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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의 새해 다짐

2018년 01월 08일(월) 제539호
고제규 편집국장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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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16일 황열헌 기자는 벽제 화장터로 향했다. “기사도 안 나가는데 뭐 하러 가느냐”며 다른 기자들이 핀잔을 주었다. 보도지침이 서슬 퍼렇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기자에게는 현장이 중요했다”. 그는 박종철 유골을 뿌리는 임진강 샛강까지 동행했다. 황 기자는 1월17일자 <동아일보> 6면 ‘창’이라는 코너에 200자 원고지 7장 분량의 짧은 스케치 기사를 썼다.

“아버지 박씨는 끝으로 흰 종이를 강물 위에 띄우며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고 통곡을 삼키며 허공을 향해 외쳤다.” 짧은 기사의 울림은 컸다. 기사를 검열하던 당시 문공부 <동아일보> 담당자마저 사회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부장님! 나 오늘 ‘창’ 보고 울었습니다. 홍보 조정이고 뭐고 일할 생각 안 납니다”라고도 했다(<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 황호택 지음, 2017). 대학생들은 기사의 한 대목인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를 플래카드 문구(사진)에 담았다. 그 어떤 시위 구호보다 민심을 흔들었다. 황 기자가 현장 취재를 하지 않았다면 묻혔을 아버지 박정기씨의 외침은 그렇게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다.


황 기자는 영화 <1987>에 나오는 윤상삼 기자와 함께 ‘미귀 스트라이크’를 주도하기도 했다. 두 기자를 비롯한 젊은 기자들은 박종철 취재 내용이 <동아일보>에 크게 실리지 않는다며 회사 복귀를 거부했다. 젊은 기자들이 데스크를 압박했고 결국 빗장이 풀렸다.

영화가 흥행하자 2018년 <동아일보>는 발 빠르게 자사의 활약상을 홍보하는 기사를 썼다. 하지만 1987년 <동아일보>와 2018년 <동아일보>는 제호만 같을 뿐 다른 신문이다. 그 이유는 독자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다. 오히려 2016년 <한겨레> 최순실 단독 보도가, JTBC 태블릿 PC 특종이, <시사IN>의 안종범 업무수첩 탐사보도가 1987년의 젊은 기자 정신을 잇고 있다.

이번 호에도 주진우 기자의 다스 특종 기사가 실렸다(49쪽). 지난해 8월 시작한 주 기자의 ‘MB 프로젝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반드시 끝을 볼 것이다. 새해 첫 호 ‘지방 소멸’에 이어 ‘지방 재생’을 커버스토리로 올린다. 다음 호에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남문희 기자의 심층 기사가 준비되어 있다.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즐겁다.’ <시사IN> 기자들의 새해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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