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16일 황열헌 기자는 벽제 화장터로 향했다. “기사도 안 나가는데 뭐 하러 가느냐”며 다른 기자들이 핀잔을 주었다. 보도지침이 서슬 퍼렇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기자에게는 현장이 중요했다”. 그는 박종철 유골을 뿌리는 임진강 샛강까지 동행했다. 황 기자는 1월17일자 〈동아일보〉 6면 ‘창’이라는 코너에 200자 원고지 7장 분량의 짧은 스케치 기사를 썼다.

“아버지 박씨는 끝으로 흰 종이를 강물 위에 띄우며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고 통곡을 삼키며 허공을 향해 외쳤다.” 짧은 기사의 울림은 컸다. 기사를 검열하던 당시 문공부 〈동아일보〉 담당자마저 사회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부장님! 나 오늘 ‘창’ 보고 울었습니다. 홍보 조정이고 뭐고 일할 생각 안 납니다”라고도 했다(〈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 황호택 지음, 2017). 대학생들은 기사의 한 대목인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를 플래카드 문구(사진)에 담았다. 그 어떤 시위 구호보다 민심을 흔들었다. 황 기자가 현장 취재를 하지 않았다면 묻혔을 아버지 박정기씨의 외침은 그렇게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다.

 

 

 

 

황 기자는 영화 〈1987〉에 나오는 윤상삼 기자와 함께 ‘미귀 스트라이크’를 주도하기도 했다. 두 기자를 비롯한 젊은 기자들은 박종철 취재 내용이 〈동아일보〉에 크게 실리지 않는다며 회사 복귀를 거부했다. 젊은 기자들이 데스크를 압박했고 결국 빗장이 풀렸다.

영화가 흥행하자 2018년 〈동아일보〉는 발 빠르게 자사의 활약상을 홍보하는 기사를 썼다. 하지만 1987년 〈동아일보〉와 2018년 〈동아일보〉는 제호만 같을 뿐 다른 신문이다. 그 이유는 독자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다. 오히려 2016년 〈한겨레〉 최순실 단독 보도가, JTBC 태블릿 PC 특종이, 〈시사IN〉의 안종범 업무수첩 탐사보도가 1987년의 젊은 기자 정신을 잇고 있다.

이번 호에도 주진우 기자의 다스 특종 기사가 실렸다(49쪽). 지난해 8월 시작한 주 기자의 ‘MB 프로젝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반드시 끝을 볼 것이다. 새해 첫 호 ‘지방 소멸’에 이어 ‘지방 재생’을 커버스토리로 올린다. 다음 호에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남문희 기자의 심층 기사가 준비되어 있다.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즐겁다.’ 〈시사IN〉 기자들의 새해 다짐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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