해도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마침 그날은 피해자가 증인으로 나오는 날이었다. “피해자 처지에서 다소 불편한 질문들이 나오더라도 피해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잘 설명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달라”고 학생들에게 부탁했다. 재판부에도 호소했다. 지금의 이런 여러 오해나 불신의 바탕을 살펴봐야 한다고. 이 사건의 피해자는 한 명이지만, 학교 구성원 모두가 주거침입의 피해자이자, 추행이나 폭행의 잠정적 피해자일 수 있는 사건이었다. 특히 그간 우리 사회가 이런 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오며 갖게 된 불안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했다.

‘피해자가 하는 말이니 무조건 믿어라’가 아니라…


며칠 전 피해자가 긴 편지를 보내왔다. 학생들이 내부 게시판에 ‘고마워한다’ ‘많이 배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고 전해왔다. ‘피해자가 하는 말이니 무조건 믿어라’가 아니라 ‘피해자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며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법정의 상황을 이해하는 법을, 그 속에서 피해자로서 주변인으로서 대응하고 노력할 지점이 무엇인지를 배웠다’는 말에 뭉클한 소회가 밀려왔다. 나 역시 ‘함께하는 온도의 법정’을 느끼게 해줘서, 그 사건의 한복판에 그들과 함께 서 있어서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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